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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수)

[서초포럼] 빨라진 대선, 급해진 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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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영화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몇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다. 윤석열의 탄핵 열전, 이재명의 서초동 분투기, 태극기 부대의 한남동 사수 작전, 거리를 메운 촛불의 물결. 경찰과 검찰의 도토리 키재기와 공수처의 급발진. 예측 불허의 기막힌 반전까지 작품상 감이다.

비상계엄과 '줄탄핵'이 모든 걸 집어삼켰다. 침체에 신음하던 경제는 벼랑 끝에 섰다. 쌈박질하던 국회는 아예 죽일 듯이 엉겨 붙었다. 숨죽였던 이념의 갈등은 칼바람을 맞으며 거리로 나섰다. 국민은 위로받지 못한 채 나라를 걱정한다. 답답하기 짝이 없다.

국민의 법 감정은 매섭다. 지난 연말의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3분의 2는 탄핵 인용을 찬성했다(경향신문 69%, 중앙일보 67%, 동아일보 70%, KBS 69%. MBC 69%). 새해 들어 헌법재판소는 변론 기일을 지정했다. 탄핵 열차는 출발했다. 탄핵은 사건 접수 180일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후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덩달아 대선 시계도 돌기 시작했다. 물론 탄핵이 기각되면 대선 시계는 멈춘다.

이번 대선은 개헌과 맞물려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손을 봐야 한다. 대통령 탄핵만 벌써 3번째다. 누가 대통령이 된들 혼란은 깊어지고, 싸움은 격해질 것이다. 포용과 화합이라는 단어는 한국 정치에서 사라졌다. 개헌이 꼭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시간이 많지 않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 1987년 6·10 민주항쟁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외쳤다. 1987년 10월 27일 국민투표로 대통령 직선제를 담은 제9차 헌법 개정안을 확정했다. 이 헌법에 따라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치렀고, 이듬해 1988년 2월 25일 대한민국의 6공화국이 출범했다.

이대로라면 국민투표 후 대선을 치르는 게 맞다. 그러나 탄핵이 인용되면 대선을 60일 이내에 치러야 한다. 그사이 개헌 국민투표는 물리적으로 어렵다. 차기 대통령 재임 기간 개헌을 할 수도 있다. 늘 그러하듯 한국 정치가 자발적으로 개헌을 진지하게 논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대선의 주제는 누가 봐도 경제다. 대상은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다. 실물경제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외환위기에 버금갈 정도로 환율이 치솟고 있다. 수출은 그럭저럭 버티지만, 수입 물가 상승이 너무 가파르다. 최저임금은 1만원을 넘었지만 일할 사람이 없어 가게 문을 닫는다. 자영업자는 생계보다 생존을 위협받는다. 소모적인 정치 논쟁보다 표가 되는 경제 공약을 남발할 가능성이 크다. 보수든 진보든 예외가 없을 것이다.

이게 바로 개헌이 필요한 진짜 이유다. 1980년 군부 세력은 8차 개헌으로 제124조 '국가는 중소기업의 사업활동을 보호·육성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대기업 중심의 산업화로 대·중소기업의 양극화가 극심했던 탓이다.

1988년 9차 개헌은 대통령 직선제가 핵심이었지만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여야 한다'고 제124조를 수정해 제123조에 옮겨 담았다. 국가의 역할을 사업활동에서 중소기업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했다. 해석에 따라 생계도 정책의 대상일 수 있다.

이후 37년 중소기업 정책은 보호·육성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갔다. 1980년처럼 중소기업이 70만개라면 보호·육성이 가능하다. 지금은 800만개가 넘는다. 게다가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매년 20만~40만개씩 중소기업이 생기고 있다. 보호·육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나눠 먹기'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다.

한국경제의 희망은 중소기업이다. 삼성의 글로벌 순위가 올라 파생하는 낙수효과를 더는 기대하기 어렵다. 중소기업이 성장해야 삼성과 견주는 기업이 나온다. 그러려면 보호·육성의 낡은 틀을 버려야 한다. 안 그러면 중소기업은 희망이 아니라 부담이 될 것이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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