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7 (월)

국정원 해킹관련 직원 "내국인·선거 사찰 없었다" 유서남기고 자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국가정보원 해킹 사찰 의혹에 연루된 국정원 직원 임 모씨(45)가 지난 18일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사건의 실체를 둘러싼 의혹이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다. 임씨는 유서에서 "내국인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해킹 관련 자료 일부를 삭제했다고 스스로 고백한 대목 등을 둘러싸고 오히려 의구심만 증폭시키는 상황이다. 당장 야권은 '선(先) 의혹 검증, 후(後) 현장 조사' 필요성을 제기하는 등 사건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모양새다. 경찰 수사 타깃이 베일에 싸인 국정원이라는 점에서 진실 규명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 숨진 임씨, 20년간 사이버 업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자신의 무고를 주장한 임씨는 지난 20년간 국정원에서 사이버 안보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국정원 출신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은 여의도 당사 브리핑에서 "(숨진) 이 직원은 20년간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며 "전북 모 대학교 전산학과를 졸업해 이 분야에서만 계속 일한 직원"이라고 공개했다. 이 의원은 브리핑에서 "(숨진) 직원은 자기가 어떤 대상을 선정하고 이런 게 아니었다"면서 "대상을 선정해서 이 직원에게 알려주면 기술적으로 이메일을 심는다든지 이런 일을 하는 기술자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용이 들어오면 그 내용 그대로 대테러담당 등에게 요청한 자료를 이관할 뿐인데 문제가 불거지고 정보위에서 내용을 본다니까 '이런 사람이 노출되면 안 되겠구나' 하고 걱정을 많이 한 듯하다"고 추측했다. 정보위 소속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은 "언뜻 들은 내용으로는 고인은 해킹 프로그램을 도입할 때부터 리모트컨트롤시스템(RCS)을 운영할 때까지 그 팀의 실무자였다"면서 "그런 부분도 정치적 논란이 되니까 압박을 느끼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고 했다.

◆ 민간인 사찰 있었나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임씨 시신 발견 24시간 만인 이날 오전 11시 30분께 유서를 공개했다. 그는 유서에서 "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킨 듯하다. 정말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킹 실험이 스마트폰 국내용 모델과 메신저 카카오톡을 대상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커지자 임씨가 이에 대해 결백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임씨는 "혹시나 대테러, 대북 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킬 자료를 삭제했다"며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저의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였다"고 덧붙였다.

이날 국정원은 '동료 직원을 보내며'라는 제목으로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임씨의) 죽음을 정치적 공세를 이어가는 소재로 삼는 개탄스러운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자료에서 국정원은 "그가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지키고자 했던 국가안보의 가치를 더 이상 욕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자살 과정에서 외압 있었나

그가 자살을 선택한 과정에서 국정원 안팎의 압력이 있었는지도 관심사다. 임씨는 사망 전 아내에게 "업무적으로 힘들다"고 토로하는 등 최근 극심한 심적 압박에 시달린 것으로 파악된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유서 내용을 토대로 임씨의 죽음이 특정 세력 압박에 의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분석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실무자로서 괴로워했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 유서"라며 "해킹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있었던 구체적 내용에 대해 함구함으로써 조직 위신이나 명예를 지키고자 본인을 희생한 것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성수 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개인의 잘못에 대한 변을 달면서도 추락한 국정원 위상 등 전체적인 측면에서 모든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목숨을 끊은 게 아닌가 추측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유서를 보면 일부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만 거시적 측면에서 개인의 영광보다 조직과 국가 안전을 위해 한 것이라는 걸 알리기 위한 차원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최희석 기자 / 김시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