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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문창극 조부 ‘애국지사’ 주장에, 민족문제연구소 “사망지가 원적지로 둔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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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가 주장하고 있는 문창극 총리지명자 조부의 독립운동 활동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가 다른 입장을 보였다.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은 23일 국가보훈처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대한독립단 대원으로 활동한 애국지사 문남규 선생이 문창극 총리 지명자의 조부와 동일한 인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가 “문창극 지명자측이 총리 후보가 된 이후 보훈처에 조부의 독립운동 사실을 문의해 왔다”며 “한자 이름이 동일하고, 원적지가 같은 점, 문 후보자의 부친 증언 등을 미뤄 문 후보자의 조부를 애국지사 문남규 선생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보도에 의하면 문 지명자의 아버지인 문기석씨(1989년 사망)는 1931년 호주 상속을 받았으며, 생전에 “7세(1921년)때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가 숨졌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국 근현대 민족문제 연구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날 이같은 보도와 관련해 “애국지사 문남규 선생과 문창극 지명자의 조부가 동일인이라고 확정할 수 있는 자료는 아무 것도 없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유은호 책임연구원은 “현재 발굴된 사료로는 문남규 선생의 출생지를 알 수 없다. 다만 대한독립단 주○○휘하 소대 대원으로 1920년(민국2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전사했고 이 같은 내용이 1921년 4월9일자 독립신문에 실려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보훈처 발표와 달리 독립신문 기사의 문맥을 볼 때 (문남규)선생은 1921년이 아니라 1920년에 전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독립신문 기사는 당시 여건상 사건 발생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실리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국가보훈처의 공훈록이나 공적조서에도 문남규 선생의 출생지나 본적이 미상으로 되어 있는데 갑자기 원적지가 ‘삭주’라고 주장하는 보훈처의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만약 삭주 전투를 근거로 삼았다면 ‘만주 독립군의 국내진공’이라는 당시 독립전쟁의 일반적인 양상을 무시한 비상식적 해석”이라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공식 견해는 “문남규 선생은 1920년 삭주에서 전사한 것으로 판단되며 그 외 출생지 등 인적 사항은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설령 문창극 후보의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라고 해도 그의 잘못된 가치관과 역사관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일”이라며, “그의 발언은 독립운동을 부정한 것으로, 선대가 독립운동을 했다면 더욱 언행을 조심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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