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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풍경] ‘양심 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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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장

이투데이

“향수 냄새가 너무 심해요.” 엘리베이터에 탔던 사람이 내리자, 코를 막으며 아내가 말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코를 잡는 시늉을 하자 아내가 웃는다. “아마 후각 피로 때문에 그랬을 거야.”

우리 후각신경은 특정 냄새가 지속될 때 그 냄새에 무감각해지고,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을 ‘후각 피로(olfactory fatigue)’라 부르는데, 엘리베이터 사건처럼 향수를 뿌리고 시간이 지나 향기가 나지 않는다고 느껴 더 뿌리는 것도, 고약한 냄새가 시간이 지나면 참아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후각 피로가 생긴 덕에 우리 코는 한 가지 냄새를 차단함으로써 또 다른 냄새에 예민함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동물처럼 자신을 공격하는 천적의 냄새에 오랫동안 민감할 필요가 없는 대신 빠르게 변하는 주변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인간에겐 더 유리하다.

또 후각은 맛감각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후각이 마비되면 맛을 잘 못 느끼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듯) 냄새를 맡지 못하면 상한 음식을 구별하지 못해 식중독에 걸리기 쉽고, 따라서 수많은 음식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우리 코는 새로운 냄새에 민감해야만 했다.

하지만 후각 피로가 아님에도 무뎌지는 감각이 있다. ‘양심 피로(conscience fatigue)’가 그것이다. 양심에 찔리는 일을 한 후 죄책감이란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진화한다고 주장한다면그보다 어불성설은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법주차, 무단횡단 및 쓰레기 무단 투기 등 양심 피로 족으로 진화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특히 포털사이트를 뜨겁게 달구는 일부 지도층의 그런 진화를 접할 때면 씁쓸함을 넘어 분노가 일곤 한다.

후각 피로 때문에 자신에게 나는 냄새를 맡지 못할 경우, 해결책은 타인에게 물어보거나 자신이 벗어놓은 옷에 밴 냄새를 맡아보는 방법이 있다. 양심 피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신과 비슷한 냄새를 가진 무리를 떠나 타 그룹에 조언을 구하거나, 제삼자의 입장으로 자신이 했던 일들을 복기해 본다면 양심 피로를 극복할 수 있고, 더불어 돌연변이로 생긴 양심 피로 족의 탄생을 막는 방법도 될 것이다. 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장

[이투데이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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