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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살인교사 물증 없는데…자신만만 경찰 VS 신중모드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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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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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재력가 살인교사 혐의로 김형식 서울시의원이 3일 오후 서울 화곡동 강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수천억대 재력가 피살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김형식(44) 서울시의원을 경찰이 결정적 물증조차 찾지 못한 채 검찰로 보내면서 정황만 무성한 사건의 의문점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서울강서경찰서는 지난 3일 김 씨에 대해 살인교사 혐의만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자신만만이지만 공을 넘겨받은 검찰은 "혐의 입증이 쉽지만은 않다"면서 신중모드였다. 경찰은 김 씨가 재력가 A(67) 씨로부터 부지 용도 변경 청탁과 함께 5억여 원을 받은 뒤 약속을 지키지 못하자 살해했다고 보면서도 검토했던 뇌물수수 혐의는 적용하지 못했다.

◈ 닫힌 김 의원의 입…경찰은 팽 씨 입만

경찰이 넘지 못한 가장 큰 문턱은 좀처럼 열리지 않은 김 씨의 입이었다. 애초 범행을 전면 부인하던 김 씨가 진술거부권까지 행사하자 경찰은 시작 1시간 만에 김 씨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경찰이 확보한 건 A 씨가 용도 변경을 예상해 만들어둔 빌딩 증축 설계도면과 "김 씨가 용도변경을 해주기로 했다는 말을 A 씨에게서 들었다"는 건축사의 진술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씨가 살해를 지시할 만큼 A 씨로부터 어떻게 압박을 받았는지는 물음표가 달려있다. 경찰은 두 사람 사이 최근 통화기록이 사건 발생 일주일 전 정도였다는 점만 확인했을 뿐이다. 경찰은 "수시로 통화한 기록은 없는 것 같다"면서도 "두 사람의 집이 가까우니 직접 만나지 않았겠냐"고 설명하고 있다. 압박의 강도에 대한 설명은 없다. 팽 씨가 김 씨로부터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독촉을 받았다고 진술하는 정도다.

경찰은 범행을 저지른 팽 씨의 일관된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팽 씨의 '입'에 의존하고 있다. 또, 팽 씨가 범행 당시 A 씨의 현금 뭉치를 노리지 않았다는 점과 5억여 원의 차용증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친구 김 씨의 지시 외에는 다른 범행동기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맞서 김 씨의 변호인은 "A 씨가 지난 1월 말까지 김 씨의 술값을 대납해줬고, 사건 발생 이틀 전 행사 협찬도 해줬다"면서 "두 사람은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반박했다.

◈ 변호인 접견권 침해냐, 증거인멸이냐

김 씨 측은 변호인 접견권을 침해당했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나섰다. 김 씨가 구속된 뒤 접견을 요구했던 김 모 변호사가 "선임계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접견 중 쫓겨났다며 강압적인 조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명백한 접견권 침해이자 직권남용"이라면서 "수사팀장으로부터 이틀 뒤 사과를 받았다"고 말했다.

반면, 경찰 측은 앞서 김 씨와 잘 아는 또 다른 임 모 변호사가 팽 씨의 가족 부탁으로 왔다면서 팽 씨를 접견한 점을 언급하며 "김 씨 측이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반박했다.

◈ 뒤집힌 범행동기 진실은?

오락가락했던 경찰의 중간 수사 발표도 혐의 입증 과정의 어려움을 반증했다. 경찰은 김 씨를 구속한 이튿날인 지난 27일 브리핑을 통해 A 씨 사무실에서 발견한 김 씨 명의로 된 5억여 원 차용증을 바탕으로 '빚 독촉'이 범행동기라고 밝혔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경찰은 "돈을 못 갚았다고 출마를 못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을 바꿨다. 수긍이 어려운 범행동기라는 지적과 채무 문제에 있어 A 씨 가압류 방식을 주로 쓴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찰은 "약속시한까지 청탁을 성사시키지 못하자 6·4지방선거를 앞두고 폭로하겠다는 압박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정'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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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물 발견 장소(사진=서울강서경찰서 제공)


◈ 대포폰과 손도끼는 어디에

경찰은 또 김 씨의 지시로 A 씨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친구 팽모(44) 씨와 김 씨가 '대포폰'과 공중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은 확인했지만, 문자메시지 확보에는 실패했다. 경찰이 확보한 일부 스마트폰 메신저의 대화 내용은 혐의 입증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만 남아 있었다.

경찰은 그러나 김 씨가 구치소에서 팽 씨에게 묵비권 행사를 요구하는 내용으로 건넨 쪽지를 확보해 스스로 범행을 인정하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 씨는 구체적으로 범행을 인정하는 내용은 쪽지에 담지 않았다.

범행 도구도 경찰은 불에 타다 만 전기충격기를 확보했을 뿐, 흉기로 쓰였다는 손도끼는 찾지 못했다.

◈ 경찰 "증거 넘쳐" VS 검찰 "쉽지 않아"

경찰 관계자는 "김 씨의 자백만 빼고 살인사건에 대한 증거는 차고 넘친다"면서 "범행 동기라는 게 본인의 진술이 없으면 사실관계를 추정해 볼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어 "김 씨가 살인을 교사할 수밖에 없는 동기가 용도 변경 건이라는 부분을 검찰에서도 같은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겠냐"면서 "더 구체적으로 확인한다면 뇌물수수 혐의 적용을 검찰이 판단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IMG3]하지만 경찰로부터 김 씨 등의 신병과 3,200여 쪽의 수사자료 등을 넘겨받은 검찰은 김 씨의 살인교사 혐의 입증이 경찰의 말처럼 녹록지는 않다는 판단이다.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3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살인교사 혐의 입증에 주력하겠지만,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살인 (혐의)는 몰라도 살인교사 혐의는…"이라고 덧붙여 혐의 입증에 여러 난관이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물증은 없고 정황만 무성한 사건을 떠안은 검찰로선 난감한 기색이 역력한 것으로, 사실상 원점부터 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 검찰 뇌물수수, 인허가 로비 의혹 밝힐까

여기에 김 씨의 범행동기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뇌물수수 혐의와 인허가 로비 의혹도 검찰이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검찰은 김 씨가 A 씨에게서 받은 5억여 원의 대가성 입증에 수사의 초점을 모으면서, 동시에 용도 변경을 위한 인허가 로비가 있었는지 돈의 흐름도 좇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와 함께 김 씨가 철로공사 납품업체인 AVT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정황도 포착하고, 이 부분에 대한 수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남부지검은 사건을 형사4부에 배당하고 강력 전담 검사 3명을 투입해 수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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