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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절망死 증가속도 세계 2위… “친절-기부 늘어야 희망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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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건강, 그리고 또 무엇이 ‘행복’한 삶을 만들까.

세계 행복의 날인 3월 20일을 맞아 공개된 유엔 ‘세계행복보고서 2025’의 결론은 “이 세상은 친절하다”는 믿음과 ‘친(親)사회적 행동’이다. 2012년 이후 13번째 발간된 이번 보고서는 많은 나라에서 이러한 믿음과 행동이 코로나19 팬데믹에도 크게 꺾이지 않고 확산돼 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회적 고립이 많아지고, 알코올·약물중독으로 인한 사망과 자살 등 ‘절망사(死)’가 늘어난 예외적인 나라들도 있었다. 한국과 미국이 여기에 포함됐다. 사람들이 전반적인 삶의 질을 스스로 평가해 매긴 주관적 행복 점수에서 한국은 147개국 중 58위로 지난해(143개국 중 52위)보다 떨어졌고, 미국은 24위로 2012년 보고서 발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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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과 직결된 ‘혼밥’

이번 보고서는 ‘식사 공유’, 즉 알고 지내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식사가 삶의 만족도와 직결된 요소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은 ‘혼밥’의 빈도 역시 유독 높은 나라였다. 특히 일주일에 저녁 식사를 누군가와 함께하는 횟수는 평균 1.6회에 불과해 조사 대상 142개국 중 135위였다. 주요 20개국(G20) 중에선 ‘혼밥 문화’로 잘 알려진 일본(1.8회)보다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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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까지 포함해도 식사 공유 횟수는 주 4.3회에 그쳤다. 나머지 약 10회가량은 혼자 밥을 먹거나 식사를 거른다는 의미다. 이는 조사 대상 142개국 중 127위다. 반면 중남미 국가들은 평균 8.8회였고 북미 및 오세아니아, 서유럽 등도 평균 8회 이상이었다.

점심과 저녁을 다른 사람과 함께 먹은 빈도를 색상으로 지도 위에 표시한 그래픽. 옅을수록 혼밥’이 많은 국가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함께 옅은 하늘색으로 표시돼 있다. 사진 출처 유엔 세계행복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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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빈도는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늘었다. 동아시아에서 주간 식사 공유횟수는 30세 미만에서는 6.4회였지만 60세 이상에서는 4.6회로 뚝 떨어졌다. 다만 1인 가구 증가 추세 속에서 젊은이들의 혼밥도 늘고 있다. 심층 사례연구가 진행된 미국에선 2003~2023년 사이에 18~24세의 혼밥이 180% 이상 급증했다. 연구를 진행한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알베르토 프라티 교수(경제학)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는 대부분 국가에서 노인들의 혼밥이 가장 잦지만, 젊은이들의 추세도 미국을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알베르토 프라티 조교수(경제학)


문제는 혼밥과 외로움이 직결돼 있다는 점이다. 주 12회 이상 식사를 공유한다고 답한 그룹에선 “어제 외로움을 느꼈다”고 응답한 비율이 18%에 불과했지만, 일주일 내내 혼밥을 한다고 답한 그룹에서는 38%로 뛰었다. 보고서는 “식사 공유 횟수는 ‘삶의 질’을 예측하는 데 있어 소득이나 실업률만큼 강력한 지표”라며 나이, 성별, 국가, 문화를 막론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사람일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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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엠마누엘 드네브 옥스퍼드 웰빙 연구센터 소장은 “사회적 고립과 정치적 양극화의 시대에 사람들을 식탁에 모으는 것은 개인과 집단의 행복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라티 교수는 “영국 옥스퍼드대의 학생 식당에는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것처럼 긴 나무 테이블을 놓는 전통이 있다”라며 “직장이나 학교 등의 기관이 구내식당을 이런 식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가까이 앉도록 만드는 것도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친절 늘수록 ‘절망사’ 줄어든다

연구진이 이밖에 “친절한 행동이 많은 나라일수록 절망으로 인한 사망이 적다”는 발견에도 주목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낯선 사람 돕기, 기부, 봉사 등 친사회적 행동을 한 적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은 2017~2019년 평균 63%에서 2022~2024년 70%로 늘었다. 반대로 절망사는 2000~2019년 조사 대상국 59개국 중 75%에서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하지만 한국은 여기에서도 동떨어진 움직임을 보였다. 나머지 16개국 중 절망사가 가장 많이 늘어난 나라는 10만 명당 연간 평균 1.3명이 증가한 미국이었고, 한국과 슬로바키아가 2, 3위로 뒤를 이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60세 이상 남성의 자살이 이러한 수치를 견인했다.

