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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하정민]대서양 동맹의 종말, 격화하는 印太 군비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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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하정민 국제부 차장


리처드 말스 호주 부총리 겸 국방장관은 지난달 7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을 만났다. 호주는 2021년 9월 미국, 영국과 안보 동맹 ‘오커스(AUKUS)’를 맺고 미국산 핵 동력 잠수함을 최대 5척 구매하기로 했다. 말스 장관은 이에 따라 미국에 주기로 한 30억 달러(약 4조5000억 원) 중 5억 달러(약 7500억 원)를 이번 방문에서 지급했다.

오커스가 체결될 때 미국과 호주의 정상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스콧 모리슨 전 총리였다. 이제 미국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호주 총리는 앤서니 앨버니지로 바뀌었지만 정권 교체에도 두 나라의 군사 협력은 흔들림 없이 추진되고 있다.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공통의 목표가 확고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후 80년간 유지됐던 미국과 서유럽의 ‘대서양 동맹’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일종의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협상 과정에서 서유럽의 오랜 적국인 러시아와 밀착했고, 집권 1기 때보다 강하게 방위비 증액을 유럽에 요구하고 있다.

유럽 또한 ‘안보 자강’을 외치며 미국과 거리를 두고 있다. 양측은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의 전체주의, 종전 후 옛 소련의 공산주의를 함께 물리쳤다는 자부심으로 강하게 뭉쳤다. 그러나 ‘돈’과 ‘힘’의 논리 앞에서 굳건했던 동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다.

이 여파는 인도태평양에도 미치고 있다. 미국이 유럽에서 발을 빼는 이유는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중국 또한 이런 미국에 맞서겠다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역내 주요국 또한 군사력 강화에 열심이다.

우선 미국, 호주 못지않게 중국 견제에 주력하는 일본은 오커스 참여를 노린다. 일본은 지난해 10월 호주에서 실시된 오커스 3국의 해상 훈련 때 옵서버로 참가했다. 아소 다로(麻生太郎) 전 총리는 아예 “오커스에 ‘일본(JAPAN)’을 추가해 ‘조커스(JAUKUS)’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대만 또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2.5% 수준인 국방 예산을 3%로 늘리겠다고 18일 밝혔다. 올여름 연례 군사훈련 ‘한광훈련’ 때는 아예 중국의 2027년 침공을 가정하고 대비하기로 했다. 중국시보 등 대만 언론에 따르면 대만이 ‘2027년’이라는 구체적 시점을 명기하고 중국의 군사 위협에 대비하는 건 처음이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갈등 중인 필리핀도 미국, 일본과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세 나라 정상은 지난해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사상 최초로 대면 회담을 가졌고 올 1월에도 온라인으로 회동했다.

이에 맞서 중국 역시 올 국방 예산을 한 해 전보다 7.2% 증가한 1조7800억 위안(약 356조5000억 원)으로 5일 책정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집권 첫해인 2013년 7200억 위안(약 144조2000억 원)에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인도태평양 주요국의 이 같은 행보를 보노라면 리더십 공백에 처한 한국의 상황에 대한 걱정이 커진다. 각자도생과 군비 증강이 ‘뉴 노멀(new normal·새 기준)’이 된 시대. 한국의 안보는 정처 없이 표류하고 있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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