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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대한민국, 길을 묻다] "국가적 불행 앞에 與野가 어디 있나… 政爭 중단 선언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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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인터뷰] [4] 이종찬 前 국정원장

정부의 말과 반대로 행동해야 내 가족이 산다는

不信풍조가 사회에 급격히 퍼지고 있는 게 가장 뼈아파

현장 지휘관 없는 현장… 책상·전시행정 폐해 드러나

공무원들 윗선만 쳐다보다 '골든타임' 놓치는 일 없어야

전교조 등의 정치적 선동, 상갓집에서 도둑질하는 꼴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9일 본지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 불행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은 여야(與野)를 불문하고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우당(友堂)기념관에서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2000년 9·11 테러 이후 '우리는 공화당도 아니다. 민주당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라며 정쟁 중단을 선언하고 한목소리를 냈다"며 "우리 정치권도 '우리는 새누리당도, 새정치민주연합도 아니다.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선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의회가 여야 동수(同數)로 9·11 테러 진상조사위를 만들었던 협치(協治)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우리 정치권과 국회가 그런 모습을 보여줄 때 대한민국도 세월호 참사를 이겨내고 한 단계 성숙한 사회로 나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9일 서울 종로구 우당기념관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2000년 9·11 테러 직후 미국 정치권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정치권도 ‘우리는 새누리당도, 새정치민주연합도 아니다.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선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형주 기자


이 전 원장은 독립운동가인 우당(友堂) 이회영 선생의 손자다. 현재 우당기념관 관장과 우당장학회 이사장,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경기고와 육군사관학교(16기)를 졸업한 이 전 원장은 1965년 육군 장교 신분으로 국정원의 전신(前身)인 중앙정보부 공채 1기로 들어가 총무국장과 기조실장을 지냈다. 1980년 민정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해 4선 국회의원과 민정당 원내총무, 사무총장, 정무장관 등을 역임했다. 1995년 김대중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면서부터 야권에 몸담았다. 이 전 원장은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 대선기획본부장을 지냈고, 김대중 정권에서 초대 국정원장(1998~1999년)을 맡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에 대한 불신(不信)이 위험수위에 이른 것 같다.

"이번 사고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그중 가장 뼈아픈 것은 정부가 하는 말을 믿지 않거나 오히려 반대로 행동해야 나에게 이득이 되고 내 가족이 살 수 있다는 불신 풍조가 사회에 급속하게 퍼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나 관(官)의 지시를 따르면 안 된다는 병(病)이 스며들었다. 일선 학교에서도 교육자들이 학생들을 지도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교사 지시를 따르면 손해 본다는 풍조가 만연할 테니까."

―지하철 추돌 사고 때 시민들은 안내 방송이 나오지 않자 지하철 선로로 뛰어내렸다. 외국인들은 이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도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반대편에서 지하철이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선로로 뛰어내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그러나 그만큼 정부나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불신 벽이 높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 모습을 보며 참담했다."

―만일 전시(戰時)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찌 되나.

"끔찍한 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전시에는 무기와 핵심 물자가 이동하는 '전략 도로'라는 것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불이 났을 때 소방차를 위한 소방 도로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부를 믿지 못하면 국민은 군이 통제하는 전략 도로로 모두 뛰어들어 자기 살길을 찾으려 할지 모른다. 정부가 방공호로 대피하라고 하면 들판으로 뛰는 일이 벌어지고….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공무원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에 책상 행정, 전시 행정의 폐해가 드러났다. 현장에는 현장 지휘관이 없었다. 이번처럼 위급한 상황에서도 공무원들은 괜히 나섰다가 자신이 책임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윗선만 쳐다보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사고가 발생하면 우리 공무원들은 현장에 가는 대신 전화를 붙들고 국장이나 장관에게 보고할 숫자부터 챙긴다. 모두가 뛰어야 할 상황에서 모두가 눈치만 본 것이다."

―선진국의 공직 사회는 어떤가.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는 대장성 관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고졸이고 당신들은 도쿄대를 나왔다. 그러나 나는 총리고 당신들은 내 부하다. 권한은 너희가 모두 가져가라. 책임은 내가 지겠다.' 이런 권한 위임이 공무원들을 움직이게 했다.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 때 미국 백악관의 모습을 보라. 제복을 입은 군인이 중앙에 앉아 작전을 지휘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리더는 책임을 지지만 권한은 총리, 장관, 그리고 현장 지휘관에게 과감히 줘야 한다."

―이번에도 대통령 한 사람만 쳐다본 것 아닌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주 했던 말이 '내가 해봐서 아는데…'였다. 박근혜 대통령도 모든 것을 자신이 챙기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역대 대통령이 모두 비슷했다. 대통령 한 사람만 쳐다본다는 점에서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크게 다르지 않다."

―공직 사회만 문제가 아니라 민간 부문의 '적당주의' 폐해도 드러났다.

"세월호 대리 선장은 사고 당시 제복(制服)을 입고 있지 않았다. 규정대로 그가 제복을 입고 있었다면 그렇게 무책임하게 승객들을 내팽개치고 도망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사고 원인을 더 조사해야 하지만 화물을 과적(過積)하거나 평형수를 채우지 않는 등 적당주의가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적당주의가 안전의 적(敵)이라는 뜻인가.

"안전과 적당주의는 상극이다. 민간은 규정을 알면서 우기거나 대충 넘어가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공무원들은 이를 봐줬다. 앞으로는 그래서는 안 된다. 서울 지하철 추돌 사고도 이전부터 신호 장치에 문제가 있었지만 내버려둬 온 적당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이 시급히 할 일은 무엇인가.

"전면 개각은 어렵겠지만 내각의 대폭 교체를 통해 심기일전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대통령이 야당 지도자와 만날 필요는 없나.

"야당에 새 원내대표가 선출됐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야당이 계속 공격적으로 나오겠지만 대통령이 야당을 만나 직접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국정조사의 시기와 범위를 놓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다.

"국정조사는 필요하다. 그러나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5월 실시는 불가능하다."

―정치권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우리 옛말에 상갓집에서 도둑질한다는 말이 있다. 염치가 없다는 말이다. 전교조가 세월호 추모 동영상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적 선동에 나서는 것 같은데 그런 경우가 상갓집에서 도둑질하는 것이다."



[정우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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