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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1 (금)

‘오피스 상징’ CBD…대기업이 또 떠났다 [감평사의 부동산 현장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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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빈 사무실 늘어나네


서울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초역세권에 위치한 이 건물은 디타워 돈의문이다. 2020년 준공한 신축 오피스 빌딩으로 지하 7층~지상 26층, 연면적 8만6224㎡(약 2만6000평) 규모다.

요즘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 건물이 화제를 모은다. DL이앤씨를 필두로 DL그룹 여러 계열사 본사로 사용했던 디타워 돈의문이 지난해 말 약 9000억원에 매각됐기 때문이다. 이 빌딩은 마스턴투자운용이 2020년 펀드를 조성해 매입했는데 당시 DL그룹이 주요 투자자로 참여했다.

건물 준공 후 DL그룹은 수송동 대림빌딩, 광화문 디타워, 남대문 대한상공회의소에 흩어져 있었던 주요 계열사 6곳 임직원을 한곳으로 모았다. DL이앤씨, DL케미칼, DL에너지 등이 모두 입주한 상태였지만 이번 매각으로 계열사들은 본사를 다른 곳으로 옮길 예정이다. 이 중 주력 계열사인 DL이앤씨는 서울 강서구 마곡 원그로브에 새로운 둥지를 틀 계획이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던 대기업 계열사가 사옥을 팔고 서울 외곽으로 본사를 옮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1호선과 KTX가 정차하는 광명역 1번 출구로 나오면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신안산선 공사 현장이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니 광명역 유플래닛 타워에 새겨진 ‘11번가’라는 마크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바로 ‘11번가’ 본사다. SK스퀘어 자회사인 11번가는 지난해 9월부터 유플래닛 타워 11층부터 21층까지를 본사로 쓰고 있다.

원래 11번가는 서울역 바로 앞에 위치한 ‘서울스퀘어’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기존 임차 계약 만료와 함께 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광명역 인근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때 국내 온라인 유통을 책임지는 기업 중 하나였던 11번가가 광명으로 둥지를 옮겼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기업들은 본사만큼은 CBD(도심업무지구), GBD(강남업무지구), YBD(여의도업무지구)에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상징성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보다 실속을 챙기기 시작했다. 11번가뿐만 아니라 상당수 기업이 서울 한복판에서 벗어나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 중 서울 접근성이 괜찮은 곳으로 둥지를 옮기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되면서 오피스 상징이라 불렸던 CBD 명성도 조금씩 하락할 조짐이 보인다. 많은 기업이 실리를 좇아 서울 외곽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GBD나 YBD의 경우 이탈이 덜하다. 반면 CBD 내 입주한 기업들의 이동은 향후 몇 년 안에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 대중교통 발달 등 영향으로 본사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야 한다는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 많은 기업이 본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서울 오피스 시장도 상당히 재편될 전망이다.

매경이코노미

DL그룹이 사옥으로 쓰던 서울 종로구 평동 디타워 돈의문. (윤관식 기자)


CBD에서 짐 싸는 기업들

주요 건설사·금융 잇따라 이전

서울 도심 오피스 공실률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서울 전체 오피스 공실률은 3분기(5.26%) 대비 크게 상승한 5.6%를 기록했다.

주목할 점은 CBD 공실률이다. 광화문·종로·서울역 등 도심권역(CBD) 공실률은 9.6%로 가장 높았다.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해 2%포인트 상승했다.

다른 민간 통계 자료를 보더라도 CBD 공실률 증가는 눈에 들어온다. 시장조사 업체 쿠시먼앤웨이크필드(C&W)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서울 3개 핵심 권역 평균 공실률은 전분기 말 대비 0.4%포인트 상승한 3.5%로 나타났다. 이 집계에서도 공실률이 가장 크게 상승한 곳은 CBD다. CBD 공실률은 지난해 3분기 대비 1.2%포인트 상승한 4.3%를 기록했다.

CBD 공실률이 높아진 가장 큰 이유는 기업들의 이탈이다.

