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 산업IT부 재계팀장 |
AI 시대 초기에는 엔비디아의 범용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데이터센터 구축과 생성형 AI 서비스의 핵심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근 빅테크들이 맞춤형 반도체로 눈을 돌리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브로드컴은 기업 요구에 맞춰 특정 기능에 최적화된 맞춤형 반도체(XPU)를 설계·생산하며 비용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고가인 엔비디아 GPU의 의존도를 낮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브로드컴의 최고경영자(CEO) 혹 탄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대형 클라우드 기업 3곳과 AI 칩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으며, 이들 기업은 알파벳(구글), 메타, 바이트댄스인 것으로 알려졌다. 브로드컴의 고객 맞춤형 접근 방식이 빅테크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이유다.
브로드컴의 강점은 맞춤형 설계와 비용 절감이다. 그동안 빅테크들은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때 엔비디아 GPU에 의존해 왔지만, 브로드컴의 맞춤형 XPU가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GPU는 범용성이 뛰어나지만, 가격이 비싸다. 반면 브로드컴의 XPU는 필요한 기능만 담아 맞춤 제작되며, 비용 효율성이 뛰어나다.
브로드컴의 부상은 주식 시장에서도 확인된다. 월가는 올해 미국 주식시장을 이끄는 새로운 신조어로 ‘배트맨(BATMMAAN)’을 제시했는데, 이는 브로드컴, 애플,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구글, 엔비디아를 합친 미국 대형 기술주 8개를 뜻한다. 기존 ‘매그니피센트 7’에 브로드컴이 추가된 셈이다.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들(서학개미) 사이에서도 브로드컴의 인기는 뜨겁다.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2일까지 서학개미가 가장 많이 매수한 종목이 브로드컴이었다. 약 1억2079만달러(약 1770억원)에 달하는 매수 규모는 시장의 높은 기대를 반영한다.
맞춤형 반도체 열풍은 국내 반도체 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는 AI 가속기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브로드컴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맞춤형 HBM4 생산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빅테크들이 주문한 AI 가속기에 사용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브로드컴의 HBM4 메인 공급사로 선정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현재 시장점유율 60%를 차지한 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줄일 기회를 얻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맞춤형 AI 가속기 시장이 2023년 120억달러(약 17조4000억원)에서 2027년 300억달러(약 43조50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추가적인 수요가 더해지면 시장 규모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결국 AI 시대는 더 이상 범용 GPU의 시대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맞춤형 반도체의 부상은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반도체 시장의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하며 글로벌 IT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이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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