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몽골 복장을 입은 여성이 등에 화살통을 멘 채 말에 올라타 초원을 달리고 있습니다. 유목 문화에서 여성은 가정의 중심으로 여겨지지만, 동시에 남성과 다른 역할을 요구받으며 많은 제약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말을 타고 광활한 초원을 질주할 때만큼은, 그 모든 한계를 넘어서겠다는 의지가 타올랐을 것만 같습니다. 사진 출처 몽골 칭기즈칸 박물관·문화센터 공식 홈페이지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지난주 토요일인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습니다. 이날은 전 세계가 성평등을 위한 노력과 변화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죠. 하지만 성별 격차 해소는 단순한 기념일의 구호가 아니라, 각국의 법과 제도,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성평등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요? 여러 지표가 있지만, 전 세계 차원의 비교를 위해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의「세계 성 격차 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보고서는 △경제 △교육 △건강 △정치 등 네 가지 주요 분야에서 성별 격차를 지수화하여 평가합니다. 지난해 6월 발표된 세계 성 격차 지수에서 1위를 차지한 나라는 아이슬란드(0.935점)였습니다. 0점에 가까울수록 성별 간 격차가 크다는 의미인데, 거의 완전한 성평등(1점)에 가까운 점수입니다.
많은 분들이 한국, 중국, 일본 중 답을 고민하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정답이 아닙니다. 동북아시아에서 성 격차 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는 바로 ‘몽골’입니다. 동아시아 14개국 중 순위는 몽골(5위), 한국(8위), 중국(12위), 일본(14위) 순이었습니다. 최근 한중일 3국의 순위는 때로 바뀐 적이 있지만 가장 높은 순위는 몽골이 지켰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WEF의 분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몽골의 사례에서 우리가 참고할 부분이 있을까요? 몽골의 여성 정치인, 문화·관광·체육·청년부 장관 친바트 너밍과 화상 인터뷰를 통해 몽골의 성평등 정책과 여성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경제’ 성평등 선도하는 칭기즈칸의 후예
몽골 기업 고위직 여성 비율 42%, 韓 16% 그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몽골과 한국의 성 격차 지수를 비교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경제 분야의 성평등 정도입니다.
친바트 장관의 커리어는 성공한 몽골 여성 리더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8년 몽골 최초의 5성급 호텔인 테를지 호텔을 세웠고, 2011년 몽골 최대 규모의 민영 방송사 중 하나인 몽골 TV를 창립해 10여년간 경영했습니다. 정치에 입문한 것은 2021년 문화부 장관으로 지명되면서입니다.
●친바트 너밍 장관 주요 이력
-2008~2021년 몽골 테를지 호텔 창업자 겸 소유주
-2011~2021년 몽골 TV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2015~2021년 미디어 감사기구 ‘몽골 미디어위원회’ 의장
-2021~2024년 몽골 문화부 장관 (비(非)의원 지명직)
-2024년~현재 몽골 문화·관광·체육·청년부 장관 겸 국회의원
친바트 너밍 몽골 문화·관광·체육·청년부 장관. 사진 장관실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1983년생인 그는 1990년대 초 몽골의 민주화·시장 경제 전환 흐름을 타고 관광과 문화 분야에서 성과를 거뒀습니다. 정치에 제대로 뜻을 품게 된 것도 몽골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고 합니다. 친바트 장관은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 비판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며 “몽골이 사회주의 경제에서 시장 경제로 바뀐 지 30여 년이 지났다.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고, 나도 그 일부가 되고 싶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전통적인 유목 생활 방식도 남성과 여성이 책임을 분담하는 파트너십 기반의 가족 구조를 장려했습니다. 오지에 살면 가족밖에 없으니까요. 이런 분석은 일정 부분 타당한 면이 있습니다. 몽골 제국의 초대 지도자 칭기즈칸은 네 명의 딸에게 제국의 상당 부분을 다스리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원에서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생활하는 유목 문화의 영향으로, 제국 내에서 권력을 가진 여성들은 주변국과 비교할 때 많은 자율성을 누린 것으로 전해집니다. 20세기 들어섰던 사회주의 체제에서 많은 여성이 경제활동에 나섰던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여전히 몽골에서는 여성의 고등교육 이수율이 남성보다 높고 여러 분야에서 여성의 진출이 활발한 편입니다.
한국과는 대조됩니다. 똑같이 역사적 맥락에서 평가한다면, 우리나라에선 남존여비 등 보수적인 성역할 규범을 강조하는 유교 문화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가 당연하지 않은 역사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습니다. 그 영향은 현재까지도 지속 중인 듯 보입니다. 국내 100대 기업 사내이사 중 여성은 단 10명에 불과하다고 하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여성의 기업 내 고위직 진출이 어려운 현실은 다른 조사에서 수차례 확인된 바 있습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이달 초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The glass-ceiling index)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8개국 중 관리직 여성 비율(16.3%)이 뒤에서 세 번째로 낮습니다. OECD 평균은 34%입니다. 기업 내 여성 이사 비율(17.2%) 역시 뒤에서 두 번째로, OECD 평균인 32.9%에 크게 미치지 못합니다.
OECD 부동의 1위인 성별 임금 격차 등 다른 성평등 지표도 성적이 좋지 않습니다. 경제 분야의 견고한 유리천장이 각종 국제 성평등 지표에서 한국의 순위를 떨어뜨리는 가장 큰 장애물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치’ 대표성서 뒤바뀐 순위?
