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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사설 속으로] 한겨레·중앙일보,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 사설 비교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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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함께 구성한 지면으로 두 언론사의 사설을 통해 중3~고2 학생 독자들의 사고력 확장에 도움이 되도록 비교분석하였습니다. 다음주 7월 8일에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 사퇴’에 대한 논제가 실립니다.



[한겨레 사설] 국제기준 및 법 취지에 어긋나는 전교조 판결

15년 동안 합법적 지위를 누려온, 6만 조합원의 전교조가 하루아침에 법의 울타리 밖으로 쫓겨났다. 법원이 19일 “전교조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가 너무 법조항의 문구에만 매달려 애초 법을 만든 취지를 가볍게 본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노동조합에 대해 정의를 내린 노조법 제2조에 대한 법원의 해석이 특히 그렇다. 이 조항은 노동자가 자주적으로 단결하도록 하고, 사용자의 입김이 미치는 어용노조를 막고자 하는 게 목적이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6만여 조합원 중 9명의 해고자로 인해 노조의 자주성이 침해되는지 여부를 따져봤어야 한다. 그런데 재판부는 문제가 된 해고자 가입 부분을, 경비의 주된 부분을 사용자로부터 원조받는 경우나 사용자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의 참가를 허용하는 경우와 똑같이 취급해버렸다. 노조법의 통일적·유기적 해석을 위한 거라는 설명이 고작이다. 노조의 자주성을 보장해주기 위한 조항을 가지고 거꾸로 자주성을 질식시켜버리고 만 꼴이다. 법조문에 대한 기계적 해석이 낳은 비극이다.

전교조는 1심 판결에 대해 즉각 항소하고 법외노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을 낸다고 하니 이 부분은 상급심에서 더 깊게 다뤄질 것이다. 하지만 애초 법률 자체가 해석상의 혼선을 부를 여지가 있는 만큼 국회가 법을 개정해 그 취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와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이미 여러 차례 법개정을 권고한 만큼 국회가 서둘러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의 태도가 소극적이라 그동안 법개정이 진척되지 않았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날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결”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이미 전교조에 대해서는 국민의 심판이 내려졌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 중 진보 교육감이 13명이나 당선됐고 그 가운데 8명이 전교조 출신이다. 전국의 초·중·고 학생의 85%가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에서 공부하게 된 게 현실이다.

정부와 여당은 더 이상 민심을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그동안 전교조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대립만으로도 우리 사회는 충분한 비용을 치렀다. 앞으로도 이런 소모전이 지속된다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학생일 뿐이다. 정부 여당의 성찰을 기대한다.





[중앙일보 사설] 전교조는 판결 존중하고, 정부는 후속 조치를

전교조가 합법적인 지위를 얻은 지 14년 만에 법외노조로 전락하게 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가 어제 전교조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제기한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 효과는 당장 나타난다. 이번 판결로 전교조는 형사상 유죄판결을 받아 해직된 교사 9명을 내보내고 노조 설립 신고를 다시 하지 않는 이상 그동안 교원노조로서 누려 온 법적 지위를 모두 잃게 됐다. 시·도교육청은 전교조와 더 이상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을 맺거나 사무실 임대료를 줄 근거가 사라졌다. 노조 전임자로 교실을 떠난 조합원 72명도 다음달 3일까지 즉시 학교로 복귀해야 한다.

현행 교원노조법 조항만 보자면 해직 교사를 노조원으로 인정한 전교조 규약은 교원노조법 2조를 위반한 게 분명하다. 근로자가 아닌 사람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는 게 해당 조항이다. 고용부도 이를 근거로 해직 교사를 노조원으로 인정하는 전교조 규약에 대해 여러 차례 시정명령을 내렸고, 이를 거부하는 전교조에 대해 법외노조라고 통보했으니 적법한 행정처분을 했을 뿐이다.

