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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8 (화)

“필요한 잔소리 못 들은 세대”… 현직 교사들이 본 ‘요즘 초등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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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 연휴 후 첫 평일로 개학식과 입학식이 몰린지난 4일 오전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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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 생활 20년 차 이상의 현직 교사들이 분석한 ‘요즘 초등학생’에 관한 영상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교사들은 초등학생들이 과거에 비해 생활 능력과 사회적 관계 맺기 능력이 부족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교직 생활 23년 차 교사 천모씨와 26년 차 한모씨, 그리고 26년 차 교사 조모씨는 지난달 2월 20일 유튜브 채널 ‘랭킹스쿨’에 공개된 영상에서 각각 최근 초등학생들을 보며 느낀 점들을 털어놨다.

교사들은 ‘가장 맡기 힘든 학년’으로 1학년을 꼽았다. 한씨는 “과거에는 6학년이 가장 힘들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1학년이 가장 힘들다”며 “학부모님들의 생각이 굉장히 다양하고, 요구들도 정말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천씨는 1학년 학생들이 기본적인 생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입학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짚었다. 그는 “요즘 기기와 상호작용을 많이 하다 보니 또래와 같이 어울리는 경험들이 별로 없다”며 “습득되어야 할 기능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채 학교에 온다”고 했다. 이어 “혼자 화장실 가는 것도 잘 안 되고, 혼자 식판에 밥을 뜨는 것도 잘 안 되고, 아주 극심한 경우에는 연필 쥐는 것조차도 제대로 안 되는 경우까지 있다”고 했다.

◇ “학습 능력은 나아졌지만… 필요한 잔소리 듣지 못한 세대”

교사들은 초등학생들이 과거에 비해 학습 능력은 나아졌지만, 생활 능력과 사회적 관계 맺기 능력이 부족해졌다는 데 대체로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1학년을 오래 맡았다는 한씨는 “유치원에 비해 학교라는 큰 공간에 오면, 가장 중요한 게 교실을 찾아오는 것”이라며 “입학 첫날부터 화장실에 갔다가 교실로 돌아오는 것과 교실에서 식당으로 이동해서 밥을 먹고 다시 교실로 돌아오는 걸 입학 첫날부터 몇 번을 연습한다”고 했다. 또 “다쳐서 보건실을 가야 할 때 예전에는 아이들이 ‘같이 갈 사람’ 해서 알아서 다녀왔는데, (요즘은) 한 학기가 지나도록 보건실에 혼자 갔다 돌아오는 걸 하지 못해서 친구를 붙여줘야 한다”고 했다.

한씨는 과거에 비해 아이들의 독립적인 이동 경험이 부족해졌다고 꼬집었다. 그는 “혼자 어딘가를 다니면서 스스로 주의를 기울이고 기억하고 떠올리는 과정에서 공간지각능력이 커지는데,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부터 어린이집 등 어디를 나가도 부모님의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학교에서 혼자 길을 찾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한씨는 요즘 초등학생들을 두고 “필요한 잔소리를 듣지 못한 세대”라고 표현했다. 그는 “요즘 아이들이 운동화 끈을 못 묶어서 2학년 과정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며 “이게 중요하지 않은 거라고 알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또 “또 우리 어릴 때는 ‘문 앞에서 다른 사람 다니는 거 막지 말라’고 배우지 않았느냐. 그런데 요즘은 이게 왜 문제인지 모르더라”며 “다른 사람들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이런 부분들이 연습과 훈련이 되지 않았다”라고 했다.

이에 천씨는 “알고 있는 걸 어떻게 적재적소에 쓰는지를 학습능력, 실행능력이라고 하는데, 관계 경험의 결핍과 신체활동지수의 저하 이런 것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조씨 역시 “아이들의 학습 능력은 과거보다 뛰어나다. 넓고 얕아졌다”면서도 “실천 능력, 실행 능력은 떨어진다. 윤리적 의식도 과거보다는 많이 떨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도덕을 배우고 있어도 실천까지 안 간다. ‘사람 지나다니니까 문 앞에 서 있으면 안 된다’ 이것도 알고는 있으나, 몸이 못 따라오는 것”이라고 했다.

◇ 요즘 아이들은 사과 안 한다?... “잘못 인정을 결점이라고 생각”

‘요즘 초등학생은 사과를 안 한다’는 주제에 대해 조씨는 “과거에 비해 우리 아이들이 사과 안 하는 건 맞다. 자기 잘못도 인정 안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걸 인정하면 책임이나 처벌이 따라온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또 과거보다는 자신의 존재감이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집에서도 굉장히 우대받기 때문에 자기가 잘못한 게 없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조씨는 “결정적으로 아이들은 부모의 거울이고 그림자”라며 “너무 불행히도 요즘 사회에서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책임지는 어른이 별로 없다. 그게 아이들한테까지 전파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아이들이 사과를 하는 게 무슨 자기의 결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문화 자체가 안타깝다”며 “먼저 사과하는 모습들을 어른들이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천씨는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라는 말을 하는 순간 가해자임을 인정한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부모님들은 자녀가 가해 학생임이 분명함에도 사과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걸 목격한 적이 있다”고 씁쓸해했다.

◇ “옛날 아이들 꿈 물어보면 ‘대통령’... 요즘은 ‘유튜버 될래요’”

교사들은 요즘 아이들의 장래 희망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희망 직업군이 다양해지고, 구체적이어졌다고 한다.

조씨는 “아이들이 많이 현실적으로 됐다. ‘내 꿈은 대통령’이라는 친구는 거의 못 본 것 같다”며 “경제적으로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이런 걸 보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러스트레이터, 디지털 크리에이터, 유튜버 등 꿈이 다양하고 구체적”이라며 “이런 변화를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면 꿈이 위축됐다거나 보잘것없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아이들이 참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바뀌는구나 이런 식으로 양면적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한씨는 “진로라는 게 입시와 연결이 되면서 ‘어릴 때부터 학교생활기록부를 채워야 한다’와 같은 생각이 생겼다”며 “이런 것 때문에 현실적인 꿈을 초등학생 때까지 내려보내려고 하는 사회적 압력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박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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