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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문창극 사퇴] 文 "국회, 청문회 열 의무 있어… 스스로 法 깨면 누가 法 지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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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 회견서 정치권·언론 비판]

"언론이 진실을 외면할 땐 이 나라 민주주의는 희망없어"

"왜 제가 신앙고백하면 안되고 DJ가 '옥중서신'이란 책 통해 신앙고백한 건 괜찮은 건가"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24일 오전 10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진 사퇴하면서 정치권과 언론을 비판했다.

그는 먼저 "저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나라의 근본을 개혁하시겠다는 말씀에 공감했다"면서 "분열된 이 나라를 통합과 화합으로 끌고 가시겠다는 말씀에 조그만 힘이지만 도와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문 후보자는 이어 "그러나 제가 총리 후보로 지명받은 후 이 나라는 더욱 극심한 대립과 분열 속으로 빠져들었다"면서 "이런 상황은 대통령께서 앞으로 국정 운영을 하시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고 했다. 또 "이 나라의 통합과 화합에 조금이라도 기여코자 한 저의 뜻도 무의미하게 돼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때때로 말을 잇지 못하고 눈을 감은 채 숨을 고르기도 했다.

여야와 언론 비판

그는 먼저 청문회를 개최할 법적 의무가 있는 국회가 오도(誤導)된 여론에 밀려 사퇴를 종용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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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김지호 기자


그는 "대통령이 총리 후보를 임명했으면 국회는 법 절차에 따라 청문회를 개최할 의무가 있다"면서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 중에서도 많은 분이 이런 신성한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고 제게 사퇴하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어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깨면 이 나라는 누가 법을 지키겠는가"라며 "오도된 여론이 국가를 흔들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고 했다.

문 후보자는 지난 11일 밤 KBS가 과거 자신의 온누리교회 강연 발언 중 일부만을 발췌해 보도해 자신에게 '친일·반민족'이란 오명이 덧씌워진 데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그는 "언론의 생명은 진실 보도다. 발언 몇 구절을 따내서 그것만 보도하면 그것은 문자적인 사실 보도일 뿐"이라며 "그것이 전체 의미를 왜곡하고 훼손한다면 그것은 진실 보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 후보자는 "언론이 진실을 외면한다면 이 나라 민주주의는 희망이 없다"고도 했다.

문 후보자는 과거 교회에서 한 강연 내용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것과 관련, "신앙의 자유는 소중한 기본권이다. 제가 평범했던 개인 시절 저의 신앙에 따라 말씀드린 것이 무슨 잘못이 되는가"라고 했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의 '옥중서신'이란 책에서 신앙을 고백하며 고난의 의미를 밝혔다"면서 "저는 신앙 고백을 하면 안 되고, 김대중 대통령은 괜찮은 건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나는 독립 유공자의 손자"

문 후보자는 총리 지명 이후 끊임없이 시달렸던 '친일·반민족' 논란과 관련, 자기가 독립 유공자의 후손이란 점을 또 한 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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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저를 친일·반민족이라고 주장하시는 데 대해 저와 제 가족은 너무나 큰 상처를 입었다"면서 "(총리 지명 이후) 뜻밖에 저의 할아버님이 1921년 평북 삭주에서 항일 투쟁 중에 순국하신 것이 밝혀져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 싸움 때문에 나라에 목숨 바치신 할아버지의 명예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사실을 공개치 않고 조용하게 절차에 따라 처리하기로 했다"고 했다.

문 후보자는 지난 10일 기자 출신 최초로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그러나 11일 밤 KBS가 문 후보자의 과거 온누리교회 강연 내용 중 "일제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발언을 보도한 뒤 '친일·반민족'이란 비난을 받았다. 또 지난 4월 서울대 강의에서 "일본으로부터 위안부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문 후보자는 총리실을 통해 해명했지만, 비난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15일 돌발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러나 파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중앙아시아를 순방 중인 박 대통령은 재가 여부를 21일 귀국 이후로 미뤘다. 문 후보자는 지난주 자신의 과거 칼럼과 사진 등을 제시하며 적극 해명에 나섰지만 24일 "지금 시점에서 사퇴하는 것이 박 대통령을 도와드리는 것"이라며 자진 사퇴했다.

[안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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