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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7 (목)

"트럼프가 사법부에 선전포고" 보수도 걱정하는 미국 법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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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연방판사 “추방보다 준법이 우선”
공화당서도 우려… “나라면 안 그래”
내각은 여론전… “계속 미국인 보호”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5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오벌 오피스)에서 팸 본디(가운데) 법무장관의 취임 선서를 앞두고 연설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클래런스 토머스 연방대법관. 워싱턴=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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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법이 왕이다.”

영국 출신 사상가 토머스 페인(1737~1809)은 미국이 영국 왕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1776년 소책자 ‘상식’에 이렇게 썼다. 저 신념을 토대로 근 250년간 지속돼 온 미국의 법치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법의 권위를 무너뜨려 그 위에 군림하려는 지도자가 출현하면서다. 올 1월 집권 2기를 시작한 47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전횡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그의 지지 기반인 보수 진영에서도 작지 않다.

판사 권한까지 탐내는 대통령


보수 성향인 마이클 러티그 전 미국 연방항소법원 판사는 2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 사법 제도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다며 “250년 전 미국인들이 영국 군주제에 맞선 독립 전쟁을 통해 쟁취한 입헌 민주주의가 희생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이미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이 트럼프에게 신하로서 충성 서약을 한 상황이라 독립적 사법부 말고는 그를 견제할 기관이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러티그는 지난 18일 트럼프가 워싱턴 연방지법의 제임스 보스버그 판사를 탄핵해야 한다고 연방상원에 요구하자 이 기고를 보냈다. 보스버그는 베네수엘라 출신 미국 체류자 260여 명을 범죄조직원으로 몰아 엘살바도르 감옥으로 내쫓으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시도에 중단 명령으로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는 그를 “급진 좌파 미치광이”로 부르며 그가 대통령을 탐내고 살인자와 범죄자를 추방할 수 있는 자신의 권한을 침해했다고 매도했다.

그러나 러티그가 보기에 월권을 저지른 쪽은 트럼프다. 그는 “아무도 살인자나 범죄자가 미국에 살기를 바라지 않지만, 그들을 내보내려면 대통령이 먼저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 보스버그 판사가 대통령이 되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이 판사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놀라운 법치 공격 속도와 집념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1월 20일 워싱턴 연방의회 의사당 로툰다(중앙홀)에서 취임 선서를 마친 뒤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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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법치 무력화 속도전’에는 다들 아연하다는 반응이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공동 저자인 스티븐 레비츠키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오르반 빅토르(헝가리 총리)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튀르키예 대통령) 같은 ‘스트롱맨’이 몇 년에 걸쳐 이룬 국가기관 포획을 트럼프는 몇 달 만에 해내려 하고 있다. 트럼프의 속도와 집념은 놀랍다”며 기막혀했다.

위기감은 보수층 내부까지 스며들었다. 보수파로 분류되는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트럼프의 판사 탄핵 주장에 대해 18일 성명에서 “200년 이상 (법관) 탄핵은 사법 결정을 둘러싼 이견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아니라는 게 입증돼 왔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권한 경계를 연구하는 보수 법학자 존 유(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교수)는 18일 폭스뉴스 디지털에 “행정부 내에 정말 사법 명령에 저항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염려된다”고 말했다. 공화당 상원의원 존 커티스는 23일 NBC방송 인터뷰에서 “나라면 내게 불리한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나에 대한 결정을 할 사람을 건드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 전략은 여론전이다. 팸 본디 법무장관은 23일 폭스뉴스에 “오늘 미국인이 더 안전한 이유는 261개(추방된 베네수엘라 출신 이주민 수)인데, 그들이 엘살바도르 감옥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톰 호먼 백악관 국경 차르(총책임자)는 이날 ABC방송 인터뷰에서 “판사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우리는 계속 공공 안전과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을 체포하고 추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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