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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1심 무죄... 이젠 '윤석열의 외압'을 수사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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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중앙지역군사법원은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을 시작한 지 13개월 만에 나온 무죄 판결이다.

군사법원 재판부는 ‘사건 이첩을 중지하라’는 해병대 사령관의 명령이 정당하지 않았으므로, 따르지 않았다고 해도 항명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한 재판부는 박 대령이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해병대 사령관이 박 대령에게 내린 명령을 두 부분으로 나눠 판단했다. 박정훈 대령이 2023년 8월 2일 채 해병 사망 원인 수사기록을 경북 경찰청에 넘겼는데, 이첩 전에 내렸다는 ‘이첩 보류 명령’, 그리고 수사기록 이첩이 시작된 후 내린 ‘이첩 중단 명령’을 나눠 심리한 것이다.

재판부는 먼저, 이첩 전에 내려진 ‘이첩 보류 명령’에 대해서는 명령 자체가 명확하지 않았다고 봤다. 김계환 사령관이 2023년 8월 1일, 오전 10시 17분부터 22분 사이 박진희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과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 중에서 이첩을 “고민 중”이라고 한 대화 기록을 볼 때, 명시적인 이첩 보류 명령이 있었다고 믿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어 재판부는 수사기록 이첩이 시작된 후 내려진 ‘이첩 중단 명령’에 대해서도 명령은 있었으나 정당하지 않은 명령이었다고 판단했다. 이첩 중단을 위해서는 중단시킬 만한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빼야 한다’는 국방부의 논리는 이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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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법원 재판부는 김계환 사령관의 명시적인 ‘사건 이첩 보류 명령’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사건 이첩을 중지하라’는 명령도 정당하지 않았으므로, 따르지 않았다고 해도 항명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이종섭 전 장관이 이첩 보류와 이첩 중단을 지시한 사유이기도 한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빼야 한다’는 논리는 당초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내용을 수정하려는 시도이며, 엄정한 수사를 위해 군 사망 사건 수사를 민간 경찰에게 넘기도록 한 2022년 군사법원법 개정 취지를 감안할 때, 사건 기록을 수정하려는 시도는 정당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뉴스타파

▲ 2025년 1월 9일, 1심 신고 직후, 군사법원 앞에서 발언하는 박정훈 대령
‘항명 재판’으로 시작해 ‘수사외압’ 실체를 드러낸 13개월 재판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은 경북 예천에서 폭우 피해 실종자를 찾다 2023년 7월 19일 순직한 고 채수근 해병의 사망 원인을 조사했다. 해병대 수사단은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 포7대대장을 포함한 8명을 과실치사 혐의자로 추린 수사결과 보고서를 작성했다. 관련 법에 따라 경찰이 이들을 수사하도록 ‘사건 이첩’을 준비했다. 2022년 개정된 군사법원법은 사망, 성폭력, 입대 전 범죄 등 ‘3대 범죄’는 군이 아닌 민간 경찰이 수사하도록 돼 있다.

2023년 7월 30일 오후 4시 30분 박정훈 대령은 수사결과 보고서를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대면 보고하고, 관할인 경북경찰청으로 사건 이첩에 대해 결재받았다. 그런데 다음 날 오전 11시 56분, 이 장관은 김계환 당시 해병대 사령관에게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이 전 장관은 이첩 보류 사유로 “법무관리관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어서”라고 주장했지만, 박 대령은 이때부터 국방부 관계자들로부터 ‘혐의 내용과 혐의자를 빼고 수사 기록만 이첩해야 한다’는 외압을 여러 번 받았고, 배경에 ‘VIP 격노’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8월 1일까지 김계환 당시 사령관은 박 대령 등을 불러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를 따라야 할지 ‘논의’했다. 재판부는 군 검찰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봤을 때, 김 전 사령관이 이 때 명시적인 이첩 보류 명령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김 전 사령관은 법정에서 이첩 보류 명령을 했다고 증언했지만, 당시 김 전 사령관의 통신 기록을 살펴봤을 때, 김 전 사령관의 ‘이첩 보류 지시’가 있었다고 믿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박 대령은 사건 관할인 경북경찰청에 이첩이 예정돼 있던 8월 2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진행되도록 해병대 수사단원들을 보냈다. 박 대령은 그 직전 김 전 사령관이 이첩 보류 방법을 추가 토의하기 위해 소집한 회의에 참석해 수사단원들이 경북경찰청으로 출발했다고 보고했다.