2019년 조사 대상 59개국에서 인구 10만 명당 절망으로 사망한 15세 이상 인구. 한국(위에서 네 번째)도 상당히 높은 축에 속한다. 막대그래프에서 보라색과 분홍색은 각각 약물중독과 알코올중독, 초록색은 자살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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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미국, 한국을 8년째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에 오른 핀란드의 사례와 비교해 주목했다. 한미 양국은 절망사 수치도 높고 증가세도 가팔랐다. 반면 핀란드는 절망사 수치 자체는 우리나라와 비슷했지만 10만 명당 약 0.9명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결정적 차이는 미국은 한국에서는 친사회적 행동이 줄었지만, 핀란드에서는 늘었다는 점이었다. 연구 담당자인 룩셈부르크 국립통계경제연구소의 프란체스코 사라치노 연구부 국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절망사는 단순히 현재 삶의 만족도보다는 미래에 대한 장기적 희망과 더 관련이 크다”라며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을 상실하는 경험이 점진적으로 절망사로 이어진다”라고 설명했다.

룩셈부르크 국립통계경제연구소의 프란체스코 사라치노 연구부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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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친사회적 행동은 개인이 이런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막는 핵심적 역할을 한다”라며 “사람들이 외롭거나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덜 받게 만들고, 도움이 필요할 때 손쉽게 받을 수 있는, 포용적 사회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친사회적 행동은 자살 고위험군을 비롯해 모든 사람에게 권장되어야 한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라며 구체적으로 학교에서 경쟁보다 자원봉사를 장려하고, 정부가 친사회적 행동을 한 사람들에게 소득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등의 정책을 제안했다.

사라치노 국장은 한국이 수년째 이어지는 ‘높은 자살률’에 무감각해지는 것에도 경고음을 울렸다. 그는 “이런 분위기는 한국 사회가 절망사를 하나의 ‘선택지’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데다, 개인이 겪는 극심한 고통에 대한 책임을 특정 가해자에게 전가한다”라고 비판했다.

다만 그는 ‘혼밥’과 ‘절망사’를 직접 연결하는 것은 무리라고 분석했다. 사라치노 국장은 “사람들은 주로 가족이나 동료 등 이미 아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공유하지만, 절망사 위험군은 애당초 이런 네트워크에서 배제됐을 가능성이 크다”라며 혼밥을 줄이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고립된 사람들이 뒤처지지 않도록 사회적 책임감을 강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청년들 외로움, 2006년보다 39% 증가

한편 올해 국가별 행복 순위는 핀란드가 10점 만점에 7.736점으로 1위를 지켰고,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이 뒤를 이었다. 코스타리카(6위)와 멕시코(10위)가 처음으로 상위 10위권에 진입했다. 아프가니스탄은 1.364점으로 ‘가장 불행한 국가’에 올랐다. 국가별 행복 순위는 각국 국민이 주관적으로 평가한 3년치 ‘삶의 질’ 점수를 토대로 1인당 GDP, 건강 기대수명,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자유로움, 부패에 대한 인식 등의 요소를 반영해 집계한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웰빙 연구센터와 여론조사기관 갤럽,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협업해 발간한 올해 보고서는 돌봄과 자선의 영향에 초점을 맞췄다. 보고서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자비에 대해 너무 비관적이지만, 실제 세상은 예상보다 훨씬 친절한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밝혔다. 이어 “삶의 질은 우리가 세상의 친절함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상당 부분 좌우된다”라며 “타인의 친절을 믿으면 개인의 행복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다소 비관적인 수치들도 제시됐다. 2023년 전 세계 18~29세 청년 다섯 명 중 한 명은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답했는데, 이는 2006년에 비해 39% 증가한 수치다. 연구진은 “청년기는 한때 ‘인생 최고의 시기’로 여겨졌지만, 지금 북미와 서유럽의 젊은이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모든 연령대 중에서 가장 낮다”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삶의 만족도와 ‘사회적 신뢰’의 감소가 정치 양극화와 연관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연구진은 “포퓰리즘은 대체로 불행에서 기인하지만, 대중이 좌우 중 어디로 기우는지는 사회적 신뢰에 달려있다”라며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 부족은 극우의 부상과 연결돼 있다”고 분석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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