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금리인하 속도 신중히 검토" …가계부채·환율은 '뇌관'

한은, 3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 발간

금리인하 기조 확인했지만 속도조절 가능성 시사

성장률 제고·금융불균형 확대 올 하반기부터 본격화 전망

가계부채 급증·환율 변동성 확대에 경계심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한국은행이 13일 올해 통화정책 방향과 관련해 기준금리 인하의 방향성을 확인하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지난해 10월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을 시작한 이래 비교적 빠른 속도로 금리를 내린 한은은 현 국면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금리 인하가 가계부채 급증세나 환율 변동성 확대를 자극할 가능성을 경계했다.

1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신용정책보고서 설명회. (왼쪽부터) 이지은 경기동향팀장, 박영환 정책기획부장, 박종우 부총재보, 최창호 통화정책국장, 박충원 정책협력팀장, 유재현 국제총괄팀장. (사진= 한국은행)

금리인하의 빛과 그림자. 올 하반기부터 본격화

한은은 이날 발간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향후 통화정책은 △대내외 경제 정책 △국내 정치 상황 변화 △그간의 금리 인하가 물가·성장과 금융안정 상황에 미치는 영향 등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기준금리 추가 인하 시기 및 속도 등을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보고서 작성을 주관한 신성환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도 “물가가 안정된 가운데 당분간 낮은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향후 통화정책은 경기 하방압력을 완화하는 데 비중을 둬야 한다”면서도 “가계부채 및 주택가격, 환율 등 금융안정 상황에 계속 유의해 추가 인하의 시기와 속도를 결정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금통위 내 대표적인 ‘비둘기파’(완화적인 통화정책 선호)로 통하는 신 위원답게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추가 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먼저 이야기했으나, 가계부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택가격까지 언급하면서 경제 성장과 상충관계에 있는 금융안정 부문 역시 강조한 것이다. 향후 금리 인하에서 속도 조절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자료=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의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영향이 모두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는 점도 한은의 신중한 행보를 예상할 수 있는 근거다. 그 효과가 광범위하고 강력하다는 점에서 ‘크고 무딘 칼’로 표현되는 기준금리 조정은 통상 6개월 이상의 시차를 두고 그 영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은은 작년 10월과 11월, 올해 2월 총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75bp(1bp= 0.01%포인트) 내린 데 따른 경제 성장률 상승 효과는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기준금리 75bp 인하는 올해와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각각 0.17%포인트(p), 0.26%p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금리 인하기에는 주택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 등에 따른 금융 불균형도 커진다. 지난해 9월 한은이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25bp 하락하면 1년 후 전국 주택가격상승률은 0.43%포인트, 서울은 0.83%포인트가 오르는 것으로 계산됐다.

(자료= 한국은행)

다시 살아나는 가계부채 불씨…미·중 갈등 격화시 환율도 빨간불

특히 지난해 금리 인하의 발목을 잡았던 가계부채 불씨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어 향후 통화정책에서 가계부채가 다시 주요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 당국의 대출 규제 강화와 부동산 경기 침체 속에 작년 11월 이후 감소세를 이어가던 가계대출 증가폭은 지난달 4조 3000억원을 기록하며 넉달 만에 확대세로 돌아섰다.

한은은 이번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통해 금융여건이 완화되는 가운데 은행들의 가계대출 관리 조치 완화, 서울 일부 지역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토허제) 해제의 영향 등이 주택가격 상승 기대와 가계부채 증가세를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금리가 낮은 수준에서는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가계대출 증가와 주택가격 상승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종우 한은 부총재보는 이날 기자설명회에서 “서울 일부 지역 토허제 해제의 영향이 주변 지역으로 확산하면서 2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저희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늘어나고 있다”며 “아파트 거래가 늘면 한두달 시차를 두고 가계부채 증가에 영향을 미쳐왔다”고 말했다.

한은은 여전히 높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는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이 재차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격화된다면 미 달러화 강세와 위안화 약세가 심화될 수 있고, 국제 외환시장에서 위안화에 곧잘 연동되는 원화의 특성상 환율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