김 전 사령관은 약 2시간 뒤 박 대령을 수사단장 보직에서 해임하고 국방부는 그날 오후 경찰에 넘어간 사건 기록을 회수했다. 국방부는 박 대령이 상부 지시를 어겼고, 기자회견과 방송 출연을 통해 공개함으로써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항명과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박 대령을 기소했다. 그리고 고 채 해병 사망사고의 혐의자를 8명에서 2명으로 축소해 다시 경북경찰청에 보냈다.

2023년 12월부터 박정훈 대령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다. 이듬해인 2024년 5월까지 총 4번의 공판이 열렸다. 김계환 당시 해병대 사령관, 정종범 당시 부사령관, 사령관의 참모들, 박 대령 및 해병대 수사단원들의 휴대폰 포렌식 결과와 통신기록 등이 증거로 채택됐고, 통신사실 조회 결과가 연이어 나오면서 재판의 양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재판 진행될수록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통화내역 줄줄이 나와
변호인단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박진희 군사보좌관의 통신기록 조회를 신청했다. 이들은 김계환 당시 해병대 사령관에게 연락해 이첩 보류와 혐의자 및 혐의내용 삭제를 지시했다. 이들의 통신 기록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의 휴대폰 번호가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다.

박정훈 대령 지휘로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기록을 경찰로 이첩한 직후인 2023년 8월 2일 낮 12시 무렵, 윤 대통령은 개인 휴대폰으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게 3차례 연달아 전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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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8월 2일 낮 12시 무렵, 윤 대통령은 개인 휴대폰으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게 3차례 연달아 전화했다.
이 전 장관이 자신이 결재했던 해병대 수사단 수사보고서 결재를 뒤집고, 김계환 사령관에게 이첩 보류 지시를 하기 직전인 7월 31일 오전 11시 54분. 누군가 대통령 경호처 명의의 유선전화(02-800-7070)로 이 전 장관에게 전화한 기록도 나왔다.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 전 장관은 경호처 명의의 유선전화로 미상의 인물과 통화한 직후, 박진희 군사보좌관의 전화기로 김계환 사령관에게 연락해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했다. 역시 ‘윗선’의 개입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박 대령 변호인단의 정구승 변호사는 “군 출신 유력 정치인 등을 염두에 두고 통신기록 조회를 했는데 뜬금없이 대통령의 개인 전화번호가 나왔다”면서 “실체가 좀 더 높은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박 대령의 항명죄를 묻는 재판은 수사외압 의혹의 진실을 찾는 재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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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이종섭 장관은 경호처 명의의 유선전화로 미상의 인물과 통화한 직후, 박진희 군사보좌관의 전화기로 김계환 사령관에게 연락해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했다.
변호인단은 2024년 6월부터 본격적으로 통신기록 조회 신청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그리고 해병대 사이에서 정보와 지시를 전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통신기록을 군사법원에 요청했다. 임기훈 당시 대통령실 안보실 국방비서관, 김형래 대통령실 안보실 파견 해병 대령, 신범철 당시 국방부 차관, 유재은 당시 국방부 법무관리관, 김화동 해병대 사령관 비서실장 등이다.

