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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현대차 비자금’ 성공, ‘유병언’ 실패···수사 성패가른 ‘비밀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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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억원대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EWTS) 납품 사기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66)이 비밀 공간에 사업 관련 내부 서류를 숨겨둔 것으로 드러났다. 이 회장은 도봉산 인근 야적장에 1.5t짜리 컨테이너를 두고 지난 10여년 동안 일광공영이 벌인 사업에 대한 자료를 보관했다.

검찰은 이 회장은 자신의 사무실 책장 뒤편에 마련한 ‘밀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 공간은 책장을 밀고 비밀번호를 눌러야 출입이 가능한 곳이다. 이로써 검찰이 이 회장이 빼돌린 자금 수백억원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과거 이 같은 ‘비밀 공간’은 몰래 조성한 비자금을 보관하거나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은신처로 사용돼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현대차 비자금’과 사건이다.

■ 별장 밀실 은신처

세월호의 실소유주로 지목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사망)의 밀실은 유 전 회장의 은신처가 됐다. 지난해 5월 수백억원대 횡령 및 배임 혐의 등으로 지명수배된 뒤 도피 생활을 이어가던 유 전 회장은 전남 순천 별장에 비밀방에 숨었다. 이 비밀방은 2층 통나무 벽을 잘라서 만든 10㎡ 규모의 공간이었다. 안쪽에는 나무로 만든 잠금장치가 있고 밖에서는 통나무를 끼워 맞춰 위장해 놓은 상태여서 육안으로 식별이 어려웠다.

당시 수사기관은 해당 별장을 압수수색해 유 전 회장의 체액 등을 확보했으나 비밀방의 존재는 확인하지 못했다. 검찰은 압수수색 한달이 지난 뒤에야 윤 회장의 비서가 “유 전 회장이 비밀방으로 도피했다”고 진술하면서 밀실의 존재가 밝혀졌다. 검찰은 진술을 받은 이튿날 별장을 찾아가 비밀방에서 현금 8억3000만원과 16만달러가 들어 있는 여행용 가방 2개를 발견했다. 유 전 회장은 지난해 7월 별장 인근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검거 실패에 따른 수사기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했다.

■ 벽 속의 비밀금고

2006년 3월26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현대자동차 양재동 본사와 글로비스, 현대오토넷을 압수수색했다. 일요일 새벽에 기습적으로 이뤄진 강제 수사였다. 현대차 측은 글로비스 건물 9층 사장실과 재경팀 사이 벽 속에 금고를 설치해 쉽게 찾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그러나 검찰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건물 내 비밀금고를 찾아냈다. 일사천리로 비밀금고를 찾아낸 검찰을 지켜보던 글로비스 직원들도 적지 않게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금고에서는 50억원이 넘는 현금과 미 달러화, 양도성예금증서(CD), 수표 등 은닉 비자금과 기밀 서류 등이 발견됐다. 검찰은 이미 제보를 통해 비밀금고의 위치를 파악한 터였다.

경향신문

검찰의 글로비스 비밀금고 압수수색 이후 현대차 비자금 사건으로 비화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경향신문 자료사진


검찰은 압수수색 이후 3개월 동안 수사를 벌여 1034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하고 현대차 및 계열사에 4000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 12명을 구속기소했다. 정 회장은 2008년 6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사회봉사 300시간을 선고받았다.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은 채동은 전 검찰총장이었다. 수사를 일선에서 지휘한 중수1과장은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이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대선 개입’ 의혹의 수사팀장을 맡아 2심에서 원 전 원장의 유죄를 이끌어 낸 윤석열 대구고검 검사도 당시 수사에 참여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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