그러니 전교조가 “사법부는 스스로 행정부의 시녀임을 고백했다”고 비난 성명을 낸 것은 적절하지 않다. 사법부는 법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곳이며, 이런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법치주의다. 전교조가 아이들에게 준법정신을 가르치면서 법 위에 올라설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전교조는 일단 판결에 승복해 노조 전임자를 전원 학교로 돌려보내고, 정부와 시·도교육청의 예산 지원을 자발적으로 거절하는 게 마땅하다.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대거 당선된 친전교조·진보교육감 13명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전교조를 임의단체로 대우한다면 이를 막을 순 없겠으나 노조가 아닌 전교조에 다른 명목으로 사무실 운영비 등을 지급하거나 전교조를 정책 파트너로 삼아 교육정책을 결정해선 곤란하다. 법적 지위를 상실한 전교조와 13명의 진보교육감이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정부와 갈등을 빚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사실 이번 판결의 쟁점은 교원노조법의 조항이 노조의 단결권 등을 보장한 헌법을 위반했는지 여부였다. 국가인권위원회나 국제노동기구(ILO) 등의 거듭되는 권고나 선진국의 법률을 검토해 볼 때 노조의 조합원 자격은 법률이 아니라 노조가 자체적으로 결정하며, 해직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교원노조법의 조합원 자격 제한 조항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산별 노조에선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한 판례도 있지 않나. 법원의 판결은 분명히 존중되어야 하나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 조항은 손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후속 조치를 주목한다.






[논리 대 논리]
한겨레 “법조문 기계적으로 해석”…중앙 “법원 결정 존중을”


단계 1 공통 주제의 의미

6월19일, 서울행정법원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법외노조’라는 판결을 내렸다. 조합원 가운데 해직자가 9명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로써 6만명의 조합원을 거느리고 있는 전교조는 법적 지위를 잃게 되었다. 앞으로 전교조는 법률에 기초한 각종 지원을 못 받게 된다. 노조라는 명칭도 사용하지 못하며, 교육당국과 단체협약도 체결할 수 없다. 노조 전임자로 활동하는 72명의 교사도 학교로 복귀해야 한다.

이번 판결에 대한 한겨레와 중앙일보의 입장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한겨레는 법원의 결정이 “법조문에 대한 기계적 해석”이 나은 비극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중앙일보는 사법부는 “법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곳이며,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법치주의”라고 잘라 말한다. 두 신문의 입장을 하나씩 살펴보자.

단계 2 문제 접근의 시각차

한겨레에 따르면, 노조법 제2조에 대한 법원의 해석에는 문제가 있다. 이 조항은 조합원의 지위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노조법에 의하면, 노조는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 근로조건 유지 개선 등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다. ‘자주적’이라는 말에는 노조가 외부의 입김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법원의 판결은 되레 “노조의 자주성을 보장해주기 위한 조항을 가지고 거꾸로 자주성을 질식시켜 버리고 만 꼴”이다. 전교조는 이미 조합원들의 총투표를 통해 문제가 된 해직자들을 안고 가겠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이는 노조의 ‘자주적’인 결정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법원은 9명의 해직자를 노조의 끼어든 ‘외부세력’으로 간주한다.

중앙일보는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는 쪽이다. 그래서 전교조는 “일단 판결에 승복해 노조 전임자를 전원 학교로 돌려보내고, 정부와 시·도 교육청의 예산 지원을 자발적으로 거절하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법치주의”이기 때문이다. 중앙일보의 입장은 법실증주의에 가깝다. 법실증주의는 법률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금지한다. 모든 시민은 실정법을 충실히 지켜야 한다. 법 자체에 문제가 있는지는 헌법재판소가 가려낼 일이다.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 하지 않는 한, 해당 법은 일단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교육계는 혼란에 빠질 것이고,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앙일보도 법원의 결정에 무조건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판결은 분명히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중앙일보는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ILO)의 거듭된 권고를 상기시킨다. 이에 따르면, “노조의 조합원 자격은 법률이 아니라 노조가 자체적으로 결정하며, 해직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어야 한다”. 중앙일보는 대법원이 2004년, 전국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전국언론노조의 경우 해직자까지도 조합원으로 인정한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는 사실도 짚어준다. 이런 상황에서 전교조만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문제가 될 수 있다.