통신기록마다 대통령실 비서관들이 나선 흔적이 나왔다. 2023년 7월 30일 오후 4시 30분, 박정훈 대령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함께 이종섭 장관 집무실을 찾아 채 해병 사망원인 수사결과를 대면 보고하고 결재를 받았는데, 직후 임기훈 안보실 국방비서관은 박진희 국방장관 군사보좌관과 두 차례 통화했다. 또 박 보좌관은 김계환 사령관에게 ‘수사 내용이 안보실에 보고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텔레그램 메시지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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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7월 30일, 박정훈 대령이 이종섭 정관에게 수사결과 대면 보고 직후,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통화 기록.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기록을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한 직후인 8월 2일 오후 1시 무렵엔 윤석열, 임기훈, 유재은, 경북경찰청 수사부장으로 이어지는 통화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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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기록을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한 직후인 2023년 8월 2일 오후 1시 25분부터 윤석열, 임기훈, 유재은, 경북경찰청 수사부장으로 이어지는 통화가 연속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이 움직인 흔적도 나왔다. 8월 2일 정오에서 오후 1시 사이 윤 대통령이 이종섭 장관과 세 차례 통화하는 동안, 이시원 비서관은 임기훈 국방비서관, 신범철 국방부 차관과 전화 통화하고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윤석열, 임기훈,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 이어지는 통화가 이뤄지는 동안 이시원 비서관은 임기훈, 유재은에게 연락을 취했다. 대통령실이 사건기록 회수에 적극 개입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통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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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8월 2일 낮 12시에서 오후 1시 사이, 윤석열 대통령이 이종섭 장관과 세 차례 통화하는 동안, 이시원 비서관은 임기훈 국방비서관, 신범철 국방부 차관과 전화 통화하고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또한 박 대령 변호인 김규현 변호사가 그간 추측으로만 남아있었던 ‘VIP 격노설’의 배경인 ‘임성근 구명로비 의혹’을 제기했다. 김 변호사는 자신이 속해 있던 카카오톡 해병대 선후배 모임인 ‘멋쟁해병’ 멤버들과 나눈 대화기록과 통화 녹음 파일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공익제보했다.

이 방에는 전직 대통령경호처 직원 송모씨,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식 계좌를 관리한 이종호 블랙펄인베스트 대표 등이 있었다. 김 변호사가 공개한 녹음 파일을 들어보면, 이들은 임성근 사단장에게 전역하거나 사표를 쓰지 말라고 만류했고, ‘VIP’에게 임 사단장의 선처를 구하려 한다는 취지의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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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호 씨와 김규현 변호사 간 통화 내역 중
‘박정훈의 수사’는 완성되지 못했다
박정훈 대령의 재판은 그 성격이 ‘항명 재판’에서 ‘외압 실체 규명’으로 바뀌었으나, 외압의 실체를 명확히 밝히는 데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수사 외압’의 실체를 밝히는 재판이 아니었기에 항명 혐의와 무관한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 등에 대한 통신기록 조회 요청은 군사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회는 채해병 특검법을 세 차례 통과시켰지만 윤 대통령은 매번 거부권을 행사했다.

‘수사외압’ 의혹을 수사 중인 공수처와 채 해병 사망원인 사건을 들여다보는 대구지검의 수사 결과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구승 변호사는 “공수처는 이미 자료 확보가 끝난 걸로 알고 있다”며, “지금 확보한 수준만으로도 외압이 있었다거나 그 이후에 잘못, 부당한 공소제기가 됐다는 과정은 충분히 밝힐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공수처는 12·3 내란 수사에 모든 인력을 투입한 상태다.

국방부 항소로 항명 재판은 2심 법원으로
1심 무죄 선고로 박 대령은 항명과 상관명예훼손 혐의를 벗었다. 그러나 국방부 검찰단은 “1심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판결문 검토 결과 사실관계 확인 및 법리판단 등에 수긍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며 지난 13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2심부터는 민간 고등법원에서 진행된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박 대령은 2023년 8월 2일 보직 해임된 이후 현재까지 특별한 임무 없이 고립돼 있다. 박 대령은 지난해 6월 21일 채해병 특검법 입법청문회에서 “사령부로부터 약 4km 떨어진 독립 숙영지 사무실에 격리돼 11개월 째 아무런 임무 없이 출퇴근만 했다. 모든 업무로부터 배제되고 부하들과의 자유로운 접촉도 차단된 상태”라며 “매일 죽음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제가 참고 견딜 수 있는 힘은 오로지 국민 여러분의 지지와 응원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대령 변호인단은 국방부에 △박 대령 해병대 수사단장으로 복직 △박 대령 구속영장에 허위 사실 적시한 군 검사에 대한 직무배제 △박 대령 재판에서 위증한 국방부와 해병대 관계자들의 처벌 △박 대령 기소 이후 한직으로 쫓겨난 해병대 수사단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 등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뉴스타파 김지윤 jiyoon@newstapa.org

뉴스타파 변지민 pluto@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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