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A 워싱턴 소식통 인용해 보도
“지지자들에게 ‘소맥’ 말아줘...한미 가교 하고 싶어”
도널드 트럼프 2기 미 행정부의 첫 주한 대사로 거론되는 미셸 박 스틸 전 연방 하원 의원이 지역구 선거 하루 전인 작년 11월 4일 캘리포니아주 부에나 파크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그는 이번 선거에서 600여 표 차로 석패했다./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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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의 첫 주한 미 대사로 한국계 미셸 박 스틸(70·한국명 박은주) 전 연방 하원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고 VOA(미국의소리)가 워싱턴 소식통들을 인용해 4일 보도했다.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 여성 하원 의원인 스틸은 민주당 성향이 강한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공화당 재선 의원을 지냈다. 외교 소식통은 “스틸이 트럼프 진영 내에서 강한 지지를 받으면서 미 대사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며 “대사직이 아니더라도 연방 부처 주요 보직에 임명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난 스틸 전 의원은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중·고교를 일본에서 다녔다. 일본여자대학 1학년을 마친 뒤 1975년 미국으로 이주해 캘리포니아주 페퍼다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았다.
주부였던 스틸이 정계에 입문하게 된 건 어머니의 ‘언어 문제’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어머니는 한인이 밀집한 오렌지 카운티 지역에서 옷 가게 운영을 했지만,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1980년대 초 주 당국에서 큰 액수의 세금을 부과받았지만, 복잡한 문서에 이의를 제기할 힘이 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스틸은 “부당한 행정 요구를 내가 직접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언론 인터뷰 등에서 밝혔다.
1992년 LA 폭동까지 터지면서 소외된 한인 사회의 정치적 역량을 키우는 것이 절실하다고 느껴 그해 지역 공화당에 입당했다. 스틸은 이듬해 LA 시장 후보였던 리처드 라이어든의 선거 캠프에 참여하면서 본격 정계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LA시 공항 및 소방 감독위원, 아동복지국 감독위원, 한·미공화당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부시 행정부 당시인 2001~2004년 백악관 아시아·태평양계 자문위원을 지냈고,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백악관 아시아·태평양계 공동 자문위원장이었다.
잇따라 선출직에 당선되면서 지역에서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성향이 강한 캘리포니아의 연방 하원 의원직에 두 차례 내리 당선된 건 그의 과감한 세금 감면 및 규제 완화 공약의 힘이 컸다는 분석이다.
2024년 4월16일 미 연방의사당 지하 방문자센터에 있는 ‘사우스 오리엔테이션 시어터(강당)’에서 열린 '건국 전쟁' 시사회를 주최한 공화당 소속 미셸 스틸 하원의원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이민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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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하원 의원으로 처음 당선된 뒤엔 한미 동맹 및 한·미·일 협력 강화, 반중(反中) 정책 등에 앞장서왔다. 2021년부터 4년간 연방 하원 의원을 지냈지만,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600여 표 차이로 석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역구 선거 직전인 지난해 10월 소셜미디어 글에서 스틸에 대해 “가족과 함께 공산주의(북한)에서 탈출한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애국자”라고 했다. 이북 출신 부모님이 6·25 전쟁 발발 이후 월남해 서울에 자리 잡은 것을 지칭한 것이다.
[이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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