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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금)

경찰 도청했던 독일 정보원 실종 20년…그는 살해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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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5년 5월 실종된 뒤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한 독일인 알렉산더 루흐터한트.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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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정보원, 사업가…. 푸른 녹색 눈빛을 가진 알렉산더 루흐터한트를 아는 사람들이 그를 부르는 이름은 다양했다. 알렉산더는 언론사에 경찰이 다루는 사건에 대한 내밀한 정보를 넘기고 돈을 받는 정보원 노릇을 주로 했다. 관련 사건의 이해관계자나 범죄자들도 그의 ‘고객’이 되곤 했다. 하지만 그는 은행 계좌 하나 만들지 않았다. 술집에서 계산을 할 때면 늘 주머니에서 두툼한 현금 뭉치를 꺼냈다고 한다. 알렉산더가 때때 로 어울린 여성들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 러시아 등에서 왔는데, 그에게 여성을 소개해 줬다는 ‘러시아 친구들’을 두고 누군가는 인신매매 조직이라고 수군거렸다. 알렉산더는 사업 욕심도 많았다. 독일인 남성과 러시아인 여성을 연결해주는 데이팅 업체를 만들 생각을 하는가 하면, 한때 러시아 핵 과학자와 손을 잡고 에너지 발전과 관련된 특허 투자도 계획했다.



종잡을 수 없는 비밀로 가득 찬 그는 2005년 5월8일,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 알렉산더가 죽었다거나, 혹은 살아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하지만 경찰은 20년이 지나도록 그의 소재도, 시신도 찾지 못했다. 그 의 실종 사건은 베를린 경찰이 풀지 못한 장기 미제 사건이 됐다. 알렉산더가 몸 담았던 신문사 중 한 곳인 베를리너 자이퉁은 그가 실종된 날 마지막 연락을 받았다. 당시 알렉산더는 베를린 노이쾰른의 한 커리부어스트(독일의 소시지 요리) 집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했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누군가 알렉산더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이내 끊기는 소리가 들렸고, 그날 밤 11시30분 이후로 그의 휴대전화는 영원히 꺼졌다. 한 이웃은 그의 아파트에서 ‘쾅’하는 굉음을 들었다고 했다.



경찰은 그의 잠적을 단순 실종이 아닌 살인 사건으로 의심했다. 수사가 시작됐다. 5명을 용의선상에 올렸으나 혐의를 확정할 정도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의 시신이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알렉산더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용의자들에 대한 수사는 2008년 8월 종료됐다.



그렇게 16년이 흘렀고, 2024년 연말의 어느 날 경찰은 수사의 물꼬를 틀 제보를 받았다. 알렉산더의 시신이 있는 곳을 안다는 것이었다. 베를린 검찰청은 지난 7일(현지시각), “지난해 12월 초에 받은 제보가 매우 구체적이라 후속 조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고 독일 신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는 전했다. 제보자는 그의 옛 사업 파트너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베를린 주 경찰과 연방 경찰청까지 합세해 탐지견을 대동한 수색대는 제보를 따라 베를린 반제 지역의 한 건물과 인근 거리를 샅샅이 뒤졌다. 특히 해당 건물의 후미진 창고가 집중 수색 대상이 됐다. 경찰은 지금도 “49살, 푸른 녹색 눈, 키 185m”의 인적사항을 가진 그를 찾고 있었다.



결과는 이번에도 허탕이었다. 알렉산더가 있다던 곳은 오래된 타이어나 냉장고 따위의 고물과 쓰레기로 가득했다. 이런 일은 전에도 있었다. 11년 전인 지난 2014년,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의 융페른하이데 공원에서 누군가의 뼈 일부가 발견됐다. 당시에도 뼈의 주인이 알렉산더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경찰은 이 사건은 그와 무관하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20년이 지나도록 알렉산더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는 건 그의 화려했던 행적과 실종 뒤 수상한 정황들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아파트 옥상에 8m 높이 안테나를 설치했고, 집 안에선 경찰관과 소방관들의 대화를 포착하기 위해 주파수를 탐지하는 라디오 탐지기를 두어 도청하는 행각을 벌였다. 그에게 기삿거리를 받은 베를린 언론사는 공영방송과 신문 등 매체를 가리지 않았다. 경찰은 그가 매해 25만유로 정도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봤다. 알렉산더가 사라지고 나흘 뒤, 사업차 벨라루스 민스크에 함께 가기로 했던 친구들도 그가 없어진 사실을 알아 차렸지만 경찰에 곧바로 신고할 순 없었다고 한다. 경찰을 도청해온 사실이 발각될까 염려됐기 때문이다. 알렉산더가 사라지고 난 뒤 찾은 아파트는 불이 켜진 채 문도 열려 있었다. 평소 4중의 잠금장치로 문을 걸어 잠가야 집을 나서는 알렉산더답지 않은 일이었다. 경찰 감식 결과 누군가 그의 집을 수색한 흔적도 나왔다.



알렉산더는 살해된 게 아니라 어딘가에서 다른 수완을 발휘하며 살고 있을 거라 믿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그가 실종되고 며칠 뒤 19살 여성과 72살 노인은 알렉산더를 봤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휴대전화 내역 등을 분석한 경찰은 그가 실종될 무렵 연락했던 인물들을 용의선상에 올리고 살인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이 미제 사건의 실마리가 풀릴 가능성은 현재로선 묘연해 보인다.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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