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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금)

서로의 장례식에서 추모사 읽는 ‘절친’ 포드와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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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한국 밤 11시) 거행되는 국장(國葬)에서

2006년말 사망한 포드가 생전에 남긴 추모사, 셋째 아들이 읽어

1976년 미 대선에선 서로 ‘대통령 부적격’ 비방했지만

이후 40년 25개 프로젝트 함께 이끌며, 미 대통령史에서 유례 없는 우정 쌓아

제럴드 포드(38대 대통령)와 지미 카터(39대)는 1976년 미 대선에서 맞붙은 정치적 라이벌이었다. 닉슨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내다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포드와 조지아 주의 땅콩 농장주 출신으로 주지사를 지낸 민주당의 카터는 서로를 미국 대통령으로는 부적격자라고 비난했다.

포드는 “카터 주지사의 미숙한 경험과 배경, 모순적인 입장, 정책 부재는 복잡한 대통령 직책을 수행하기엔 부적합하다”고 했고, 카터는 포드가 “(워터게이트 사건이 드러낸) 부패와 정책 실패의 연장선에 있다”며 자신은 “정직한 지도자”라고 주장했다. 매우 치열한 접전 끝에, 카터가 전체 유권자의 50.1% 지지(선거인단 297표 획득)를 얻어 승리했다.

세월이 흘러 2006년 12월26일 포드가 93세로 사망했을 때, 카터는 포드의 장례식장에서 그를 기리는 추모사를 읽었다.

그리고 이제 포드의 차례였다. 9일 오전 10시(미 동부시간ㆍ한국시간 9일 밤11시) 워싱턴 DC의 내셔널 대성당에서 열리는 카터 전 대통령의 국장(國葬)에서는 ‘무덤’에 있는 포드가 추모사를 읽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포드가 생전에 써놓은 카터의 추모사를 그의 셋째 아들 스티븐 포드(68)가 읽는 것이다.

아들 포드는 “아버지와 카터 전 대통령이 정말 친한 친구였던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를 돌보던 직원으로부터 ‘나중에 카터의 장례식에서 읽으라’고 아버지가 남긴 추모사를 건네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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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27일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한 5명의 전현직 대통령 부부. 왼쪽이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 부부. 이어 조지 H W 부시, 로널드 레이건, 지미 카터,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 부부./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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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간 미 하원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이더 포드와 워싱턴 정가를 비판하며 출마한 아웃사이더 카터는 정치적 배경이 딴판이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세월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부부, 가족끼리도 서로 친해졌다며, “의회 본회의장에선 ‘조지아 출신 내 친구’라고 부르고는 등에 칼을 꽂는 워싱턴 DC 스타일의 우정이 아니라, 서로 진심으로 위로하고 함께 기뻐하는 진정한 친구, 서로의 장례식에서 추모사를 읽는 친구가 됐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은 서로 비슷한 점도 꽤 있었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 강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두 사람 모두 기독교 신앙이 깊었고, 모두 해군에서 복무한 것에 자부심을 가졌다. 또 독립성이 강한 아내와 평생 살며, 두 가정이 똑같이 세 아들과 막내 딸을 뒀다.

두 사람은 또 모두 닉슨이 저지른 워터게이트 추문 뒤에 대통령이 돼 각자의 방식으로 나라를 치유할 책임을 지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 로널드 레이건을 싫어했다.

레이건은 1976년 미 대선을 앞둔 공화당 경선에 나와, 포드가 소련에 ‘유화적’이고, 정부 지출을 줄이지 못해 “신뢰할 수 없는 온건파”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결국 그 다음 1980년 미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된 레이건은 카터를 압승(유권자 득표 9% 포인트ㆍ선거인단 489표 획득)했다.

1980년 이후 정계를 떠난 두 사람이 1981년 암살된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의 장례식에 참석하려고 만났다. 레이건 대통령은 닉슨과 포드, 카터에게 에어포스 원(Air Force One)을 함께 타고 가서 조문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에는 혼자 쓰던 대통령 전용기를 나눠 타고 가는 세 사람 분위기는 줄곧 어색했다고 한다.

포드가 “서로 딕, 지미, 제리로 부르자”고 제안했지만, 반응은 뜨듯 미지근했다. 특히 4년 전 대선에서 서로 격한 말이 오갔던 포드와 카터가 특히 그랬다. 세 전직(前職)은 함께 사진 찍는 것도 어색해 했다. 카터는 나중에 “물과 기름 같았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사다트 장례식이 끝나고, 닉슨이 별도의 일정을 가지면서 포드와 카터만 에어포스 원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그 돌아오는 길에 두 사람은 자녀 얘기부터 군축(軍縮)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슈에 대해 서로 생각을 나눴다. 특히 대통령 기념도서관 건립을 위한 모금 활동의 어려움을 놓고 서로 뜻이 통했다. 여행이 끝날 무렵, 카터는 포드 기념 도서관의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고, 포드는 카터 센터의 몇몇 프로젝트를 이끌기로 했다.

포드는 “왕복 40시간가량 한 비행기 안에서 지내면서, 기존의 판(板)을 깨끗이 닦고 얘기하자고 했고, 친해졌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또 안전을 위해 방탄 조끼를 착용하고 사다트 장례식에 참여하면서, 삶의 우선 순위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죽음 앞에서, 불만과 불일치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깨달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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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 재단 주최로 열린 민주주의 컨퍼런스에서 공동 의장을 맡은 카터와 포드 전 대통령/포드 대통령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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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1981년 카이로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 모두 25개 프로젝트에서 공동 의장을 했다. 1983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에는, 팔레스타인인의 자결권을 함께 인정해야 해법이 마련된다는 글을 함께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기고했다. 또 1993년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통과를 지지하는 글을, 1996년 캘리포니아 주가 최초로 의료 목적의 마라화나 사용을 합법화하는 조치를 취하자 이에 반대하는 글도 함께 냈다.

두 전직은 또 1998년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관계에 대해 허위 증언해 의회에서 탄핵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클린턴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해악을 시인하고 양당은 상원 차원에서 그를 견책하는 결의를 통과하는 선에서 나라를 치유하라는 글을 뉴욕타임스에 공동 기고했다.

2007년 1월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즈의 대통령 기념관에서 열린 포드의 장례식에서, 카터는 포드를 추모하며 울먹였다. 그는 포드의 닉슨 사면을 거론하며 “나와 우리 나라를 위해, 또 이 땅을 치유하기 위해 그가 한 모든 일에 대해 내 전임자에게 감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이 말은 카터가 자신의 대통령 취임식에서 한 말이었다. 그는 추모사를 이 말로 시작했고, “내 취임사에서 가장 박수를 받았던 부분”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뉴욕타임스는 “두 사람의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유대감은 미국 대통령사에서도 드문 이야기이고, 특히 오늘날처럼 양극화된 미 정치환경에선 상상할 수 없는 얘기”라고 평했다.

9일 오전 아버지를 대신해 추모사를 대신 읽는 아들 포드는 “두 분은 지금과 다른 시절을 살았고, 또 지금과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었다”며 “정치적으로는 달랐지만, 상대방이 정직과 진실, 가치에 기초하고 있다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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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대통령 부부가 2021년 4월30일 카터 전 대통령 부부와 조지아주 플레인즈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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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카터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선 제럴드 포드 외에, 카터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했던 월터 먼데일(2021년 4월 사망)이 생전에 작성한 추모사도 대독(代讀)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직접 추모사를 읽는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카터의 고향집인 조지아주 플레인즈로 가서 카터 부부를 방문했을 때에, 카터로부터 자신의 장례식 때 추모사를 읽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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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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