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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신입사원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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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퇴근길 지하철에서 마주친 풍경이 지금도 선명하다. 맞은편에 앉은 양복 차림의 청년, 그의 넥타이 매무새는 서툴렀고 구두는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듯 반짝였다. 첫 출근이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그가 속한 세계가 곧 사라질 것이라고.

'신입사원'이라는 단어가 박물관에 들어갈 날이 머지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막연한 예감이었다. 하지만 점점 그 윤곽이 또렷해졌다. 마치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풍경처럼. 우리가 알던 '취업'이라는 관문은 사라지고, 모든 이들의 첫 사회생활은 '독립 프로페셔널'로 시작될 것이다.

"앞으로는 모든 직장인이 1인 기업가가 되어야 해요." 얼마 전 한 스타트업 대표가 했던 말이다. 처음엔 과한 표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의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AI가 만들어낼 새로운 질서 속에서,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전문성을 가진 독립적인 경제 주체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며칠 뒤, 나는 한 50대 남성의 이력서를 보게 되었다. 그는 최근에 사진을 새로 찍었다고 했다. 젊어 보이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양복도 새로 맞췄고, 머리도 염색을 했다. 하지만 그의 눈가에 깊게 패인 주름은 어떤 조명으로도 가릴 수 없었다. 그 주름은 시간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기묘한 시대를 살고 있다. 한 회사에서 30년을 일했다는 것이 자랑이 아닌 짐이 되는 시대.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화석이 되어버린 시대. 젊은이들은 이제 처음부터 독립 프로페셔널의 길을 걸어야 하고, 중년들은 강제로 그 길에 내몰리고 있다.

어느 날 강남의 한 공유 오피스에서 이런 장면을 목격했다. 세 명의 청년들이 각자의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한 명은 AI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제품 디자인을 검토하고 있었으며, 마지막 한 명은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의 회사에 소속된 것이 아닌, 각자의 전문성을 가진 독립 프로페셔널들이었다.

같은 날 저녁, 서울의 모 인력시장을 찾았다. 새벽 다섯 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일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한때 넥타이를 매고 사무실에 출근하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런 이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오직 건강한 육체만이 자산이 되는 곳.

2024년,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15만 9천 명이 감소했다. 이 숫자는 차갑고 건조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은 뜨겁고 절망적이다. 특히 50대가 많이 찾는 일자리들이 급격히 사라졌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이 쌓아온 전문성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는 점이다. 한 회사에서만 통용되는 암묵지는 다른 곳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 마치 오래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처럼, 용량은 크지만 새로운 시스템과는 호환되지 않는다.

청년들 역시 난관에 봉착해있다. 대부분이 학자금 대출을 지고 있다. 졸업과 동시에 2천만 원 안팎의 빚을 떠안은 채 사회에 발을 내딛는다. 여기에 치솟는 전월세 가격은 그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든다. '독립 프로페셔널이 되어라'는 조언은 그들에게 마치 날개 없이 하늘을 날으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AI는 양날의 검이다. 그것은 일자리를 빼앗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나이와 경력에 상관없이, AI를 파트너 삼아 독립 프로페셔널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얼마 전 만난 한 58세의 전직 대기업 임원은 AI를 활용해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AI가 있어서 가능했어요. 제가 가진 30년의 경험과 AI의 최신 지식이 만나니까,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지더군요." 또 다른 청년은 AI의 도움을 받아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가이드 서비스를 시작했다. "AI 통역기만 있으면 어느 나라 관광객이든 상관없어요.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이제는 오히려 재미있어요."

우리는 지금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청년이든 중년이든, 이제 모두가 독립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그것은 두렵고 낯선 변화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를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는 것이다. 청년들의 시작을 돕고, 중년들의 전환을 지원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하철은 다음 역을 향해 달린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풍경처럼, 우리의 일하는 방식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새로운 파트너와 함께.


글 : 손요한(russia@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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