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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폭싹 속았수다’에 흠뻑 빠진 K 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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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조수진 일미푸드 대표, 조수진영어연구소 소장




제주 방언으로 ‘매우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의미를 지닌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전 세계를 사로잡고 있다. 아홉 살 소년이 같은 나이의 소녀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부모의 헌신적 사랑, 이웃과의 따뜻한 정, 형제 간의 깊은 우애를 그린 감동적인 드라마로 시대와 세대를 넘어서는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배우 염혜란은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그려내며 1화부터 눈물을 쏟아내게 한다. 애순이의 캐릭터는 어린 시절 김태연, 청장년은 아이유, 노년은 문소리가 연기하여 여성 3대가 그려내는 감동적인 가족 사랑 이야기다. 매 회마다 명대사, 명연기, 명장면을 연출하며, 지난 3월 7일 공개된 이후 현재까지 10여개 국가에서 넷플릭스 1위(플릭스패트롤 기준)를 달리고 있다.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를 다루는 이 드라마는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인생이 너에게 귤을 줄 때)’라는 영어 제목으로 번역돼 전 세계 시청자들도 울리고 웃기고 있다.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인생이 너에게 레몬을 줄 때,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라는 영어 표현에서 ‘레몬’을 ‘귤’로 바꿔 제주도가 배경임을 간접적으로 알리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발휘된 제목이다. 1948년에 출간된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의 책 ‘How to Stop Worrying and Start Living(인생이 고난을 선물로 줄 때, 당신은 어떻게 할까요?)’ 내용 중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라는 표현이 소개되면서 어려운 상황(lemon)에서도 기회(lemonade)를 찾으라는 의미로 활용된 유명한 표현이다. 19세기까지 lemon은 단순히 과일 이름이었지만, 20세기 초부터 ‘불량품’, ‘실패, “형편없는 것’을 뜻하는 용어로도 사용돼 불량 자동차나 불랑품 등을 lemon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말에 ‘싼 게 비지떡’이라는 표현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lemonade는 달콤한 맛있는 음료이기에 역경이 오면 이를 슬기롭게 잘 풀어가라는 교훈적인 표현이다.

‘tangerine’은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항구 도시 탕헤르(Tangier)에서 유래된 단어로 1800년대 초, 이 과일이 탕헤르를 통해 유럽과 미국으로 수출되었기 때문에 ‘탕헤르에서 온 것’이라는 의미로 Tangerine이라고 불렸다. 영어에서 접미사 ‘-ine’는 ‘~에서 온’이라는 의미를 가져 tangerine은 ‘탕헤르산(출신) 오렌지’라는 것을 뜻한다.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레몬과 다르게 tangerine은 귤의 색깔(밝은 주황색)이 활력, 따뜻함, 상큼함과 연관되어 있기에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지닌다. 사실상 tangerine은 미국인들에게는 생소한 과일이다. orange가 일반적이며, 껍질이 얇은 orange는 mandarin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폭싹 속았수다’ 드라마에서는 장국수, 소주, 막걸리, 전, 치킨, 자장면, 달고나, 오골계 탕, 콩 잡곡밥, 알사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한국 음식, 간식, 주류까지 등장한다. 골목길에서 들리는 “메밀묵과 찹쌀떡” 같은 전통 간식도 소개되며, 이는 드라마 속에서 한국의 다채로운 먹거리를 풍부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음식명으로 기발한 번역이 빛을 발했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대사 중 “오렌지를 먹은 지가 얼마나 오랜지(오래되었는지….)” “Orange you glad I didn’t say banana.“는 ‘오렌지’와 ‘오랜지’의 유사 발음을 사용하였으며 영어 “Aren’t you glad I didn’t say banana. (내가 바나나라고 말하지 않아서 기쁘지 않아?”라는 앞의 aren’t you(안츄)가 orange(오ㄴ츄)와 발음이 유사해, 1960년대부터 묻고 대답하는 식의 knock-knock joke로 사용돼온 잘 알려진 말장난(pun)이다.

‘폭싹 속았수다’에서도 “미숙이 꽁치가 오빠 가슴에 꽁하고 박히네”를 “Misuk’s saury just struck me like an arrow in the heart”로, 다소 직역체로 번역하기도 했고, “미숙이 전복, 진짜 오빠 가슴에 전복시켜”를 “Abalone, you make everything else in the world seem like baloney”로 번역해 라임을 맞춘 게 눈에 띄었다.

K 주류인 막걸리, 소주가 자주 등장한다. “알딸딸”, “소주 한잔 찌끄리고 디비지면 그만”과 같은 맛깔스러운 표현들을 원문의 맛을 살려 번역하기는 매우 어려워, tipsy, a few glasses 정도로 번역되는 한계가 있었다. 그 밖에 관식이가 쓴 시에서는 “바람은 왱왱왱”, “마음은 잉잉잉”, “수도꼭지는 졸졸졸”, “새는 구멍은 콸콸콸”과 같은 의성어가 풍성하게 등장했다. 이렇듯 K 드라마가 담고 있는 언어의 맛이 영어 표현보다 월등히 풍부함을 보여 주는 대사들이 매 회차를 가득 채웠다.

특히 부모와 자식 간의 애증과 사랑은 “부모는 미안했던 것만 사무치고 자식은 서운했던 것만 사무친다”, “부모는 죽으면 하늘로 보내도 자식은 죽으면 여기서(가슴) (다시)살린다”와 같은 명대사를 쏟아내며 시청자들의 눈물까지 쏟아내고 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새로운 인생 드라마에서는 흑돼지(black pork), 전복(abalone), 감귤(tagerine)과 같은 제주 특산 음식부터 유채꽃(canola flower), 제주 방파제, 돌하르방(Stone grandfather)까지, K 푸드와 K 관광지를 아우르며 아름다운 제주의 매력에 전 세계 시청자들이 폭싹 빠질 것으로 기대된다.

조수진 (주)일미푸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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