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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수)

‘존속살해’ 무기수 김신혜, 재심서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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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24년 만에… 곧바로 석방

2000년 친부 살해 혐의 무기징역

살해 자백 후 재판서 ‘무죄’ 주장

반인권적 경찰 수사 인정 재심 개시

법원 “증거 부족” 김씨 손들어줘

복역중 무기수 재심서 무죄는 처음

金 “잘못 바로잡는데 너무 오래 걸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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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제를 탄 술을 먹여 친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신혜(47·사진)씨가 사건 발생 24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국내서 복역 중인 무기수가 재심에서 무죄를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광주지법 해남지원 형사1부(지원장 박현수)는 6일 존속살해 사건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가 구속된 지 24년, 재심 개시가 결정된 지 9년여 만이다. 이날 판결 직후 출소한 김씨는 취재진에게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것이 수십년 걸려야 하는 일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씨 사건은 2000년 3월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남 완도군 완도읍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김씨의 아버지(당시 52세)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수사 중에 “조카가 수면제를 먹여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제보를 받고 당시 23세인 김씨를 긴급체포했다.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수면제를 양주에 타 아버지에게 ‘간에 좋은 약’이라고 속이고 먹였다”고 자백했다. 김씨는 당시 아버지가 자신과 여동생을 성추행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재판 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는 고모부의 말에 자신이 대신 감옥에 갈 생각으로 거짓 자백했다”고 무죄를 주장했다. 김씨의 무죄 주장에 대해 대법원은 2001년 3월 1, 2심과 마찬가지로 “김씨가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김씨 사건은 2015년 재심이 결정됐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015년 1월 경찰의 반인권적 수사가 확인됐다며 재심을 청구하고 광주지법 해남지원은 그해 11월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김씨에 대한 변호는 ‘재심 전문 변호사’인 박준영 변호사가 맡았다.

재심의 주된 쟁점은 범행 동기와 자수 경위, 수면제 등 증거, 알리바이, 강압·불법 수사 여부 등이었다. 재심 재판부는 이날 검사가 김씨 유죄 증명하기 위해 제출한 주요 증거 상당 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김씨의 범행 진술 경위로 볼 때 허위로 자백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경찰이 압수수색해 확보한 증거가 모두 영장과 적법절차 없이 수집한 위법수집 증거에 해당한다고 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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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수면제의 복용으로 김씨의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부검 당시 피해자의 위장 내에는 가루든 알약이든 많은 약을 복용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보험설계사 자격증이 있는 김씨가 보험계약 체결 2년 이내에 보험사고가 발생할 경우 보험금을 지급받기가 쉽지 않았을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살해 동기로 지목된 피해자의 성추행 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시체 유기 가능 시간 직전 김씨는 친구들에게 전화해 만나자고 했는데 이는 계획적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동생들을 이용해 허위 진술을 교사하고 김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는 등 의심스러운 점이 많지만, 이런 사정만으로는 유죄로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씨 변호인 박 변호사는 “24년간 무죄를 주장해온 당사자의 진실의 힘이 무죄의 강력한 증거”라며 “이 판결이 김씨와 그의 동생들이 삶을 회복하는 데 큰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재판은 김씨에게 최초 무기징역이 선고된 1심에 대한 재심으로, 검찰이 무죄에 불복해 항소하면 다시 2심, 상고심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

해남=한현묵·김선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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