한겨레도 중앙일보도,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 법조항을 손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는 의견을 함께하는 듯싶다. 한겨레 또한 “애초 법률 자체가 해석상의 혼선을 부를 여지가 있는 만큼 국회가 법을 개정해 그 취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교육 현장에서의 충돌을 피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두 신문은 한목소리를 낸다. 한겨레는 “이런 소모전이 지속된다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학생일 뿐”이라고 걱정한다. 전교조는 1999년부터 합법적 지위를 인정받아온 교원노조다. 가입 교원이 6만명에 이르는 단체를 교육당국이 무시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겨레는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 중 진보 교육감이 13명이나 당선됐고 그 가운데 8명이 전교조 출신”이라는 지난 지방선거의 결과를 제시한다. 중앙일보 또한 친전교조·진보교육감 13명이 “전교조를 임의단체로 대우한다면 이를 막을 수 없다”는 현실적인 측면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때문에 정부와 갈등을 빚어 피해가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상황을 우려한다.

단계 3 시각차가 나온 배경

좋은 교육을 하자는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교육현장이 혼란에 휩싸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도 모두의 생각은 같다. 이번 판결이 ‘법원발(發) 이념논쟁’으로 번져서는 안 된다. 두 사설은 교육의 현실과 이를 둘러싼 법리(法理)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고 있다.




[키워드로 보는 사설]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 핵심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지난 6월 19일, 전교조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법외노조 통보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전교조는 합법적인 노조로서의 지위를 잃었다. 그러나 전교조는 판결에 불복, 법외노조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었다. 재판부의 결정에 따르지 않겠다는 것을 명확히 한 셈이다.

재판부가 전교조에 패소 판결을 내린 이유는 네 가지이다. 첫째, 전교조에 소속된 9명의 해직자는 교원노조 가입 자격이 없다. 재판부는 “교원 노조의 자주성, 독립성이 훼손되면 학교 교육이 파행을 겪는 등 국민 전체가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며 교원노조의 가입자격을 교직원으로 제한한 것이 정당하다고 보았다. 둘째,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에 의거, 노조법상 자격조건이 없는 조합원이 가입하면 그 노조는 법적 지위를 잃는 효과가 바로 발생한다고 보았다. 셋째, 전교조는 고용부가 시정조치를 여러 번 내렸음에도 이에 응하지 않았다. 넷째, 1999년 노조 설립 신고 당시, 전교조는 해직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부칙을 감춘 채로 신고를 했다.

이에 대해 전교조 공동변호인단 신인수 변호사는 “사법부 민주주의 시계는 1988년으로 후퇴”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노조법 시행령 제9조 2항은 1988년 정부가 여소야대 국회를 피해 밀실에서 만든 ‘악법’이며, 지금의 판결은 이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 곳곳에서도 현행 교원노조법이 OECD나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비판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으로 정부와 전교조 사이의 힘겨루기와 격렬한 법적 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추천 도서]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권창은 지음
고려대출판부 펴냄, 2005년


“악법도 법이다”는 말은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소크라테스가 기꺼이 독배를 마신 이유는 정의를 지키겠다는 신념에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진정한 법과 실천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준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
안병길 지음
동녘 펴냄, 2010년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에서 법학자 안병길은 보수와 진보는 서로에게 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진정한 대립은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이다. 진보를 앞세우면서도 나만 옳다고 외치는 이들은 적지 않다. 또한 보수라고 힘을 주지만 실은 자기 이익만 챙기려는 이들도 많다. 이들은 진보도 보수도 아닌 ‘권위주의자’일 따름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이런 권위주의자들을 몰아내면서 발전해 왔다. 법의 발전도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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