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기획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백화점 한 층 통째로 시니어 친화 공간...매출 크지 않아도 케어푸드 접근성↑
특화 편의점선 60종 이상 판매...영양사 상주, 커뮤니티 공간서 구매 이뤄져
2005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노인 문제 대비에 총력을 다해왔다. 그중 하나가 노인을 위한 먹거리 개발과 유통이다. 일본 케어푸드는 ‘개호식품’(介護食品)으로 통용되는데, 식품업계 전반이 역점을 두고는 있는 카테고리다. 한국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만큼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도달한 일본 노인들은 대체 무엇을 먹고, 어떻게 한 끼를 해결할까 궁금했다.
지난해 12월 23일 찾은 일본 도쿄에선 개호식품은 노인들에게 일상의 한부분이었다. 주로 병원과 요양시설, 전화주문을 통한 자택 배달 등으로 유통하는데 백화점, 편의점, 드럭스토어 등 시중 소매점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도쿄 시내 한 소매점에서 만난 직원은 개호식품을 찾는 기자에게 스마트폰에서 번역기를 돌려가며 친절하게 안내하기 바빴다. 개호식품은 더는 이들에게 새로운 식품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식사가 힘들 때면 언제든, 누구든 찾을 수 있는 식품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일본 도쿄 게이오백화점 신주쿠점에서 현지 소비자가 개호식품과 프로폴리스캔디를 구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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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중심지 신주쿠역과 연결된 게이오백화점은 노인들의 쇼핑 성지였다. 대개 백화점 1층은 명품 브랜드로 채워지는데, 게이오백화점에는 노인을 위한 신발과 모자 등을 둔 매대가 즐비했다. 노년층 고객도 인근 오다큐백화점보다 훨씬 많았다. 자녀와 함께 한 사례보다 노인 홀로 쇼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게이오백화점 1층 프론트에서 “개호식품을 찾고 있다”고 묻자, 바로 8층을 안내 받았다. 8층은 시니어 친화관으로 조성돼 개호식품, 유기농 식자재, 건강기능식품, 시니어용품 등이 가득했다. 다양한 종류의 휠체어와 지팡이 등이 있었고 먹거리 판매 공간에서는 직원 누구나 개호식품을 잘 알고 있었다.
일본 도쿄 게이오백화점 신주쿠점 8층에 있는 개호식품 전용 매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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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호식품 매장에 들어서자, 직원은 작은 책자를 건네며 “함바그와 마카로니그라탕이 가장 인기”라고 소개했다. 개호식품 구매 고객은 70대 이상으로, 단골고객이 많다고 했다. 이곳의 점원 에이토는 “평일 기준 40~50명 정도 방문하며 개호식품을 주로 구매한다”며 “맛이 중요한 선택 기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도쿄 로손 센다기시노바주도오리점 입구 정면 개호식품 매대에 유니버셜디자인푸드 4단계에 대해 설명한 안내문이 붙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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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천국’답게 일본 시내 편의점에서도 개호식품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도쿄 분쿄구에 있는 ‘케어로손’을 찾았다. 일본 대표 편의점 브랜드 로손의 ‘헬스케어 특화 편의점’이다. 로손 센다기시노바주도오리점은 케어로손 점포로 조제 약국과 개호·영양상담창구 등을 갖췄다. 멀리서부터 외부에 설치된 ‘간병상담’ 현수막과 ‘간호상담소’ 간판 등이 보였다. 케어로손에 들어서자 입구 정면에서 바로 개호식품 전용 매대를 찾을 수 있었다.
매대에는 60종 이상의 개호식품이 진열돼 있었고, ‘먹는 힘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메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일본은 개호식품을 △쉽게 씹을 수 있음(UDF 1) △잇몸으로 부술 수 있음(UDF 2) △혀로 부술 수 있음(UDF 3) △씹지 않아도 됨(UDF 4)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일본 도쿄 로손 센다기시노바주도오리점에서 노인들이 체조 영상을 보고 따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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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왼쪽에는 ‘지역정보&간병상담존’이 있었다. 케어로손은 이 공간을 노인 커뮤니티로 활용하고 있다. 간단한 체조 영상을 모니터로 선보이고 영양·간호 상담도 진행한다. 개호식품의 특징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준다. 이를 통해 실제 판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케어로손에 상주하는 영양관리사 코히야마는 “매일 15명 이상 노인들이 모여 체조를 하고 4~5명은 영양상담을 받는다”며 “60대 이상이 대부분이며 인근의 어르신 안심상담센터 등과 연계하는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현지 노인 소비자가 일본 도쿄 로손 센다기시노바주도오리점에서 먹거리를 구매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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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출장이나 여행 도중 편의점을 여러 곳 가봤지만, 이날 찾은 케어로손처럼 노인 고객이 많은 곳은 처음이었다. 전체 고객의 약 30%가 노인 고객이었는데, 꼭 뭔가를 사지 않아도 쉼터처럼 방문하고 겸사겸사 구매가 이뤄지는 사례가 많다.
일본 도쿄 분쿄구에 있는 드럭스토어 웰시아의 개호식품 매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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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드럭스토어 체인 ‘웰시아(Welcia)’에서도 개호식품을 만날 수 있다. 일반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을 진열한 매대 옆에 ‘개호식품’ 구역이 따로 있을 정도다. 웰시아 직원은 "인기 상품은 아니지만 꾸준히 찾는 고객이 있다"고 귀띔했다. 일본 유명 식품기업 아사히식품, 큐피, 메이지 등 제품이 눈에 띄었다. 구강관리 제품과 소변패드 등 시니어용품도 함께 판매했다.
일본 개호식품 산업에 정통한 김태은 뉴트리 해외사업부장은 “일본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많은 분이 자신이 노인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B2C(기업과 소비자 거래) 제품보다는 B2B(기업 간 거래) 유통이 아직 주를 이룬다”면서도 “그런데도 개호식품을 편의점이나 드럭스토어에서 구매할 수 있을 만큼 노인을 위한 먹거리 개발과 유통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이투데이/도쿄=연희진 기자 (toyo@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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