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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표현의 자유 논쟁]혐오 표현 입 막으라? 논쟁 없인 극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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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표현 넘어서기 어떻게

▲ 법으로 규제 가장 강력하지만 일부 “문화 개선에 도움 안돼”

발언 금지가 검열로 나타날 수도… 논쟁 통해 말하기 방식을 바꿔야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무렵 미국에서 폴 코언이라는 젊은이가 법원 복도에서 체포됐다. “씨XX의 징병제(Fuck the Draft)”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소란을 피운 혐의였다. 다른 사람에게 성적인 불쾌감을 줬다는 이유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1971년 미 연방대법원은 코언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표현은 생각뿐 아니라 감정도 전달한다. 어떤 감정은 반드시 특정한 표현을 해야 전달된다. 그러므로 어떤 표현이 불쾌하다고 해서 쓰지 말라는 것은 그 감정을 표현하지 말라는 사상통제이다.”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감정도 표현할 권리가 있다는 의미다.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불가침의 권리로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 판결을 혐오 표현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이나 부장판사의 악성댓글은 혐오 표현일까.

경향신문

■ 혐오 표현이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인종적, 종교적 증오를 고취하는 일은 법률로 금한다고 규정한다. ‘혐오 표현’을 법으로 금지할 규정을 마련한 동시에 ‘혐오 표현이 무엇인지’도 규정했다.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거나 단순히 누군가에 대한 적의를 드러낸다고 해서 혐오 표현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역사·문화적으로 형성된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의식에 근거해 특정 집단에 실질적 위협을 가져올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혐오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혐오 표현 규제를 찬성하는 쪽은 혐오 표현이 실질적 폭력을 가져올 가능성에 주목한다. 증오범죄가 대표적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표현의 자유와 혐오 표현 규제 모두 사회의 민주적 통합을 위한 개념”이라며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적대로부터 청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강력한 사법적 규제 효과 있나

가장 강력한 규제는 형법을 통한 규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역사부인죄(홀로코스트 부인죄)’는 혐오 표현을 형법으로 규제하는 대표적 사례다. 독일은 형법에도 민족적·인종적·종교적 집단에 대한 증오심을 선동·비방하는 것을 국민선동죄로 처벌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나치 세력의 부활을 막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국내에서는 ‘반인륜 범죄 및 민주화운동을 부인하는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안’(2013년)과 ‘일제 식민지배 옹호행위자 처벌 법률안’(2014년)이 발의됐다. 각각 일베 이용자의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모욕 발언과 문창극 전 총리 지명자의 ‘식민지배 옹호발언’이 계기가 돼 발의됐다. 명예훼손죄도 사법적 규제다. 법적 규제가 차별적 문화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이소영 한양대 비교문화역사연구소 HK연구교수는 “똑같은 표현이라도 맥락에 따라 혐오 표현일 수도 있고, 농담일 수도 있다. 무엇이 혐오 표현인지 법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홍어’(전라도 비하)를 차별언어로 지정하면 ‘과메기’(경상도 비하)도 차별언어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맞닥뜨릴 수 있다.

혐오 표현 처벌법이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독일의 선동죄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나치 잔당세력의 준동을 막기 위한 역사적 맥락에서 제정된 것으로, 다른 나라에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유럽의 혐오죄가 실제 유의미한 효과를 거두는지는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 비사법적 규제, 차별·폭력 막는데 초점

차별금지법이나 인권기구에 의한 규제를 제안하는 입장도 있다. 홍성수 교수는 “혐오 표현이 갖는 심각성을 고려할 때 아무런 공적 개입을 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러나 규제의 핵심 논거는 표현의 자유의 ‘예외’가 아니라 차별과 폭력을 막아 표현의 자유를 확산시키는 데 둬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차별시정기구의 구제는 ‘차별금지’라는 일관된 원칙을 지키면서도 합의·조정·시정권고 등 설득과 협력에 기반을 둔 방식으로 혐오 표현에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권단체 연대기구인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는 2012년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혐오 표현을 규제할 것을 제안했다. 혐오 표현이 표현에만 그치는 한 어떠한 법 규제도 허용될 수 없다는 입장도 있다. 미국에서는 물리적 폭력이나 구체적 차별행위가 없는 단순 표현에 관해서는 비규제 입장을 유지해왔다. 대신 대학이나 공공기관·노동조합에서 자율적으로 ‘스피치 코드’를 정하는 등 민간 규제가 발달해 있다.

■ ‘더럽고 추악한 것’도 논쟁하자

논쟁을 통해 혐오를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나라 강원대 사회통합센터 연구원은 “증오는 표현의 극악함 때문이 아니라 일방적 말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며 “말에 대한 논의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전시 프로파간다나 국정원 댓글처럼 메시지를 반복생산하는 일방적 말하기는 사회에 일사불란함을 강요한다. 프랑스 사회가 테러 이후 반무슬림주의를 경계하자는 사회적 공감대를 이뤘던 것은 표현의 자유에 기반을 둔 토론문화 때문”이라며 “표현의 자유의 한계가 아니라 일방적 말하기인지 토론 가능한 말하기인지를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더럽고 추악한 것도 볼 의무가 있으며 이는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록스는 논쟁을 위해 규제를 반대한다. 그는 샤를리 에브도 총격사건 이후 칼럼에서 “미국에서라면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도 불가능했지만 같은 이유로 무함마드를 비판하는 이슬람 여성 사상가의 연설도 듣기 힘들 것”이라며 “법, 언어규범, 특정 인물의 발언을 금지하는 것으로 균형을 세우려 한다면, 결과는 서투른 검열과 대화의 말살로 나타난다. 샤를리 에브도의 학살을 언어규제를 없애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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