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이 회장은 자신의 사무실 책장 뒤편에 마련한 ‘밀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 공간은 책장을 밀고 비밀번호를 눌러야 출입이 가능한 곳이다. 이로써 검찰이 이 회장이 빼돌린 자금 수백억원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과거 이 같은 ‘비밀 공간’은 몰래 조성한 비자금을 보관하거나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은신처로 사용돼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현대차 비자금’과 사건이다.
■ 별장 밀실 은신처
세월호의 실소유주로 지목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사망)의 밀실은 유 전 회장의 은신처가 됐다. 지난해 5월 수백억원대 횡령 및 배임 혐의 등으로 지명수배된 뒤 도피 생활을 이어가던 유 전 회장은 전남 순천 별장에 비밀방에 숨었다. 이 비밀방은 2층 통나무 벽을 잘라서 만든 10㎡ 규모의 공간이었다. 안쪽에는 나무로 만든 잠금장치가 있고 밖에서는 통나무를 끼워 맞춰 위장해 놓은 상태여서 육안으로 식별이 어려웠다.
당시 수사기관은 해당 별장을 압수수색해 유 전 회장의 체액 등을 확보했으나 비밀방의 존재는 확인하지 못했다. 검찰은 압수수색 한달이 지난 뒤에야 윤 회장의 비서가 “유 전 회장이 비밀방으로 도피했다”고 진술하면서 밀실의 존재가 밝혀졌다. 검찰은 진술을 받은 이튿날 별장을 찾아가 비밀방에서 현금 8억3000만원과 16만달러가 들어 있는 여행용 가방 2개를 발견했다. 유 전 회장은 지난해 7월 별장 인근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검거 실패에 따른 수사기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했다.
■ 벽 속의 비밀금고
2006년 3월26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현대자동차 양재동 본사와 글로비스, 현대오토넷을 압수수색했다. 일요일 새벽에 기습적으로 이뤄진 강제 수사였다. 현대차 측은 글로비스 건물 9층 사장실과 재경팀 사이 벽 속에 금고를 설치해 쉽게 찾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그러나 검찰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건물 내 비밀금고를 찾아냈다. 일사천리로 비밀금고를 찾아낸 검찰을 지켜보던 글로비스 직원들도 적지 않게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금고에서는 50억원이 넘는 현금과 미 달러화, 양도성예금증서(CD), 수표 등 은닉 비자금과 기밀 서류 등이 발견됐다. 검찰은 이미 제보를 통해 비밀금고의 위치를 파악한 터였다.
검찰의 글로비스 비밀금고 압수수색 이후 현대차 비자금 사건으로 비화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경향신문 자료사진 |
검찰은 압수수색 이후 3개월 동안 수사를 벌여 1034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하고 현대차 및 계열사에 4000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 12명을 구속기소했다. 정 회장은 2008년 6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사회봉사 300시간을 선고받았다.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은 채동은 전 검찰총장이었다. 수사를 일선에서 지휘한 중수1과장은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이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대선 개입’ 의혹의 수사팀장을 맡아 2심에서 원 전 원장의 유죄를 이끌어 낸 윤석열 대구고검 검사도 당시 수사에 참여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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