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돌아왔다.
올해 들어(3월 16일 기준)나스닥이 8% 하락하고 있는 와중에, 홍콩 항셍테크 지수는 32% 상승했다. 뉴욕증시의 테슬라, 엔비디아 등 이른바 ‘M7·매그니피센트7’ 기업이 주춤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알리바바·비야디·텐센트 등 ‘중국판 M7’ 기업들이 대거 약진하고 있는 것이다. 테크 기업 때리기로 일관했던 중국 정부도 전방위 지원으로 태도를 바꿨다. 홍콩 항생테크 지수는 홍콩증시에 상장된 주요 기술주 가운데 시가총액 상위 30개 종목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기술 기업들이 1분기가 지나기도 전에 30%가 넘는 주가 상승률을 기록하는 데는 바로 ‘중국판 M7’ 기업이 있다. 텐센트, 알리바바, 샤오미, 비야디, 메이퇀, SMIC, 레노버 등 7개 기술주가 여기에 속한다. 이 중 알리바바가 64% 주가가 올랐고, 비야디가 33% 상승했다.
알리바바는 최근 2억 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자사 인공지능(AI) 비서 ‘쿼크’ 브라우저의 업데이트 버전을 공개하며 더 빠른 AI 생성 결과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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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영문 관영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자산운용사 위즈덤트리 소속 제프 베니거 분석가 발언을 인용해 “T10이 M7을 대체하는 용어로 자리잡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명 ‘테리픽(Terrific) 10’인 T10은 반도체와 전기차, 인공지능(AI) 등 차세대 첨단산업에 속한 중국 상위 10개 기업을 묶어 부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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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7~10개 종목으로 구성돼 중국을 리드하는 기술 기업들의 투심을 자극한 것은 바로 중국의 저비용 고성능 인공지능(AI) 챗봇 ‘딥시크’ 열풍이다. 딥시크 출연 이후 중국의 인공지능(AI) 혁신에 충격을 받은 글로벌 자금들이 중국 증시로 들어온 것이다.
삭소 마켓의 차루 차나나 수석 투자 전략가는 “딥시크의 성공에 이어 중국 AI 모델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미국의 반도체 수출 제한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혁신 능력을 과소평가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전 세계에 확인됐다”며 “아직 실적 대비 주가가 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중국 AI 기업들의 상승세는 이어질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글로벌 자금은 인도에서 중국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 몇 년간 인도는 막대한 인프라 투자와 중국을 대체할 제조 허브로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투자 자금을 끌어모았으나, 중국 증시에 밀려 매력이 줄어들고 있다. 자산운용사 캔드리암의 펀드 매니저인 비벡 다완은 “딥시크 열풍이 중국 경제와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모든 요소를 종합하면 위험 대비 보상 측면에서 중국이 인도보다 훨씬 매력적”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에서는 AI 랠리가 AI 인프라 → AI 지원업체 → AI 도입 기업 순으로 진행됐는데, 중국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HSBC는 “중국 AI 기업과 미국 AI 기업 간의 밸류에이션 차이가 여전히 크며 향후 성장과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그 격차가 좁혀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킹어 라우 골드만삭스 전략가는 “광범위한 AI 채택이 향후 10년간 중국 기업의 주당순이익(EPS)을 매년 2.5% 증가시킬 것”이며 “중국 상장 기업 주가를 15~20% 올리고 2000억달러가 시장으로 유입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위스계 금융기관 UBP의 베이 선 링 이사도 “최고 수준의 정부 지원, 실적 회복, AI 테마 등 중국 기술주들이 아웃퍼폼(수익률 상회)할 재료들이 있다”며 “미국 기술주들의 밸류에이션은 2년 동안 상승했지만 이제는 거시경제적 요인과 실적 실망감이 매도세를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증시 이끄는 알리바바·비야디
중국 증시 랠리 분위기를 주도하는 대장주는 중국 전자상거래&클라우드 서비스 1위 기업인 알리바바다. 애플이 중국 아이폰에 알리바바의 인공지능(AI) 기술을 탑재키로 하면서 중국 AI 대표주로 부상했고, 알리바바 매수세는 점점 커지고 있다. 알리바바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 증가한 2802억위안(약 55조원), 순이익은 464억위안(약 9조1000억원)으로 4배가 넘게 늘어나는 등 양호한 실적을 선보였다. 특히 AI 관련 매출이 6분기 연속으로 세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AI로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 셈이다. 앞서 지난 1월 내놓은 AI 모델 ‘큐원 2.5-맥스’를 두고, 알리바바는 “GPT-4o, 딥시크-V3, 라마3.1 등을 모든 영역에서 뛰어넘었다”며 압도적인 성과를 자평한 바 있다. 알리바바는 향후 3년동안 클라우드와 AI 인프라에 3800억위안, 우리 돈으로 7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투자 금액은 클라우드와 AI 분야에 대한 알리바바의 지난 10년간 투자 총액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중국 민영기업 가운데서도 AI 분야에 대한 역대 최대 투자 금액이다. 