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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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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거품은 결국 꺼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가상자산 시장은 그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반복해서 부풀어 오른다. 2024년 한국의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코인니스와 디스프레드가 3,1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4 대한민국 가상자산 개인 투자자 트렌드 리포트'는 우리에게 흥미로운 단면을 보여준다.

누가 투자하는가

요즘 지하철에서 가상자산 차트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다양해졌다. 예전에는 대부분 젊은 남성이었지만, 이제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부터 정장 차림의 여성 직장인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통계는 이러한 변화를 숫자로 보여준다.

30대가 36.79%, 40대가 30.09%로 전체의 약 70%를 차지한다. 이들은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경험한 세대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치솟는 부동산 가격 사이에서 새로운 부의 축적 방식을 찾고 있는 이들이다. 그리고 최근 두드러지는 변화는 여성 투자자의 증가다. 2년 전 8%에 불과했던 여성 비율이 31.32%로 급증했다. 꼭 남성만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가상화폐 투자에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금융 문맹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산 관리를 하려는 여성들의 의지를 반영하는 듯하다. 돈에 대해 무지한 채로 살아가는 것이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일 것이다.

그들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종종 가상자산 투자자를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꾼으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절반 이상이 1,000만 원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가장 많은 24.59%는 1,000만~5,000만 원대의 자산을 갖고 있다. 100만 원 이하의 소액 투자자도 18.41%에 달한다. 이들은 로또 당첨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계산된 리스크를 감수하며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투자 기간도 다양하다. 전체의 40%는 3년 이상의 베테랑이다. 그들은 2021년 불마켓의 광기와 그 이후의 쓸쓸한 겨울을 모두 견뎌낸 사람들이다. 한편, 33%는 2024년에 새롭게 유입된 신참이다. 트럼프의 당선과 비트코인 ETF 승인이라는 호재에 현혹된 이들일까, 아니면 치밀한 계산 끝에 진입 시점을 잡은 이들일까. 누구도 그 결과를 단언할 수 없다.

무엇을 사고, 얼마나 벌었는가

비트코인은 여전히 왕이다. 28.65%의 압도적인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리플(14.43%)과 이더리움(9.96%)이 따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도지코인(4.04%)과 같은 밈코인의 인기다. 트럼프 당선 이후 11월 7일부터 13일까지 국내 5대 거래소에서 도지코인은 약 178억 달러의 거래대금을 기록했다. 인간은 언제나 실용성보다 이야기에 더 끌린다는 증거일까.

2024년 4분기 상승장의 영향으로 70%의 투자자가 수익을 내었다. 하지만 대부분(43.06%)은 0~50% 사이의 제한적인 수익률에 그쳤다. 자신의 인생을 바꿀 만한 수익을 올린 이들은 소수다. 상위 3.57%만이 300%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로또와 같은 극적인 인생 역전보다는, 차근차근 자산을 불려나가는 과정에 가깝다.

그들은 어떻게 투자하는가

스스로의 투자 역량을 어떻게 평가할까. 58.19%가 '중급'이라고 답했다. 블록체인 기술은 잘 모르지만, 투자에 따른 리스크는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초급과 고급은 각각 20.89%로 동일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나름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만, 전문가라고 자부하지는 않는다.

암호화폐 투자 결정에 뉴스(29.33%)와 차트 분석(22.75%)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정보의 바다에서 그들은 나름의 방향타를 찾아 항해하고 있다. 투자 방식으로는 현물 투자(76.08%)가 압도적이다. 국내 거래소에서 파생상품 거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복잡한 금융상품보다 단순하게 '사서 보유하는' 전략을 선호한다.

특이한 점은 밈코인 투자 비율이 52.62%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정적인 요소가 투자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다. 인간은 결국 감정적인 존재이며, 투자 역시 그 감정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보를 어디서 얻는가

가상자산 정보는 주로 커뮤니티(30.34%), 미디어(22.15%), SNS 채널(21.67%)에서 얻는다. 전통적인 금융 정보와 달리 가상자산 정보는 분산되어 있고, 때로는 신뢰성이 의심스럽다. 그들은 정보의 파도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채널을 찾아 헤엄치고 있다.

국내 암호화폐 미디어로는 코인니스(70.13%)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였다. 커뮤니티로는 코인판(34.46%)과 디시인사이드(21.37%)가 인기다.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에서 그들은 자유롭게 정보를 교환하고, 때로는 서로 위로하며 광풍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가장 좋아하는 암호화폐 관련 유명인사는 일론 머스크(40.18%), 도널드 트럼프(27.6%), 마이클 세일러(12.45%) 순이다. 기술적 측면보다는 영향력 있는 인물의 발언과 행동이 시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보여준다. 가상자산 시장은 결국 기술이 아닌 사람의 심리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그들이 바라보는 미래

2025년 암호화폐 시장에 대해 91.96%가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83.48%는 비트코인이 1.5억 원 이상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낙관론자들의 전당이라고 할 수 있다. 37.26%는 2024년보다 더 공격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장 관심 있는 이벤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가상자산 정책(42.93%)과 국내 과세 정책(25.49%)이다. 정부와 제도의 틀 안에서 가상자산이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반영되어 있다. 한때 정부와 기성 금융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된 가상화폐가 이제는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결국, 사람의 이야기

이 모든 통계와 수치 뒤에는 사람이 있다. 반복되는 야근 끝에 지친 눈으로 코인 차트를 들여다보는 30대 회사원, 아이들 재워놓고 텔레그램 채널을 스크롤하는 40대 엄마, 퇴직금으로 조심스럽게 비트코인을 매수한 50대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은 왜 가상자산에 투자할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기존 금융시스템에서 느끼는 소외감 때문일까. 혹은 급변하는 세상에서 한 발 앞서가기 위한 노력일까.

그 답은 모두에게 다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가상자산 시장이 더 이상 변방의 투기판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새로운 금융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부와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거품은 언젠가 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배우고, 변화하고, 성장할 것이다. 가상자산의 진정한 가치는 어쩌면 그 과정에 있는지도 모른다.


글 : 손요한(russia@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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