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시대부터 현시대까지… 국가 위기 사례 빅데이터 분석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피터 터친 지음|유강은 옮김|생각의힘|424쪽|2만3800원
계엄 및 탄핵 정국, 연일 국가의 위기를 진단하는 책이 출간되고 있다. 2023년 미국서 나온 이 책(원제 End Times)은 역사의 패턴을 수학적 모델을 통해 분석하는 ‘역사동역학(cliodynamics)’의 렌즈로 국가 붕괴의 원인을 파헤친다. 이론생물학자인 저자 피터 터친 코네티컷대 생태 및 진화생물학부 교수는 나폴레옹 시대부터 현대까지 세계 모든 대륙에서 발생한 수백 건의 위기 사례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왜 모든 사회는 반복적으로 위기에 빠지는지’ 분석한다.
네 가지 구조적 요인이 국가의 위기를 추동한다. 엘리트 과잉 생산, 대중의 궁핍화, 국가 재정과 정당성의 약화, 지정학적 요인.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엘리트 과잉 생산이다. 사회학에서 ‘엘리트’란 남들보다 많은 사회 권력을 가진 이들, 즉 ‘권력 소유자’를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이끄는 반엘리트 그룹이 엘리트를 갈아치우는 ‘혁명’을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트럼프는 정치 경험 없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첫 번째 수퍼리치가 아니다. 스티브 포브스가 1996년과 2000년 공화당 예비선거 후보로 나왔고, 억만장자 로스 페로가 1992년과 1996년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는데 실패했다. 그런데 왜 트럼프는 성공했을까? “2016년엔 대중의 궁핍화가 1992년보다 훨씬 심해졌다. 트럼프를 지지했다기보다는 지배 계급에 대한 불만이 분노로 바뀌어 표현된 것이었다.” 게다가 2016년에 이르면 엘리트 과잉 생산 게임이 분기점에 이르렀다. 2016년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엔 총 17명의 후보자가 경선에 뛰어들었다.
책은 사회 안정에 가장 위험한 직군은 ‘법률 전문직’이라 주장한다. “로베스피에르, 레닌, 카스트로는 변호사였다. 링컨과 간디도 마찬가지다.” 저자가 ‘미국의 원형적 반엘리트’라 지목한 J.D. 밴스 부통령 역시 변호사 출신이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 “프롤레타리아는 족쇄 말고 잃을 것이 없다”고 썼다. 저자는 “하지만 마르크스는 틀렸음이 입증되었다”고 말한다. “궁핍해진 프롤레타리아는 성공적 혁명의 주체가 아니다. 정말로 위험한 혁명가는 좌절한 엘리트 지망자들로, 그들은 특권과 교육, 연줄 덕에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연봉 19만 달러를 받는 로스쿨 졸업생의 20%처럼 곧바로 엘리트 지위에 오르는 소수조차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 전반적인 불안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고학력 프레카리아트(노동 무산 계급)로 전락할 운명인 고학력 젊은 층이야말로 불안정성 말고는 잃을 것이 없는 집단이다.”
오늘날 이데올로기는 엘리트 내부 충돌의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성 엘리트 성원들을 무너뜨리고 경쟁하는 지망자들을 앞지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순수성은 탈색된다. 좌·우파 모두 굉장히 파편화돼 있으며, 격렬한 문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인종주의자와 백인우월주의자, 그리고 트럼프에 표를 던진 ‘한심한 사람들(deplorables)’을 비난한다. 다른 사람들은 ‘멍청이 진보주의자(libtard)’를 비난한다. 심각한 피해망상에 빠진 비주류들은 공산주의 중국 첩자들이 최고위층부터 말단까지 미국 정부에 침투했다고 상상하거나 푸틴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꼭두각시 인형 트럼프를 조종한다고 생각한다.”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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