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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나도 우리 당을 찍고 싶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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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연합의 한 인사는 이렇게 털어놨다

세월호 참사 없었으면 심판대상은 무력한 제1야당 됐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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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의 측근은 다소 언짢은 심기를 내비쳤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니다.’ ‘여야 모두 깊이 신뢰하지 않는다는 민심의 경고다.’ 그는 6월4일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이런 유의 해석들이 “달갑지 않다”고 했다.

“광역단체장 당선 지역 수를 따지면 우리가 9 대 8로 이겼다. 이긴 건 이긴 건데 왜 (언론 등이) 승패를 정해주지 않지? 야당이 향후 정국 주도권을 갖지 못하게 하려는 거다.”

읍소에 되치기당하는 무력함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책임론에서 빠져나오도록 여권에 패배의 낙인을 찍지 않으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야권 인사라면 그리 생각해볼 수 있겠으나, ‘이긴 건 이긴 건데’란 전제를 부정하는 이도 적지 않다.

“격전지였던 경기지사와 인천시장을 놓쳤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 무능에 대한 분노를 선거에서 야권이 수렴하길 원한 민심의 기대에 비하면 상실감이 큰 결과다. 체감상 패배, 내용적 패배로 봐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재선 의원의 평가다. 당의 다른 인사는 “솔직히 말할까요?”라며 이런 말을 꺼냈다. “투표장에서 광역단체장 정도 찍은 뒤엔 나도 우리 당을 찍고 싶지 않더라.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자’던 새누리당의 선거 캠페인은 후안무치하다. 그런데 이걸 선거전략으로만 판단해볼까? 그만큼 절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보수층 몇%를 움직이게 만든 거다. 저들이 ‘대통령을 도와주자’고 나설 때 우린 어떻게 응수했지? 김한길·안철수 대표는 뭐하고 돌아다녔지? 이번 선거는 어떤 콘셉트였지? 이번 선거에서 어떤 가치를 우리 사회에 말하고 싶었던 거지? 도무지 기억이 안 나더란 말이다. 세월호 참사가 여권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을 가졌던 게 아닐까. 이거야말로 역설적으로 세월호 참사에 편승하려는 무책임한 발상 아닌가?”

박원순(서울), 안희정(충남), 최문순(강원)…. 인물들의 개인 역량에 기댔을 뿐, ‘새정치민주연합’이란 당은 보이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비에 젖은 길바닥에서 절을 하며 ‘도와달라’는 새누리당의 모습은 집권여당이 표를 구걸하는 상황임을 자인한 꼴인데도, 제1야당이 이런 읍소에 되치기를 당하는 무력함을 보였다는 뜻이다.

안철수의 ‘윤장현 일병 구하기’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 선거에서 9명의 광역단체장(호남 3곳 포함)을 배출했다. 비록 졌지만 당 소속 김부겸 후보가 여당 지지세가 두터운 대구시장 선거에서 40.3% 득표율로 선전했다. 문제는 승패 결과가 미치는 정치적 파장이 큰 수도권 2곳(경기·인천)에서 득표율 1% 안팎 차이로 졌다는 점이다. 당에선 막판 추격세가 상승하던 경기, 선거 초반부터 우위를 보인 인천까지 이기는 ‘수도권 3-0 승리’도 내심 기대했다. 당 내부에선 “수도권 1승2패가 대단한 패배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2010년 지방선거도 인천만 이겼을 뿐 1승2패였다.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 사고가 터져도 40%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두꺼운 보수층을 다시 확인한 선거”였다는 자기 위로성 목소리도 들린다. 송영길 인천시장 후보의 측근 비리, 김진표 경기지사 후보의 중도·보수 성향이 표의 확장력을 막았다는 평가도 있다.

