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대 총장 90명 재정난 호소
물가 반영한 실질등록금은 감소… “등록금, 고3 한달 학원비 수준”
“녹슨 실험실-물새는 강의실 손못대… 우수 교직원 채용-복지개선도 못해”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가 전국 사립대 총장 152명을 대상(응답자 90명)으로 ‘2025학년도 등록금 인상’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총장 10명 중 9명(97.8%)은 17년째 이어진 정부의 등록금 동결 압박으로 첨단 실험실습 기자재 확충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첨단 교육시설 개선, 우수 교직원 채용, 학생 복지 개선이 어렵다는 답변도 각각 97.7%, 96.6%, 94.5%에 달했다. 오랜 기간 등록금 동결로 재정난을 겪으면서 대학 교육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모두 망가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응답자의 53.3%는 ‘등록금을 인상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등록금 인상안을 아직 논의 중’이라고 밝힌 비율은 42.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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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슨 실험실, 영입 안 되는 교수
사립대 총장들의 주된 관심사는 ‘재정’이었다. 학령 인구 감소 및 등록금 동결로 사립대 대부분이 재정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사총협의 이번 조사에서 ‘대학 현안 이슈 중 중요한 것을 3개만 꼽아 달라’는 질문에 ‘등록금 인상’(75.9%)이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대학 관련 규제 개선’이나 ‘대학 내 인프라 개선’을 1순위로 꼽은 비율은 각각 13.3%, 6.0%에 불과했다.
대학 혁신 방안 관련 문항에서도 총장들의 관심은 ‘재정 해결’에 쏠려 있었다. ‘우수 해외 유학생 유치’가 시급하다는 답변이 93.4%로 가장 많았고 뒤이어 ‘산학협력 활성화를 통한 수익사업 확대’(85.6%)가 꼽혔다. 대학은 외국인 유학생에 한해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고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많은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유학생 유치에 나서고 있다. ‘에듀테크에 기반한 교수·학습법 개발’(74.4%)이나 ‘무전공제 도입 및 융복합 교육과정 개발’(55.5%) 등 교육 내용적인 측면은 후순위로 밀렸다.
서울의 한 총장은 “부족한 재원으로 교수 인재 영입은커녕 기존 교수들이 고액 연봉을 받고 기업 등으로 이직을 해도 붙잡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총장은 “초중고교 시절 좋은 환경의 학교 시설을 경험했던 학생들이 대학 측에 화장실과 강의실이 너무 낡았다는 민원을 많이 한다”며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 등록금 인상 이어질 듯
사립대학 총장들은 올해 등록금을 인상한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우수 교수 유치 및 직원 채용’(31.1%)에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답했다. 뒤이어 ‘학생 복지 지원 시스템 및 시설 강화’, ‘디지털 시대에 맞는 학사조직 개편 및 교육과정 개편’(각 25.6%) 순이었다.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은 2022년 6곳, 2023년 17곳, 2024년에는 26곳이었는데 올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학생들마저 “등록금을 조금 올리더라도 교육 여건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는 분위기다. 서울 주요 대학에 다니는 한 학생은 “중국에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잘 갖춰진 시설 상태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재학 중인 대학의 등록금은 고3 시절 한 달 학원비 수준이다. 이곳에서 인재로 성장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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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총협에 따르면 등록금이 동결된 2009년부터 16년간 소비자물가지수는 132.8% 인상됐지만, 이에 따른 실질등록금은 3분의 1로 감소했다. 2023년 기준 소위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의 학생 1인당 연간 교육비는 2093만6000원으로 사립대 연평균 등록금의 2.9배였다. 서울 시내 반려견 유치원도 월 60만∼90만 원이다. 이는 사립대 월평균 등록금의 최대 1.5배 수준이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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