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변호를 맡아서 ‘계엄령’을 ‘계몽령’이라고 한 김계리 변호사가 헌법재판소 최종변론에서 한 말이다. 그 뒤에 시민들은 유행처럼 이 말을 패러디했다.
그런데, 계몽이라니? 김계리 변호사는 역사에 등장한 ‘계몽주의’ 다음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알고 있을까? 계몽주의 시기에 계몽된 시민들은 시민혁명의 주체가 되어 중세와는 다른 근대를 열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를 부정하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생각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계몽이었다. 한마디로 왕과 귀족이나 평민들이 모두 평등하다는 급진적 사고로 계몽하는 일이었다. 결국 김계리 변호사는 단어를 잘못 선택한 것이다. 그는 반동을 말할 뿐이다.
그들의 세계는 계몽이 아니라 반동
실제 극우 집회장에 가면 그들이 쓰는 언어가 너무 험해서 잠시라도 있기가 힘들다. 목사와 예비역 장성이라는 사람들이 단상에 올라가 “(상대방을) 밟아, 밟아!” 외치면 무대 아래에서는 “죽여, 죽여!” 하고 받으면서 아멘을 외친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면서 ‘멸공’과 ‘중국 간첩을 섬멸하자’는 등 섬뜩한 구호들이 난무하는 그곳에 예수님의 사랑이 들어설 자리는 애초부터 없다. 우리는 분단 이래 우리 편이 아니면 모두가 적(敵)인 ‘빨갱이’이므로 죽여도 좋다는 이분법에 사로잡혀 살아왔다. 이런 이분법의 세계에서는 늘 새로운 ‘빨갱이’를 찾아내 공격한다. 오늘은 중국 간첩이 되었을 뿐이다. 이건 계몽이 아니라 반동일 뿐이다.
시민혁명은 평등주의를 지향해야
그곳 광장 사람들은 비상행동의 공동의장이든 야당의 당대표나 원내대표든 모두 길바닥에 깔판 놓고 같이 앉아 있다. 거기에는 위계가 없다. 이 모든 게 세종대로를 메운 광기의 대오와는 다르다. 긴 대오 속에서도 서로를 배려하는 행동이 보인다. 대오 옆에는 천막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 천막들에서는 무료로 음료와 음식을 나눈다. ‘태극기’ 부대에서 넘어와 이곳에서 음식을 먹고 가는 노인들도 보인다. 그들이라고 내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참계몽시민이다. 윤석열 탄핵 다음 시민혁명에 나서야 할 주체들이다.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혁명 이전에 역사에서 시민혁명이 있었다. 시민혁명을 통해 근대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어낸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피로 세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역사도 다르지 않다. 새로운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시민혁명은 평등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불평등과 차별이 너무 심화돼 있기 때문이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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