패배의 원인을 되짚는 이들은 선거를 지휘하는 ‘컨트롤타워’의 기능 상실을 지적한다. 인천 지역 의원의 진단이다. “기초선거 공천을 뒤늦게 했고, 안철수 사람들을 배려하는 문제로 인천에서도 공천 진통이 많았다. 인천시장 선거란 박빙 싸움에서 밑바닥(기초선거 단위) 조직을 정비할 시간이 빡빡했다. 특히 당 자체 여론조사 지표에서도 선거 막바지에 인천의 위험을 경고했다. 그럼 대중성 있는 당의 인물들을 인천에 집중적으로 보내 세몰이를 했어야 했다. 그런 컨트롤타워가 없었다.”

경기 지역의 다른 의원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진보·개혁 성향 유권자들에게 김진표 후보는 덜 매력적이다. 그럼 개혁 성향 의원들을 경기도 선거 현장에 두루 전진 배치해 그런 단점을 보완하면서, 준비된 도지사라는 김 후보의 역량을 부각시켜야 했다. 안철수 대표도 중도·보수 성향이 강한 경기도의 야권 취약 지역을 다니며 더 지원했어야 했다. 경기도에서 당의 조직된 집중력이 더 필요했다.”

‘선택과 집중’의 결여란 비판에 다다르면, 당내에선 안철수 대표의 ‘광주 올인(다걸기)’ 문제가 동시에 튀어나온다. 안 대표가 ‘안철수 사람’으로 불리는 윤장현 후보를 광주시장 후보로 전략공천한 뒤 그의 당선을 위해 광주에 너무 힘을 쏟았다는 것이다. ‘윤장현 당선’이 ‘안철수의 정치적 생명’과 직결됐다는 논리에 갇혀 한정된 선거기간의 일부를 아깝게 허비했다는 지적이다. 김기식 의원은 “안 대표가 지방선거 전체 평가와 무관한 광주에 묶이고 말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무책임한 정권에 경고해야 한다는 야권 지지층의 요구와, ‘윤장현 일병 구하기’에 올인하는 안 대표의 모습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 직후 제1야당은 아무것도 주도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민심의 흐름보다 뒤처진 채 뒷북을 울리는 식이었다. 시민들이 정부의 무능과 책임을 앞서 주장하며 한참 앞으로 내달린 뒤에, 정부 책임을 거론하며 뒤쫓아가는 모습이었다. 이마저도 “우리는 박근혜 심판론, 박근혜 책임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 책임론”이라고 선을 긋는, 얌전하고 소극적인 대응이었다.

박 대통령이 지난 4월29일 국무회의 의자에 앉아 사과성 발언을 한 뒤 민심이 악화됐을 때 나온 김한길 대표의 한마디는 여론과 괴리된 인식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다. 유가족들은 사과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지만, 김 대표는 오히려 “대통령의 사과가 국민들께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해 여론을 격앙시켰다. 당 대표 비서실 관계자는 “비서실에서 (당시 발언문을) 써드린 내용은 아니었다. 뭔가 위로가 돼야 한다는 원론적 얘기 아니었겠나”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수도권 선거 현장을 돌아다닌 한 의원은 “그러한 실책들이 핵심 당원, 지지층의 신뢰를 깎아먹는다. ‘선명야당도 아니고, 대안야당도 아니고, 너희들 정체가 뭐냐’는 비판을 부르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허둥댈 때 야당이 중심 잡았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참사 이전에 민생을 살리기 위한 공약을 충실히 준비했지만, 세월호 침몰 이후 급변한 정국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5월22일, 안 대표가 서울 강남역 거리 등에서 ‘유모차 집회’를 한 엄마들을 만난 것은 선거전략이 치밀하지 못한 돌발적 대응의 사례로 꼽을 만하다. 이들과의 만남은 정부에 화난 30~40대 여성의 표심을 잡으려는 계산이 깔렸다. 당 지도부는 ‘가장 보수 성향이 강한 강남에 사는 엄마들이 집회를 한 움직임에 주시한다’며 이들을 국회로 불렀으나, 당시 집회에 나온 이들은 강원도 춘천, 인천, 비강남권 서울 등에 사는 엄마들이 대부분이었다. 안 대표 쪽이 만남을 제의하자 집회에 나온 엄마들의 모임에서조차 “제1야당 대표가 유가족, 실종자 가족 등 더 다급한 분들을 만나거나 세월호 진상 규명에 힘을 실어야 할 판에, 공식 선거운동 첫날 유모차 엄마들을 만나는 것은 너무 정략적”이라는 비판론이 제기됐다. 한 당직자는 “엄마들이 선거 이벤트에 동원되는 것 같은 부담도 느껴 이런 만남을 한 번으로 끝냈다”고 말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세월호가 터졌을 때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당으로서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가 터진 뒤 제1야당은 당 차원에서 현장에 있어야 했다. 유가족 곁에 있으면서, 정부와 중재하고, 정부가 이렇게 해야 한다고 대안을 적극 얘기하면서 불안한 유권자에게 책임 있는 야당의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정부가 허둥댈 때 야당이라도 중심을 잡고 역할을 했다면 유권자가 다른 평가를 했을 것이다.”

