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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금)

“오죽하면 연탄 봉사까지 뚝 끊겼다”…계엄·불황에 얼어붙은 기부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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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계엄사태 겹치며
어려운 이웃 향한 기부 줄어
쪽방촌 급식소 운영도 적자
“연초 쌀·떡 기부문의 없어”

사랑의 온도탑 모금도 위축
울산·전북 등 60도 수준 그쳐


매일경제

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 무료 급식소 ‘토마스의 집’에서 자원봉사자가 어르신께 간식과 핫팩을 나눠주고 있다. [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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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에 비상계엄 등 사회적 혼란까지 겹치면서 어려운 이웃을 향한 기부의 손길이 움츠러들고 있다. 통상 연말연시는 나눔과 봉사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시기지만 오랜 기간 지속된 내수 침체에 비행기 참사와 정치적 혼란까지 겹치면서 어려운 이웃들이 무관심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27일 오후 취재진이 방문한 서울 영등포 쪽방촌 ‘토마스의집’에서는 무료 점심 나눔이 한창이었다. 이곳은 1993년 설립돼 쪽방촌 주민들과 인근 독거 노인 및 노숙인에게 주 5회 점심 급식과 간식을 제공하고 있는 무료 급식소다. 매일 350명 정도의 어르신이 이곳에서 하루 끼니를 해결한다. 이날도 반찬 3개, 국 1개가 식판을 채워 배식됐고 식사를 다 마친 어르신에게는 라면, 바나나, 커피, 핫팩이 제공됐다.

3년째 쪽방촌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장광택 씨(68)는 “집에는 밥통도 없어서 여기서 주는 급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라면을 끓여 저녁을 때운다”며 고마워했다.

그러나 이곳은 최근 도움의 손길이 크게 줄면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월세는 매달 174만원씩 나가는 상황에서 식자재 값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기부금은 점점 줄어들면서 적자 폭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2003년부터 토마스의집을 이끄는 박경옥 총무(64)는 “매번 크리스마스, 신정, 구정께가 되면 여기저기서 쌀이나 떡 기부가 들어와 따로 떡을 맞출 필요가 없었는데 올해는 24일까지도 기부 문의 연락이 한 통도 안 와 부랴부랴 떡을 맞춰 25일에 어르신들께 간신히 떡국을 내드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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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백사마을에서 어르신 댁에 연탄을 나르고 있는 봉사자들. [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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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기부도 움츠러들었다.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은 매년 약 450만장의 연탄을 기부받아 이웃에게 나눠주는데, 지난해에는 연말까지 합쳐서 약 350만장에 그쳤다. 전년보다 100만장 정도 연탄이 적게 기부된 탓에 연탄은행은 평년보다 지원 대상 가구 수를 4만가구나 줄였고 농어촌이나 울릉도 등 섬마을 지역에는 연탄을 보내지 못했다.

허기복 밥상공동체 연탄은행 대표는 “계엄 사태 이후 정부 부처나 정치권에서 연말마다 하는 연탄 봉사가 뚝 끊겼다”며 “정치권에 정중하게 연탄 봉사 참여를 요청했는데, 여야를 막론하고 요즘 어지러운 시국 때문에 참여가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그는 이어 “어지러운 정치 상황 속에서 제주항공 참사까지 발생하면서 연탄 나눔에 대한 관심조차 많이 줄었다”며 “26년간 나눔을 해오면서 지금같이 어려운 적은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매년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목표 모금액의 1%를 달성할 때마다 1도씩 올라가는 사랑의 온도탑을 설치해 운영한다. 연말연시 두 달간 진행되는 캠페인을 통해 모금되는 기부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연간 모금액의 절반에 달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지역에서 모은 금액은 해당 지역의 사회복지시설과 기초생활수급자 생계비, 의료비, 교육비 등으로 쓰인다.

2025년도 모금은 지난달 1일부터 시작됐지만 지난 7일 기준 울산 64.5도, 전북 66.3도, 경남 67.8도로 아직 기부 온도가 60도대인 지방자치단체가 세 곳이나 된다. 지속된 불경기에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등이 겹치면서 기부 심리가 크게 위축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울산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목표액을 전년 대비 1억원 낮춘 71억원으로 잡았지만, 전국에서 가장 낮은 기부 온도를 나타내고 있다. 사랑의열매 울산지부 관계자는 “지역 모금회는 중앙 모금회보다 개인 기부의 영향력이 큰데 경기 불황으로 개인 기부자들이 지갑을 닫은 것 같다”고 전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1억원 이상을 기부했거나 5년 이내 납부를 약정한 개인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인데, 전북지부의 아너 소사이어티 신규 가입 회원은 2023년 8명에서 2024년 4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사랑의열매 전북지부 관계자는 “지난달 2일 출범식 행사를 했는데 바로 그다음 날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며 “초반에 도민 관심이 정치나 탄핵 쪽으로 많이 분산되고 경기도 어려워 기부가 원활하지 않은 듯하다”고 설명했다.

사랑의열매 경남지부 관계자도 “현물 모금은 전년 동기 대비 52%밖에 안 되는 상황”이라며 “보통 제조생산 업체에서 상품을 넉넉하게 생산해 재고 물량을 기부하는데 요즘에는 경기가 안 좋아 생산량 자체를 줄이는 것 같고, 개인이 직접 구매해서 기부하는 분도 적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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