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한씨가 지난달 10일 충남 홍성 장곡면의 양돈장에서 어미돼지와 새끼돼지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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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무덤 위에 세운 농장
이대한씨(43)는 충남 홍성 장곡면에서 돼지 3000마리를 키운다. 지난달 10일 찾은 농장은 멀리서 봐도 눈에 들어올 정도로 규모가 컸다. 농장이라기보다는 중소기업이 더 어울리겠다 싶었다. 직원은 7명, 모두 외국인 노동자다.
농장 입구에서부터 방역복을 입었다. 컨테이너로 만든 간이 소독실에서 10여초간 소독한 후 농장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 앞 주차장 밑에는 2011년 키우던 돼지 1500여마리가 묻혔단다. 2010년 11월부터 2011년 4월까지 가축 전염병인 구제역이 전국에 퍼졌다. 구제역은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의 입과 코, 발굽 등에 물집이 생기는 전염병이다. 한 마리가 구제역에 걸린 게 확인되면 반경 500m~3㎞ 이내에 있는 모두를 살처분했다. 당시 전국 6241개 농가에서 소·돼지·염소·사슴 347만9962마리가 매장됐다.
서울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이씨가 2012년 고향 아버지 농장으로 돌아왔을 때 남은 건 돼지를 묻은 흙무덤과 돼지 사체의 가스를 빼기 위한 파이프 따위였다.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던 아버지는 충격으로 한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양돈 산업은 다른 축산과 달리 일찌감치 규모를 키웠다. 1990년 축산법 개정으로 대기업의 축산업 참여가 금지되기 전까지 삼성그룹은 용인 자연농원(현 에버랜드)에 양돈장을 만들어 돼지를 키웠다. 지금은 흔한 흰색 돼지(랜드레이스·요크셔·두록 교잡종)를 국내 도입한 것도 삼성이었다. 1990년대 중반에는 국산 돼지고기가 일본으로 수출됐다. 1990년 40마리도 안 되던 양돈가구당 돼지 수는 1994년에 110마리, 1997년에 260마리를 넘겼다. 이씨의 아버지도 이때부터 돼지 1000마리를 키웠다. 2010~2011년 최악의 구제역 당시 정부가 구제역 백신을 보급하지 않았던 건 백신 접종으로 국산 돼지고기의 일본 수출길이 막힐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최악의 구제역 사태 이후 백신이 보급됐다. 이씨 농장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 전 직원이 동원돼 돼지에게 구제역 백신을 놓는다. 접종 이후 구제역은 크게 번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구제역은 2023년 충북 청주·증평이 마지막이었다. 백신 접종으로 국산 돼지고기는 대부분 국내용으로 판매된다. 이씨는 백신 접종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 2011년 대비 농장 규모가 2배 커진 만큼 위험도 2배가 됐다. 요즘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 소독을 자주 한다. 야생동물 등에게 전염되는 질병으로 전염력은 약하지만 걸리면 돼지 치사율이 100%다.
엄마돼지와 새끼돼지가 있는 모돈장에 들어갔다. 어미돼지는 스톨 안에서 새끼돼지 10여마리에게 젖을 물렸다. 분만을 기다리는 돼지도 있었다. 예전이라면 분뇨 냄새 등이 날 텐데 냄새 없이 청결했다. 돈사 바닥에는 플라스틱으로 된 슬러리 피트가 깔렸다. 돼지 똥은 슬러리 피트 구멍 아래로 떨어져 처리된다고 했다. 과거에는 많은 축산농가가 가축분뇨를 바다에 버렸다. 한국은 동해와 서해에 하루 수천t씩 축산분뇨를 투기했다. 2006년 해양오염 방지에 관한 런던협약에 따라 2012년 해양투기가 사라졌다. 이씨 농장은 축산분뇨를 액비로 만들어 자연정화시킨다.
이대한씨가 지난달 10일 충남 홍성 장곡면의 양돈장에서 어미돼지와 새끼돼지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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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한씨가 지난달 10일 충남 홍성 장곡면의 양돈장에서 어미돼지와 새끼돼지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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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새끼돼지들은 어미 젖을 먹으며 3주간 지낸다. 생후 7일째에는 거세를 한다. 거세하지 않으면 돼지비계에 누린내(웅취)가 배어 삼겹살에서 냄새가 심하게 난단다. 태어난 지 7개월이면 115㎏ 정도로 큰다.
통상 돼지 1마리를 팔아서 5만원을 남긴다. 2023년 물가를 잡겠다면서 2023년 하반기 돼지고기 4만5000t에 할당관세(일정 기간 일정량의 수입품에 대해 일시적으로 기본 관세율의 40% 범위에서 더하거나 낮추어 부과하는 관세)를 추진했다. 최대 22.5~25%였던 캐나다·멕시코·브라질 돼지고기 관세가 0%가 됐다. 그 여파로 국산 돼지고기값이 하락하면서 양돈농가 돼지 1마리 수익 5만원 선이 무너졌다.
2023년 통계청 농축산물생산비 조사를 보면, 1000마리 미만 돼지를 키우는 농가는 1마리 팔 때마다 3만8000원씩 손해를 입었다. 2000마리 미만 농가는 7000원씩 마이너스가 됐다. 이씨처럼 3000마리 이상 돼지를 키우는 농가들만 1마리 팔아 3만9000원을 건졌다.
가장 큰 부담은 사료비다. 사육비의 70%가 사료값으로 나간다. 옥수수와 대두박(콩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을 먹이는데 전량 수입한다. 전쟁, 기후, 환율, 운송에 따라 사료값이 들쑥날쑥하다. 이씨는 “한 달에 150t을 먹이는데 예전에는 5000만원 정도 들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올라 지금은 1억원 가까이 쓴다”고 했다.
많은 농가가 사료를 외상으로 구입한다. 경영 악화로 사료값을 갚지 못하면 사료회사 계열사의 위탁농장으로 들어간다. 대기업들은 사료회사 같은 전후방 산업을 함께 영위하면서 모돈 농장을 운영한다. 하림그룹의 양돈 자회사 선진과 팜스코 등이 그렇다. 새끼돼지와 사료 등을 보내주면 농가는 키우기만 하면서 사료값을 갚는다. 이씨의 양돈 선배 김영찬씨(53)는 “종살이나 다름없다”고 표현했다.
이대한씨가 지난달 10일 충남 홍성 장곡면 자신의 양돈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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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까지만 해도 국산 돼지고기는 냉장 고기, 수입 돼지고기는 냉동 고기로 통했다. 칠레·유럽연합(EU)·미국·캐나다 등과의 동시다발적 FTA로 대부분의 돼지고기 관세가 0%가 되면서 이제는 냉장 돼지고기가 수입된다. 냉동이지만 스페인산 이베리코 돼지고기는 웬만한 국산 냉장 돼지고기보다 더 비싸다. 제주 흑돼지와 겨룰 정도다.
이씨는 “규모와 생산성을 중시한 게 한계가 온 것 같다. 이제는 고품질 고기로 승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도 무항생제 돼지를 키웠다. 급식으로 들어가는 일부 물량 외에는 판로를 찾지 못해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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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기자 just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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