중구 청계천로 시그니처 빌딩에 있던 세븐일레븐 운영사 코리아세븐은 미니스톱 인수 이후 본사를 서울 강동구 이스트센트럴타워로 이전했다. CBD보다 임대료가 저렴하고 롯데그룹 본사가 위치한 송파구와 가깝다는 점에서 코리아세븐의 새 둥지로 낙점됐다. 스타벅스코리아를 운영하는 SCK컴퍼니는 CBD를 벗어나 GBD 내 ‘센터필드’로 본사를 옮길 계획이다. SCK컴퍼니는 지난 2020년 5월부터 명동역 인근 스테이트타워남산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5년 만에 다른 곳으로 본사를 이전하게 됐다.

금융권에서는 하나금융그룹이 대표적이다. 을지로입구역 인근에 위치한 하나금융그룹 본사는 금융사가 모여 있는 을지로 일대를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였다. 내년이 되면 하나금융그룹은 인천 청라국제도시로 본사 사옥을 옮긴다. ‘청라 헤드쿼터’라고 불리는 하나금융 청라 본사는 지하 7층, 지상 15층, 연면적 12만8474.80㎡(약 3만9000여평) 규모로 2020년 2월부터 공사가 진행 중이다. 완공 후에는 하나금융지주와 함께 하나은행, 하나카드, 하나증권, 하나생명 등 6개 계열사가 한곳에 모인다.

건설사 중에는 SK에코플랜트가 종로구 수송동에서 영등포구 양평동4가로 이전을 검토 중이다. HDC현대산업개발 역시 용산역 인근에서 노원구 광운대역 근처로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CBD 탈출 배경은 임대료?

실리 좇는 기업들의 이유 있는 행보

수많은 기업이 CBD를 벗어나 새로운 곳에 둥지를 트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임대료 등 비용 절감이 목적으로 보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서울 전역 오피스 임대가격지수는 102로 전년 대비 4.78%포인트 올랐다. 공실률이 크게 올랐던 CBD(102.1) 오피스 임대가격지수는 4.87%포인트 높아졌다. 단기적 관점에서는 높아진 공실률과 무관하게 서울 주요 업무 권역 임대료는 꾸준히 오르고 있다. 기업들도 지금껏 높아진 임대료가 계속 오를 조짐을 보이자, 서울 외곽지역, 경기도 등으로 본사 이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 신도시에 본사를 둬도 지속적으로 성공 사례가 나오고 있다는 점 역시 기업들이 CBD를 벗어나는 이유로 보인다. 네이버 등 주요 IT 기업들은 이미 성남 판교, 광명, 평택 등으로 거점을 확대하며 새로운 업무 환경을 구축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GBD, YBD와 달리 CBD의 경우 업무지구로서 매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투자 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요 기관투자자(LP)들이 광화문·남대문·명동·을지로 일대 업무지구 투자를 전면 중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1차적으로는 수익성 악화 등이 원인이겠지만 불안정한 정국과 함께 지속적인 집회 등 영향으로 CBD가 업무지구로서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점 역시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CBD 향후 전망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한편에서는 지금 당장 공실률이 상승하고 기업 이전이 계속되고 있지만 기본적인 입지나 상징성 등을 감안하면 여전히 CBD 위상은 견고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론도 만만찮다. 다른 요인보다 향후 예정된 공급 물량이 너무 많다는 이유에서다. CBRE코리아 ‘서울 오피스 2030’ 보고서에 따르면 2031년까지 3대 업무 권역에 약 471만㎡ 규모 A급 오피스가 신규 공급된다. 3대 권역 오피스 규모(1057만㎡)의 약 절반 수준이다. 특히 신규 공급 83%에 해당하는 물량이 CBD에 집중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CBD에는 세운구역(1조7500억원), 서소문동(1조6150억원), 공평지구(1조2000억원) 등 조 단위 메가 프로젝트들이 진행 중이다. 서울역 일대에는 ‘이오타 서울(옛 힐튼호텔 부지)’과 ‘서울역 북부역세권 개발사업’ 등 초대형 오피스 복합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향후 공급 진행 상황에 따라 서울 오피스 시장은 어떤 식으로든 개편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계획 중인 오피스 물량이 그대로 CBD에 공급된다면 2030년을 전후해 CBD 오피스 공실률은 20%를 넘어갈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공급 대비 수요가 뒷받침된다면 기존 종로, 을지로, 광화문 일대 CBD 권역은 보다 확장되는 효과가 기대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CBD 오피스 시장은 커다란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매경이코노미

[강승태 감정평가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1호 (2025.03.19~2025.03.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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