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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문화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많은 이들은 ‘한국적임(K-ness)’이 무엇인지에 대해 각자 자신만의 의견을 제시하곤 한다. 한이나 정 같은 전통의 가치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도 많이 있지만, 나는 한국적이라는 것은 단일하게 정형화되지 않는 어떤 에너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 에너지는 현대 한국의 역사적 장면들에서 한국 내부의 서로 다른 다양한 것이 부딪치며 뒤섞이고, 또 그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지난해 12월28일 영하의 바람이 부는 광화문 광장에서는 한국적이면서도 힙하기 그지없는 음악과 춤이 펼쳐졌다. 밴드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무대였다. 서울 홍보 영상에서 ‘범 내려온다’라는 곡으로 유명한 이 밴드의 음악은 판소리와 록의 결합이 특징적이고, 무용수들은 전통 의상의 테마들이 적용된 독특한 의상을 입고 강렬하고 중독적인 현대무용을 선보였다. 이들의 무대는 광장을 뜨겁게 달궜다. 이 순간 정치적 집회 현장은 흡사 아방가르드한 종합 예술이 펼쳐지는 무대로 바뀐 듯했다. 나는 이 순간이 한국적임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주는 중요한 역사적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얼핏 어울리지 않을 듯 여겨지는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 한국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들의 이질적 조합, 다시 말해 ‘혼종성’은 이 밴드와 무용수들의 음악, 무대, 퍼포먼스 모두에서 매력적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이런 전위적 예술이 광장에서 정치와 만나는 순간에는 앞서 말한 혼종성에 또 다른 혼종성이 포개어지며 강렬하고 마력적인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여기서 이날치 밴드 무대의 혼종성은 단지 그들에게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대중문화, 아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특징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이 이질적인 것들이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혼종적 에너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한 편에서는 화려한 케이팝 가수들의 무대가 눈을 사로잡고, 또 다른 편에서는 무도한 정치적 폭력에 연대하며 싸우는 시민들이 있고, 또 다른 한국에는 시민들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진 역사가 흐르고 있으며, 그런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진지하고 비판적인 영화나 드라마뿐만 아니라 달콤한 로맨스 가득한 드라마가 관객들을 녹여내는 그런 혼종성 그리고 그 다이내믹한 에너지 말이다. 정치적 투쟁의 역사가 한국 문화의 중요한 뿌리임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이젠 멋진 공연은 광장이 아닌 공연장에서 보고 싶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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