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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에 빙의한 이병헌…아름다운 어른의 성장담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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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승부’.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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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승부’를 연출한 김형주 감독은 2021년 2월 열렸던 청룡영화상 시상식을 잊지 못한다. 그날 배우 유아인은 이병헌을 비롯해 쟁쟁한 선배들을 누르고 영화 ‘소리도 없이’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문제는 다음날. 하필 ‘승부’의 하이라이트 장면, 바둑 황제 조훈현(이병헌)이 자식처럼 키운 제자 이창호(유아인)에게 패배를 당하는 신의 촬영 일정이었다. 전날 시상식과 묘하게 겹쳐지는 상황으로 감독과 스태프들 사이에 서걱서걱한 공기가 흐르고 있을 때 현장에 온 이병헌이 웃으며 침묵을 깼다. “그러니까 어제 아인이가 수상하고 제가 떨어졌을 때 그 심정이죠?” 그의 농담 한마디로 현장에는 따뜻한 바람이 훅 들어왔다. 김 감독은 ‘어른이구나’ 느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26일 개봉하는 ‘승부’는 묵직하게 아름다운 어른의 성장담이다.



‘승부’는 세계 바둑사에 다시 없을 스승과 제자의 치열한 승부와, 제자에게 패배한 스승의 감동적인 재기를 그렸다. 바둑 팬들에게는 알려진 유명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바둑을 모르는 관객들에게는 ‘이게 실화라고?’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힌 이야기가 펼쳐진다. 바둑이라는 소재의 특성상 무대는 단조롭고 배우들의 표정은 알듯 말듯 고요함에도 실화가 가진 힘과 두 주연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 신공으로 두시간의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영화 ‘승부’.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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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회를 제패하며 일인자로 자리 잡은 조훈현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발칙한 소년 이창호의 재능을 알아보고 제자로 집에 들인다. 그리고는 자식처럼 애틋하게 먹이고 재우면서 가르친다. 화려하고 공격적인 바둑을 두는 조훈현과 달리 답답하지만 지지 않는 전술을 구사하는 이창호는 성격도 기질도 달라 부딪히기도 한다. 묵묵히 스승의 스타일과 전술을 공부하던 이창호는 무섭게 치고 올라와 불과 16살 나이에 스승과 결승 대국에서 마주 앉는다.



영화는 제자에게 쓰디쓴 패배를 당하는 스승, 그리고 절치부심 후 제자에게 도전하는 스승의 두 대국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승부’는 열심히 노력해 왕좌를 다시 거머쥐는 기쁨을 보여주는 ‘록키’ 같은 영화가 아니다. 2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병헌은 액션은 물론 표정도 절제해야 해서 운신의 폭이 좁디좁았던 이 영화의 시나리오에 매료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영화 ‘승부’에서 조훈현 9단을 연기한 배우 이병헌.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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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승부’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조훈현 9단의 실제 대국 모습.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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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에 살면서 아들처럼 키우며 같이 밥 먹고 가르치고 야단치고 그러다가 결승전에서 붙게 됐는데, 1%도 예상 못했던 패배를 했잖아요. 거기서 끝이 아니라 둘이 함께 터벅터벅 걸어서 집에 돌아와요. 한없이 적막한 집안에서 사모님(조훈현의 아내, 문정희 역)은 2층 창호 방에서 복기한다고 내는 바둑알 소리를 들으며 1층 거실에서 말없이 담배만 피워대는 남편을 지켜봐야 하죠. 다음날 사모님이 두 사람을 차에 태워 경기장으로 갈 때의 그 어색한 공기와 이루 말할 수 없는 묘한 감정들이 있죠. 이처럼 이 작품만의 특별한 정서를 저뿐만 아니라 출연한 다른 배우들도 너무나 연기해보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의 말대로 영화는 승리나 재기의 드라마에 머물지 않는다. 한집에 사는 제자에게 속절없는 패배를 경험하면서도 타들어 가는 속을 드러낼 수 없었던 스승의 일렁이는 마음이 성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담아낸다. 승리를 예감하면 다리를 떨고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는 조훈현의 습관 등을 가져오면서도 묵묵하게 고통과 환희를 표현한 이병헌의 연기는 역시나 명불허전이다. 이전에 주로 맡아온 선 뚜렷한 캐릭터들과 달리 ‘돌부처’(이창호의 별명)를 연기하면서 마음의 미세한 파동을 정교하게 담아낸 유아인 역시 영화의 균형추를 황금비율로 잡는다. 이주 초 ‘미키 17’의 독주를 꺾고 예매율 1위에 올랐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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