물론, 미국의 빅테크 기업의 AI투자금액에는 여전히 못미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알파벳, 아마존, 메타 등 4곳이 각각 올해만 3200억달러, 한화로 463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힌 점에서도 현저하게 차이난다. 다만 이미 투자금 대비 가성비 좋은 AI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딥시크AI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중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자본을 쏟아부을 때 이전과는 다른 파괴적 혁신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들도 있다.이미 월가는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억만장자 투자자인 라이언 코헨이 중국 알리바바 지분을 10억달러까지 늘렸다고 지난 2월 말 보도했다. 2023년 초부터 투자금을 늘려왔는데, 현재 1조 4000억원 수준까지 지분을 키운 것이다. 미국의 대표 ‘밈 주식’ 게임스탑 CEO인 라이언 코헨은 월가에서 대표 행동주의 투자자로 알려져 있다. 또다른 미국의 억만장자 투자자 데이비드 테퍼가 설립한 헤지펀드 애팔로사 매니지먼트도 알리바바 지분을 18% 추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중국 전기차 1위 기업인 BYD도 자율주행 기술에 중국 스타트업이 개발한 생성형 인공지능(AI) ‘딥시크’를 도입키로 했다. <사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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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대 전기차 회사인 비야디(BYD)도 비야디는 딥시크와 손잡고 중국 내 전 차종에 자율주행 시스템을 적용한다고 밝히며 회사 가치를 높이고 있다. 자사의 저가 모델을 포함한 거의 모든 차종에 첨단 자율주행 시스템을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회사는 ‘신의 눈’이라는 자율주행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왕촨푸 BYD 회장은 지난 2월 “자율주행 시스템이 더는 가질 수 없는 사치품이 아니며, 안전벨트와 에어백처럼 필수 도구”라고 강조했다.
기존에는 3만달러(한화로 4300만원 이상) 모델에만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했다면, 이제는 10만위안(약 1988만원) 이상 차량에 ‘신의눈’을 기본 탑재하기로 한 것이다.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비야디의 올해 판매 예상치를 상향 조정하며 “비야디가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토요타’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왕찬푸 회장은 중국 국영 방송사와 인터뷰에서 “중국 전기 자동차가 경쟁사들보다 3~5년 앞서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는데, 비야디는 지난해 4분기 동안 순수전기차 판매량에서 최대 라이벌 기업인 테슬라를 처음으로 앞지른 것으로 집계됐다.
中 정부 전방위 지원 시작
최근 막을 내린 중국 최대 정치행사 ‘양회’(兩會)에서 공개된 중앙정부의 올해 연구개발(R&D) 예산은 전년 대비 10% 증액된 3981억위안(약 80조원)이다. AI와 양자컴퓨터 등 첨단기술 투자를 위해 약 1조위안(약 200조원) 규모의 국부펀드를 만들기로 했다.딥시크를 비롯해 유니트리, 딥로보틱스, 브레인코, 매니코어, 게임사이언스 등 ‘항저우 6소룡’을 미국에 대항할 중국 과학기술의 상징으로 분류하고, 이들의 성장을 본격 돕는 과정에서 중국 내 거대 기술주도 수혜를 볼 것이라는 복안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들 중국 항저우에 거점을 둔 AI·로봇 스타트업들은 항저우시 혁신 펀드를 통해 자금을 조달해 연구·개발을 이어왔고, 모두 적은 비용으로도 가파르게 성장해왔다”고 설명했따.
중국 정부의 AI 고도화 등 첨단 기술에 대한 대거 지원은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기술 기업 수장들을 직접 만나는 좌담회 행사를 마련해 직접 격려했던 일정과 맥을 같이 한다. 이 자리에는 중국 정부에 쓴소리를 했다가 낙인이 찍혔던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도 초대됐다. 일각에서는 “마윈을 초대한 건 2020년부터 시작된 기술 단속의 상징적 종료를 의미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딥시크와 중국 기술주의 상승세로 화려하게 부활한 마윈은 다시 중국 중심에 자리를 잡았다. <사진 연합뉴스> |
마윈은 지난 2020년 “중국 국영은행은 전당포”라고 비판해 시 주석에게 미운털이 박혔다. 그 뒤 중국 당국으로부터 앤트그룹 상장 무기한 연기, 독점규제법 위반에 따른 과징금을 부과받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자취를 감췄다. 현재는 5년만에 경영복귀 가능성도 임박해졌다. 마윈의 컴백 자체로 알리바바에 대한 대규모 지분 투자 등이 펼쳐질 가능성이 더 커졌다.
한편, 상승가도를 달리는 중국 증시의 유일한 문제는 미·중 갈등이 지속된다는 점이다. 언제든 중국 기술 기업에 대해 미국이 추가로 제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트럼프의 호혜적 관세 정책이 본격화될 경우, 중국 기술 기업들의 해외시장 접근성이 한층 축소될 수 있다. 이에 중국 정부는 내수 시장 활성화를 위해 올해 1분기 2조 위안 규모의 소비자 지원 패키지를 발표했지만, 아직 부동산 시장 침체와 청년 실업률 18.4%라는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홍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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