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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4 (금)

[매경춘추] 득표정치 + 증거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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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혁은 어떠한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또 상속세의 공제 한도를 높이고 과세 방식을 유산취득세로 바꾸는 것은 바람직한가.

질문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답변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득표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둘 것이다.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보험료 인상을 주장한다면 유권자의 표심이 떠날 수 있다. 상속세 부담 인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납세자가 대다수인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세제 개편이 선거 결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처럼 최다 득표를 기대하는 정치인에게 투표권이 없는 미래 세대의 의사와 정책의 지속가능성, 그리고 직간접적인 중장기 효과는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인의 관점은 현재 유권자들의 선호를 최대한 반영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후생경제학의 한 분야로 연구돼온 이상적인 정책 선택 모형은 △현재와 미래의 국민 후생 극대화를 목표로 △완전한 정보 아래에서 △참여자의 행태 변화, 시장의 균형 변화, 지속가능성까지 고려할 것을 전제로 한다. 다만 후생경제학의 이론적인 증거만으로 어떤 정책의 바람직함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이론만으로 현실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으므로, 현실의 데이터와 사례를 통해 정책이 목표로 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야 한다. 이처럼 이론적, 실증적, 사례 증거에 기반해 최적의 선택을 내리는 것을 '증거 기반 정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많은 정책이 이 같은 이상적 모형에 따라 선택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정치인의 관점'이 대표적인 예다. 관료나 학계 연구자들은 또 어떠한가. 이들 역시 국민 후생의 극대화를 위한 정책을 좇기보다는 자신의 이득 또는 권한을 극대화하려고 할 수 있다. 결국 상호 보완적 역할을 통해 최적 정책으로 다가가야 한다. 비선출직 관료와 연구자들에게 미래세대, 지속가능성, 직간접 효과를 고려해 국민 후생을 높일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정책을 찾아내는 임무를 부여하고, 비선출직 관료와 연구자들이 제시한 정책을 선출직 정치인은 현재 유권자의 선호를 반영하는 형태로 보완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최근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국가 예산 편성 과정에도 대입할 수 있다. 증거 기반 정책 선택을 요구받는 행정부와 유권자의 선호 반영을 요구하는 입법부 간에 예산 권한이 균형 있게 배분돼야 한다. 입법부에 과도한 예산 권한이 주어지면 인기영합적인 예산 배분으로 인한 '공유의 비극'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행정부에 과도한 예산 권한이 주어지면 유권자의 선호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단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행정부의 예산 편성권, 국회의 예산 의결권, 국회의 예산 증액 및 신(新) 비목 설치 금지를 핵심으로 하는 현재의 예산 권한 배분이 우리의 정치 행정 체제와 부합하는 균형 상태로 인식한다. 따라서 개헌 논의에 있어서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예산 권한 재배분보다는 국민에 대한 책무성 강화와 중앙·지방 간의 예산 권한 배분 개선에 초점을 둬야 할 것이다.

[이영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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