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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죄송합니다” 직속상관에 사과… ‘윗선 무관’ 강조하려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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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내용 의문점

유출된 메일엔 “고객이 보스에 보고”… 단독 처리 ‘갸웃’

불법성 알고도 계약 서명… “지나친 욕심” 책임 떠안아

19일 공개된 국가정보원 임모 과장의 유서는 임 과장이 그의 직속상관들에게 남긴 편지 형식이다.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면서 조직을 잘 이끌어달라는 당부가 핵심이다.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 “저의 모든 행위는 우려할 부분이 전혀 없다”는 등 논란이 된 해킹 의혹에 적극 해명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경향신문

19일 공개된 국가정보원 임모 과장의 유서. | 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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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27일 국정원이 나나테크를 통해 이탈리아 해킹팀과 주고받은 계약서에 임 과장의 서명이 들어 있다(빨간색 박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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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뇌부에 사과

공개된 유서의 첫 부분은 “원장님 차장님 국장님께 동료와 국민들께 큰 논란이 되어 죄송합니다”로 시작한다. 자신의 잘못으로 조직에 피해를 준 데 대해 국정원 내 직속상관들에게 사과한 것이다. 동시에 이들 ‘윗선’은 국정원의 사찰 의혹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출된 자료를 보면, 임 과장이 이 모든 과정을 단독으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난다. 2012년 나나테크는 해킹팀에 보낸 e메일에서 “목표물 30개를 추가 구입하기 위해선 고객이 ‘보스(boss)’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나나테크가 지난해 1월14일 해킹팀에 “국회가 예산을 삭감했고 내부 사정도 있기 때문에 고객(국정원)이 제한된 예산만 쓸 수 있다”고 밝힌 대목은 해킹 프로그램 구입과 운용이 임 과장 개인이 아닌 국정원 차원에서 진행된 일이라는 점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 “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

임 과장은 “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킨 듯하다”고 말했다. 위법 가능성이 있는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해 운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민간인 사찰 의혹을 불러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 피해를 준 것에 대한 책임감의 표현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1월27일 국정원이 나나테크를 통해 이탈리아 해킹팀과 주고받은 계약 관련 서류에는 ‘부서장(team leader)’이라는 직함과 함께 임 과장의 서명이 있다. 실무 책임자로서 그는 위법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해킹 프로그램 구입을 추진했다.

2013년 2월28일 해킹팀에 보낸 e메일에서 나나테크 허손구 대표가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은 한국에서는 불법이기 때문에 다른 고객을 찾기 어렵다”고 말한 부분이 이를 뒷받침한다. 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개입 재판이 진행되던 지난해 3월 해킹팀 직원들이 작성한 보고서에도 “SKA(국정원을 지칭)는 최근 자국 언론이 정부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RCS를 사용했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데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고 나오는 등 RCS 운용 사실이 노출되는 것을 경계했다.

■“오해 일으킬 자료를 삭제”

임 과장은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혹시나 대테러, 대북 공작 활동에 오해를 일으킬 자료를 삭제하였다”고 밝혔다. 해킹 의혹이 불거진 후 국정원은 줄곧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활용한 적 없다”면서 민간인 사찰 의혹을 부인해왔다. 임 과장의 말은 국정원에는 민간인 사찰 의도가 없었으나 자신의 활동 가운데 어떤 부분이 그런 ‘오해의 여지’를 남겼으니 스스로 삭제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유출된 자료에 따르면 국정원은 국내 사용자가 압도적인 카카오톡에 대한 감청 기능 의뢰를 하는가 하면, 삼성전자 갤럭시 시리즈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기능 개선을 요청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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