물론 야당이 ‘내용적 패배를 당했다’고 평가하더라도, 정부에 대한 심판 정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으며, 박근혜 정부에 힘을 실어준 결과라고 확대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 교수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 무능을) 심판하려 했으나, 심판을 위임한 야당이 (그걸 다 받아안기에) 부실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도 “야당이 실력이 없어 여론을 더 수렴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노회찬 전 정의당 공동대표는 “세월호 참사가 아니었으면 이번 선거에서 민심의 심판 대상은 무력한 제1야당이 됐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궁지를 모면한 것은 야당”이라고 했다. 정부·여당에 대한 세월호 참사 심판론이 투표장으로 이동한 덕에 제1야당이 이 정도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는 뜻이다.

‘제1야당=알박기 정당’이란 오명

정치권 안팎에선 향후 새정치민주연합이 여당에 끌려다니지 않고 ‘세월호 국정조사’를 포함한 진상 규명 노력을 얼마나 악착같이 해내느냐에 제1야당의 존재 가치가 달려 있다고 말한다. 이후 전개될 청와대·내각 인사, 박근혜 대통령식 국가개조론의 부실에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서 교수는 “국정조사에서 여당과 적당히 타협하는 게 아니라 유가족 입장에서 진상을 규명하고, 그래도 미심쩍은 게 있으면 자체 조사도 하면서 믿을 만한 구석을 하나라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제1야당=알박기 정당’이란 오명을 벗는 혁신도 요구받고 있다. 선거 때마다 여권을 견제하기 위해 힘을 실어달라는 논리로, ‘제1야당 지위’를 계속 박아놓고 연명해왔다는 게 ‘알박기 정당 비판론’이다. 김태일 교수는 “민주당과 안철수가 합당한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체성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민심이 야당의 손을 완전히 들어주지 않은 이유가 뭘까? ‘책임 있는 세력인가, 신뢰할 만한가, 능력이 있나, 안정감 있는 세력인가’란 물음에서 국민의 의심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진보·개혁 성향 모임 ‘더 좋은 미래’ 소속의 한 의원은 “서울시장 박원순, 서울교육감 조희연이 당선된 의미를 살펴야 한다. 가치와 노선을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고 진정성으로 신뢰받는 정치의 필요성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양적인 경제성장, 효율성 위주의 강퍅한 세상에서 사람 사는 세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시대정신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이 설치한 ‘프레임(구도)이란 덫’에 걸려 끌려다니는 ‘얌전한 야당’이 아니라, 정국의 흐름을 바꿀 줄 아는 강한 야당이 돼야 한다는 주문이기도 하다. 노회찬 전 대표는 그것이 “세월호 참사 때문에 (선거에서) 구사일생”한 제1야당의 책무라고 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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