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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文, 사과 대신 명예회복 주력…여론·국회·언론에 섭섭함 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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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창극 사퇴 / 자진사퇴 배경은 ◆

매일경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사퇴 회견문을 읽고 있다. [박상선 기자]


내용도 형식도 모두 이례적이었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24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무려 14분에 걸쳐 그간 자신을 둘러싼 친일 등 역사인식 논란을 격정적으로 성토했다. 형식은 사퇴 기자회견이었지만 마지막까지 총리 후보 지명 후 실추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안중근을 존경하는 내가 친일인가"라며 지난주 출퇴근길에서 기자들에게 이른바 적극적인 '셀프검증'에 나섰던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 결과적으로 대국민 사과 발언 없이 문 후보자는 마지막에 "제가 사퇴하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님을 도와드리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물러났다.

이날 기자회견장에 선 문 후보자의 입에서 나온 첫 문장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였다. 그러나 잠시 후 자신을 비판했던 여론과 정치권, 언론을 향해 서운함과 아쉬움을 쏟아내면서 기자회견의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외람되지만 감히 몇 말씀 드리고자 한다"며 가장 먼저 자유민주주의와 여론정치라는 단어를 꺼내들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란 개인의 자유, 인권, 다수결에 의해서도 훼손될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는 제도"라며 "이를 위해서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 필요하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국민 의사와 법치라는 두 개의 기둥으로 떠받쳐 지탱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 들고 나서서 자신의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를 거부한 상황을 법치 훼손으로 규정한 듯 그는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깨면 이 나라는 누가 법을 지키겠느냐"고 성토했다.

이뿐만 아니라 "여론은 변하기 쉽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해 지배받기 쉽다"는 단정적 표현을 써가며 자신이 부당한 여론정치의 희생양이 됐음을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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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의 화살을 국회에서 언론으로 돌리며 그는 "언론의 생명은 진실 보도다. 발언 몇 구절을 따내서 그것만 보도하면 문자적인 사실 보도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울러 친일 논란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키려는 듯 지난 23일 자신의 조부를 독립유공자인 문남규(文南奎) 선생과 동일인으로 판단한 국가보훈처의 조사 결과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이 나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의 손자로서 보훈처가 다른 분의 경우와 똑같이 처리해달라"고 호소했다.

회견 마지막에서 유일하게 미안한 감정을 전한 대상은 정작 국민이 아닌 박 대통령이었다. 문 후보자는 "저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이도 그분이시고 저를 거두어들일 수 있는 분도 그분"이라며 "지금 시점에서 제가 사퇴하는 게 박 대통령을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우여곡절 끝에 문 후보자의 거취가 자진사퇴로 일단락됐지만 그 후폭풍은 정치권을 넘어 진보와 보수 세력 간 충돌 양상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당장 문 후보자의 청문회 고수를 주장해온 극우 보수집단이 즉각 발끈하고 나섰다. 야권이 주장한 후보자 자진 철회라는 카드를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무릎을 꿇고 받아들였다는 불만인 것이다. 보수집단 내 분열 조짐이다. 이날 지만원 시스템클럽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탄핵해야 한다"며 "(대통령은) 편법을 선택했고 한 인생을 망쳐놓았다"고 주장했다. 보수 논객인 변희재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 대표도 트위터에서 "박근혜 정권도 오늘부터 애국 진영 지원을 못 받을 걸 잘 알기 때문에 아마도 신임 총리는 박지원, 안철수 등과 상의해서 임명할 거라 본다"고 날을 세웠다. 심지어 "이는 마치 자신들의 안위만을 위해 나라를 팔아 넘긴 이완용과 고종의 방식"이라는 말로 '문창극 카드'를 포기한 청와대를 비난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심상치 않다. 이에 대해 허진재 한국갤럽 이사는 "새로운 총리 지명자가 나올 것이고 그가 얼마나 여론의 지지 혹은 비토를 받느냐, 장관 내정자들이 얼마나 순조롭게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것이냐가 7월 재ㆍ보선까지 남아 있는 '뇌관'"이라고 말했다.

[이재철 기자 / 이상덕 기자 /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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