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 |
"자, 눈물 닦고 여기 지장 찍어. 다음 달까지 못 갚으면...". 드라마 '오징어게임'에는 주인공 성기훈(이정재)이 온몸에 문신을 두른 조폭에게 폭행당하고 신체 포기각서를 쓰는 장면이 나온다. 과거에는 이처럼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사채업자 모습이 흔했지만 최근 불법 사채업자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더 은밀하고 악랄한 방식으로 우리 곁에 다가온다.
요즘 불법 사채업자는 온라인 익명성을 이용해 급전이 필요한 취약계층을 유인한다. 이들의 궁박한 사정을 악용해 수백~수천%에 달하는 살인적 이자를 요구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할 때 발생한다. 이들은 미리 확보한 가족, 직장동료 등 연락처로 채무자가 차용증을 들고 있는 사진이나 나체사진을 전송해 피해자의 사회적 관계를 단절시키고 인간 존엄성마저 무너뜨려 극단적인 상황까지 내몬다.
이렇게 온라인에서 활개치는 얼굴없는 불법 사채업자들은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검거가 어렵다. 피해자 사후구제도 쉽지 않다. 금융소비자 스스로 불법사채 덫에 걸리지 않도록 사전예방과 대응법을 숙지해 적극 대응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급전이 필요하지만 금융권 대출이 어렵다면 서민금융진흥원의 '서민금융 잇다' 앱으로 소액생계비 대출 등 정책금융상품을 이용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대부업체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면 최근 합법업체로 가장하거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접근하는 사례가 많으므로 반드시 금융감독원의 '등록 대부업체 통합조회'에서 정식 등록 업체인지 확인해야 한다. 특히 대부계약 과정에서 지인 연락처나 사진을 요구받는다면 불법추심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즉시 상담을 중단해야 한다.
이미 불법사채를 이용했어도 연 20% 초과 이자는 법적으로 지급할 의무가 없다. 초과 지급한 이자는 반환을 청구할 수 있으며 채무자대리인 지원을 통해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다. 하반기부터 시행될 대부업법 개정안에 따라 불법 사채업자에게는 이자 자체를 지급하지 않아도 되고, 나아가 최고금리를 현저히 초과하는 대부계약은 원금과 이자 모두 무효화 될 수 있다. 이에 맞춰 금감원도 새로운 피해구제 제도를 적극 홍보하고, 피해신고·상담으로 서민금융상품 연계 등 피해자 지원을 강화할 예정이다. 불법사채 피해로 고통받고 있다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경찰(112) 또는 금감원(1332)에 신고 및 상담을 요청해야 한다.
최근 불법사금융 이용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급전이 필요해 어쩔 수 없이 불법사금융을 이용한 후 피해구제 제도를 알지 못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불법사금융은 단순히 경제적 피해를 넘어 개인의 존엄과 삶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사회 문제이므로 정부와 금융당국 노력뿐 아니라 주변 이웃과 사회 구성원의 따뜻한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새해에는 불법사채 피해로 인한 안타까운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어려움에 처한 불법사금융 이용자도 불법추심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따뜻하고 안전한 금융환경이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
김미영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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