여성 정치인이 예외가 되지 않으려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WEF 보고서는 지난해 기준 몽골 의회에서 여성 의원의 비율은 18.1%라고 지적합니다. 세계 146개국 중 108위입니다. 경제 분야의 높은 고위직 비중과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정치에 입문해 놀란 점을 묻는 말에 친바트 장관은 이런 간극을 체감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자신이 ‘예외적인’ 존재가 되는 걸 처음 경험했다는 겁니다.
친바트 장관은 “몽골의 비즈니스 분야에선 여성 리더가 훨씬 많다. 여성인 내가 평범하지 않은(uncommon) 사례였던 적이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여성인 데다 평균보다 어린(30~40대) 장관으로서 “더 많은 의심과 감시”를 견뎌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2021년 당시 몽골의 14개 부처 장관 중 여성은 네 명이었습니다. 지난해 내각 개편으로 새로 임명된 16개 부처에서 여성 장관은 세 명뿐입니다.
몽골은 한국과 같은 국회의원 ‘후보자’ 여성 할당제(쿼터제)를 시행하며 비율을 개선하기 위해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 법제화 시도가 좌초된 경험을 딛고, 2016년 선거법 개정 이후 여성 후보 비율을 20% → 2024년 30% → 2028년 40% 이상이 되게 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빠른 속도로 개편을 추진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여성의 수가 부족한 정치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성적도 좋지 않지만 조금 나은 정도입니다. WEF 기준 우리 국회의 여성 비율은 19.2%, 세계 146개국 중 103위입니다. 장관급으로 가면 차이가 조금 더 벌어집니다. 우리나라의 내각(부처 장관) 및 행정부 고위직에서 여성 비율은 29.41%로, 12.5%인 몽골의 두 배 이상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한국의 경우 평등한 내각 구성에 대한 지적이 높아지면서 여성 장관들이 매 내각에 포함되고 있지만, 여성가족부 등 일부 부처에 한정된 인사라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친바트 장관과 같은 39세 이하의 젊은 지도자를 배출한 적도 아직 없습니다.
의무적으로 여성 수를 배정하는 쿼터제는 실효성과 형평성 등의 측면에서 여러 한계가 지적되곤 합니다. 하지만 개혁 덕분일까요? 다음 WEF 보고서에선 몽골과 한국의 순위가 뒤바뀔 지도 모르겠습니다. 몽골은 지난해 7월 총선을 치렀는데요. 126석 중 32명의 여성 의원이 당선돼 여성 의원 비율은 25.4%를 기록했습니다. 국제의회연맹(IPU)의 집계한 아시아 지역 평균치 22%를 넘는 수치입니다. 한국은 지난해 4월 제22대 총선 결과 역대 가장 많은 여성 의원(60명)이 당선됐지만, 비율을 계산하면 20%에 그칩니다.
젊은 여성 장관 당사자로서 친바트 장관에게 쿼터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오히려 당선된 여성 정치인들에게 성과를 증명하라는 압박이 세진다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했습니다. 그는 큰 부담감과 책임감을 인정하면서도 “내게는 선구자로서 책임이 따른다”며 “변화의 필수적인 단계”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6일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 참여한 친바트 너밍 몽골 문화·관광·체육·청년부 장관.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소수의 여성만이 권력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는 여성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훨씬 더 커집니다. 여성 리더에게는 매우 높은 기준이 적용되고, 때때로 더 잘할 것을 기대하는 다른 여성들의 비판에 마주하기도 합니다.
고위직에 오른 여성이 너무 적기 때문에 성취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이 존재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변화의 필수적인 단계이기도 합니다. 의사 결정자인 여성의 수가 계속 증가한다면, 미래에는 여성이 권력을 잡는 게 당연한 일이 될 것이므로 이런 압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겁니다.”
친바트 장관은 “궁극적인 목표는 여성이 리더십에서 ‘예외적인 존재’가 되지 않는 시점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여성 의원의 수가 늘면서 4년 전과 정치적인 논의도 다양해진 것을 느낀다며, 쿼터제가 숫자만 보장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실질적인 형평성 달성과 포용적인 정책 결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숫자도 제도도 말하지 않는 것들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과제
지금까지 다룬 내용을 표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과 몽골의 세계 성 격차 지수 현황과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역사적, 사회적 배경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동아시아 성평등 1위 국가라고 거창하게 제목을 달았지만 답을 내리기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단순한 숫자나 제도로 평등을 단정할 수는 없고, 발전의 추이와 지속성도 중요하게 살펴야 할 것입니다. 또 위 자료는 ‘여성 리더십’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동북아 전반에서 문제로 지목되는 가부장적 사회 규범 등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을 포착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교와 지표상의 현실은 우리가 개선해야 할 부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한국은 기업 내 유리천장이 심각한 수준이며,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경력 발전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한국과 몽골 양 국가 모두 여성 지도자들이 실질적인 의사 결정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올여름 발표될 새로운 WEF 보고서는 한국과 몽골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와 전 세계 국가들의 성평등 현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걱정과 기대를 모두 안고 우리의 성적표를 기다리면서, 성적표 너머의 평등을 위해 더 많은 사회적 변화와 정치권의 목소리가 들려오길 바라야겠습니다.
김윤진 기자 kyj@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