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농사를 짓는 구점숙(왼쪽)·김성 부부가 지난달 20일 경남 남해 이동면의 논을 걸으며 마늘 작황을 살피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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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 대신 시금치
경남 남해는 추수한 논에 월동작물인 마늘을 심는다. 이곳 농민들은 “논에 마늘을 넣다 보니 마늘철이 아닐 때 벼를 재배한다”고 말할 정도로 마늘이 주작물이다. 벼 모판을 만들 때도 다른 지역은 늦가을 수확하는 만생종 벼를 찾는다면, 남해는 이른 가을 수확이 가능한 조생종 벼를 선택한다. 9월 말부터는 마늘을 심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21일 찾은 남해 이동면 난음리 들판에는 마늘과 시금치가 자라고 있었다. 삼동면 봉화리 언덕에 사는 김성(61)·구점숙(55)씨 부부는 집에서 7㎞ 떨어진 이곳 논 1600평(0.53㏊)을 빌려 마늘농사를 짓는다. 집 앞 다랑이(계단식 논) 400평(0.13㏊)에도 마늘을 심었다. 부부는 햇빛 잘 드는 난음리 들판의 소출이 더 좋다고 했다.
남해 마늘은 1970년대 홍콩에서 넘어온 남도 마늘이다. 경북 의성·충북 단양 같은 내륙에서 나는 작고 단단한 육쪽마늘과 달리, 크고 까기 쉽다. 쪽도 10~12개로 나뉜다. 육쪽마늘은 접(100개)으로 팔지만, 남도 마늘은 ‘킬로(㎏)’로 판다. 커다란 마늘이 많이 나왔다는 건 농사가 잘됐다는 뜻이다. 전남 해남, 제주, 남해 등이 주산지인데 남해 것을 최고로 친다. 둘 다 알싸한 맛이 강해 김치 양념용 마늘로 활용된다. 경남 합천·창녕, 경북 영천 등지서 자라는 덜 매운 스페인 대서 마늘은 장아찌용이나 구워 먹는 용도로 쓰인다.
마늘밭과 시금치밭이 뒤섞인 경남 남해 고현면 들판. | 서성일 선임기자 |
국내 마늘 생산량은 껍질을 벗기지 않은 마늘 기준으로 매년 30만t 수준이다. 중국산 마늘은 연간 4만~5만t씩 들어온다. 국내 생산량의 10% 이상을 중국에서 들여오는 셈이다. 관세가 360%에 달하는 신선 마늘(통마늘·깐마늘)은 가격 경쟁력이 없어 수입량이 많지 않고, 관세가 27%인 냉동 마늘이 주로 수입된다. 그런데 2022년 정부가 물가 안정을 이유로 신선 통마늘 2만t을 50% 관세로 수입했다. 그해 중국산 마늘 수입량이 7만t으로 늘었다. 오랜 기간 저장이 가능한 통마늘 수입 물량이 풀리면서 이듬해 국내 마늘 가격이 폭락했다. 남도 마늘과 대서 마늘의 타격이 컸다.
마늘농사에서 가장 힘든 작업은 ‘심는 일’(파종)이다. 농민들은 파종 기계를 쓰지 않고 손으로 심는다. 남도 마늘은 눕히지 말고 세워 심어야 하는데 이때 마늘 위아래를 잘 확인해야 한다. 뿌리가 나오는 아랫부분을 위로 향하게 심으면 마늘이 작아진다.
경남 남해군 이동면 난음리에서 마늘 농사를 짓고 있는 구점숙(왼쪽)·김성 부부. | 서성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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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씨가 말했다. “이러니 우리는 기계로 모(못) 심는다는 거 아닙니꺼. 기계로 하면 거꾸로 심기는 게 많이 있으니까… 대서 마늘은 뿌리가 강하니까 거꾸로 심겨도 얘가 바로 서는데, 남도 마늘은 아니거든요. (농업)기술센터는 자꾸 기계로 심으라는데 우리 삼동면에도 보면 전부 손으로 심지, 기계로 심는 사람 하나도 못 봤거든예.”
그렇다고 기계가 적은 것도 아니다. 최근 3~4년에만 사놓고도 못 쓰는 파종기에다 농약 자동분무기, 고속분무기, 마늘쪽 분리기, 마늘 선별기, 마늘 건조시설 등을 구입했다. 이외에 트랙터 2대, 이앙기, 콤바인도 갖고 있다. 구씨는 “육체적으로 힘들어도 그렇게 힘들다 생각 안 하는데 남편이 ‘기계값 갚아야 한다’고 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는다”고 말했다. “2년 전인가. 트랙터 타이어 터지고, 콤바인 타이어 갈고… 타이어값만 몇백이 들었어예. 이게 뭔 팔자고. 아주 ‘타이어의 해’였어.”
마늘을 심은 논 양옆으로 시금치가 자라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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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화된 남해에서 마늘농사는 줄어드는 추세다. 많은 농가가 8개월 농사인 마늘 대신 3개월 농사인 시금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시금치 농사는 씨앗 뿌리기도 편하고 일도 많지 않단다. 남해, 신안 비금도, 경북 포항 등에서 주로 나는데 한 지역이라도 흉년이 들면 가격이 뛴다. 김씨의 후배 한중봉씨(55)는 이제 마늘보다 시금치를 더 많이 한다.
한씨가 말했다. “종자값도 적게 들고 노동력도 적게 들고 하니까 ‘아 그럼 한번 뿌려보자’ 운에 맡기는 거죠. 시금치 시세가 좋을 때가 있거든요. 운에 맡기는 농사, 다른 지역에 흉년 들길 바라는 농사. 이젠 농사가 비극이야.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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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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