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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킬라는 어떻게 새로운 위스키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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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클럽 술’로 여겨졌던 데킬라(테킬라)가 위스키의 자리를 위협하는 고급 주류로 부상했다. 최근 데킬라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급상승하며 전례 없는 황금기를 누리는 중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데킬라붐’을 타고 최근 한국에 출시된 프리미엄 데킬라 제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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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에서 신나게 춤을 추던 젊은이들이 바에 모여 손등 위의 소금을 핥고 데킬라 한 잔을 들이켠 후 라임 조각을 베어 문다. Lick the salt(소금을 핥고), Down the Tequila(데킬라 샷을 털어 마시고), Bite the lime(라임 한 조각 베어 물기).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데킬라를 마시는 모습이다.

멕시코 전통술인 데킬라는 1950년대 이후 전 세계에 알려지며 특히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대중적인 인기에 비해 이미지는 그다지 고급스러운 편이 아니었다. 데킬라는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들이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의 대명사였다. 이런저런 첨가제를 섞어 마시는 술로, 숙취가 심해 데킬라로 인한 숙취를 ‘데킬라 선라이즈’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랬던 데킬라가 달라졌다. 클럽이 아닌 고급 레스토랑이나 파티에서 샴페인 대신 마시는 술로, 취하기 위해 한 번에 털어 마시는 술이 아닌 와인과 위스키처럼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는 술로 말이다.

데킬라를 베이스로 만드는 마가리타 칵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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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통계 기관 IWSR에 따르면 데킬라는 2023년 미국에서 보드카와 위스키를 제치고 증류주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변화를 프리미엄 데킬라의 성장이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고품질 주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며 깨끗하고 다양한 풍미가 있는 프리미엄 데킬라가 주목받게 된 것이다.

글로벌 주류회사 디아지오의 경우 2023년 순매출에서 데킬라 제품군의 성장률이 19%를 기록하며 스카치 위스키(12%)와 맥주(9%), 보드카(1%)를 압도했는데 특히 프리미엄 데킬라 제품인 ‘돈 훌리오’의 순매출이 20% 확대되며 전체 카테고리 성장을 견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데킬라의 이미지 변신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줄어든 술 소비량과도 연관이 있다. 현재 미국의 MZ세대는 미국 역사상 술을 가장 적게 마시는 세대로 여겨진다. 건강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음주에 관한 인식이 변화한 동시에 ‘Drink less but better’, 좋은 술을 적게 마시려는 경향이 강해졌는데, 이런 변화가 좋은 원재료와 고도화된 제조 공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프리미엄 데킬라에 대한 관심과 소비를 증폭시킨 것으로 보인다.

미국 톱 모델 켄들 제너가 론칭한 ‘818 데킬라’. @drink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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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럽’ 파워도 빼놓을 수 없다. 조지 클루니, 마이클 조던, 드웨인 존슨, 켄들 제너 등 유명 인사들이 앞다퉈 데킬라 브랜드를 론칭하고, 인플루언서와 셀럽들이 파티와 휴가지에서 고급 데킬라를 마시는 모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져나가며, 젊은 세대 사이에서 데킬라는 셀럽들이 마시는 ‘힙’한 술이 됐다.

국내에서도 프리미엄 데킬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싱글몰트 위스키 열기가 한풀 꺾이며 위스키와 도수가 비슷한 데킬라가 그 자리를 채우는 모양새다.

국내 데킬라 수입액은 2021년 299만달러(약 43억원)에서 2023년에는 648만달러(약 93억원)로 3년 만에 2배 이상으로 성장했다. 수입량 역시 454t에서 755t으로 늘었으며, 2024년에는 800t을 넘겼을 것으로 전망된다.

경향신문

프리미엄 데킬라의 대명사 ‘돈 훌리오 1942’. 멕시코의 데킬라 브랜드 돈 훌리오의 창립자 훌리오 곤잘레스가 데킬라 제조 60주년을 기념해 2002년 선보인 프리미엄 데킬라다. 디아지오코리아 제공


국내 주류업계에선 데킬라 붐이 한국에서도 시작될 것으로 내다보고 속속 프리미엄 데킬라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다. 멕시코의 프리미엄 데킬라 브랜드 클라세 아줄은 지난해 10월 한국 시장에 공식 진출하며 500만원대 브랜드 최상위 제품 ‘울트라’를 소개했다. 디아지오 코리아는 프리미엄 데킬라 ‘돈 훌리오 1942’에 이어 데킬라 라인업 중 최고급 제품인 ‘돈 훌리오 울티마 리제르바’를 선보였고, 국순당은 세계적인 모델 켄들 제너가 출시한 ‘818 데킬라’를, 페르노리카 코리아는 순도 100% 아가베 제품인 ‘알토스 플라타’를 내놨다. 아영FBC도 최근 세계 최초 싱글 이스테이트(단일농장) 개념이 적용된 데킬라 ‘오초’를 국내 출시하며 프리미엄 데킬라 전쟁에 합류했다.

■ 데킬라는 어떤 술?

블루 아가베를 51% 이상 포함해야 ‘데킬라’로 부를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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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킬라는 용설란의 한 종류인 ‘블루 아가베’를 원료로 멕시코 할리스코주에서 만들어지는 술만을 지칭한다. 멕시코 법령에 따라 데킬라는 블루 아가베를 51% 이상 포함해야 한다. 나머지 49%는 기타 곡물류를 보충해 만드는 경우가 많고 100% 블루 아가베를 사용한 제품을 프리미엄 데킬라로 본다.

100% 아가베 제품은 숙성 기간에 따라 다시 블랑코(blanco), 레포사도(reposado), 아네호(anejo) 등급으로 나뉜다.

블랑코는 숙성 기간이 2개월 미만인 투명한 상태의 데킬라로 신선하고 아가베 맛, 강한 허브와 시트러스 향을 가지고 있다. 주로 칵테일에 활용되며 플라타(Plata)라고도 부른다.

레포사도는 오크통에서 2개월 이상 1년 이하로 숙성된 데킬라로 바닐라와 캐러멜 등 부드러운 향과 질감이 특징이다.

1년에서 3년 이하로 숙성된 데킬라는 아네호, 그 이상 숙성된 엑스트라 아네호 데킬라도 있다. 오래될수록 깊은 오크 향, 초콜릿, 견과류, 스모키한 풍미가 더해지고 데킬라 특유의 향은 사라진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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