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아람 Books 팀장 |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시인을 꿈꾸는 제주 소녀 애순(배우 아이유)은 시집 한 권을 애지중지합니다. 1939년 발간한 유치환의 첫 시집 ‘청마시초(靑馬詩抄)’. 시집 표지에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라 적어놓은 애순은 자기를 좋아하는 관식(배우 박보검)에게 말합니다. “나는 무조건 서울 놈한테 시집갈 거야. 섬 놈한테는 절대! 급기야 노스탤지어도 모르는 놈은 절대, 네버!”
이 말을 마음에 담아두었던 관식이 애순 앞에서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으로 시작하는 유치환의 ‘깃발’을 더듬대면서도 끝까지 암송하는 장면이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등으로 전파되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라는 시의 구절이 어린 시절부터 오직 애순만 그려온 관식의 일편단심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애순은 현실의 파도에 휩쓸려 대학 진학도, 시인이 되기도 포기하고 ‘청마시초’를 불태웁니다. 그렇지만 시란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어떤 애달픈 마음에서 불거져 나오는 노래 아닌지요.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 안 그는”이라고 ‘깃발’을 마무리한 유치환은 ‘청마시초’ 서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항상 시를 지니고 시를 앓고 시를 생각함은 얼마나 외롭고 괴로운 노릇이오며 또한 얼마나 높은 자랑이오리까. 이 자랑이 없고 시를 쓰고 지우고, 지우고 또 쓰는 동안에 절로 내 몸과 마음이 어질어지고 깨끗이 가지게 됨이 없었던들 어찌 나는 오늘까지 이를 받들어 왔사오리까.” 곽아람 Books 팀장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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