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인재 여부를 밝혀야 한다. 만약 인재 요인이 있다면, 충분하고 철저한 형사·민사적 책임 추궁이 뒤따라야만 한다. 그래야만 인재에 의한 대형 참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 이런 철저한 형사·민사적 책임을 우리 법체계가 물을 수 없다면, 법부터 바꿔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이에 미온적이면, 이들부터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2024년은 한국 엘리트들의 민낯을 볼 수 있는 한 해였다. 어느 영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나쁜 사람(the bad)’이거나 ‘추한 사람(the ugly)’이었다. 국민을 배반하고 경제를 나락으로 내몬 친위쿠테타를 주도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비롯한 가담자들은 두말할 것 없이 나쁜 사람이다.
문제는 이런 나쁜 사람이 ‘자신이 믿지 않는’ 공정한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국정을 일차적으로 책임지는 대통령을 뽑는데, 실상 후보자의 생각과 비전도 모르고 뽑은 것이다. 지나치게 짧은 후보 선출과 공식 선거 기간으로 인해, 후보자 간 상호검증이나 언론과 유권자에 의한 검증이 실효성을 가지기 어렵고, 결국 연출된 후보자의 이미지가 당선에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된다. 후보자 선출과 공식 선거 기간의 확대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행정처가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 후보를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할 수 있고 임명해야 한다는 해석을 사실상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고 스스로 탄핵되는 길을 선택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추한 사람이다. 민주당 계열 정부와 국민의힘 계열 정부에서 경제수석, 경제부총리, 두 번의 국무총리를 역임한 사람으로서 헌법재판관 후보 임명 거부가 불러올 경제적 충격을 몰랐을 리 없다. 무책임한 것인지 일신의 이익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직업 공무원 전체 얼굴에 먹칠을 했다. 경제관료인 최상목 권한대행이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나, 원칙 없는 취사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기회주의적 행태가 읽힌다.
대통령 계엄은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헌법재판관 임명은 반대하는 국민의힘 지도부 역시 나쁜 사람이거나 추한 사람이다. 대통령 탄핵심판을 신속하게 마무리하고 과도기적 상황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나마 집권 여당으로서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지만, 다음 총선 때 이해득실만 계산하는 이기적 행위에 매몰되어 있다. 얼굴을 두껍게 하고 다녀야 한다는 막말마저 들린다.
국민의힘이나 윤 대통령이 극성 지지자에게만 호소하는 이런 전략이 어느 정도 통하는 것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재판 대응 전략을 물고 늘어지고 또 조기 대선이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내려지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선동 때문이다. 이런 선동을 막고 정국을 안정시킬 열쇠는 이 대표가 쥐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될 경우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이 대표는 우리 정치에 드문 ‘선한 사람(the good)’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단을 못한다면, 권력욕에 찌든 흔해 빠진 추한 정치인이 될 뿐이다.
정치 엘리트만 문제인 것도 아니었다. 삼성전자 주가가 2024년 7월10일에 8만7800원을 찍고 지속적으로 하락해 5만원대 초중반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HBM 부문에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에 뒤졌고, 수십조원을 투자한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부문은 부진한 결과이다. 이대로 간다면, 삼성전자는 길어야 10년 안에 고만고만한 전자회사로 쇠락할 것이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이재용 회장은 회사의 미래와 대응 전략을 설명하는 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대통령 해외 순방이나 지방 일정을 수행한 열의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경제 엘리트인 이재용 회장 역시 추한 사람일 뿐이다.
광장에서 촛불과 응원봉을 든 국민들의 외침이 이 패거리에서 저 패거리로 정권이 옮겨가는 수단으로 소모된다면, 대한민국의 위기는 극복될 수 없다. 광장의 외침이 부패한 한국의 정치 및 경제 엘리트를 물갈이할 수 있는 제도 혁명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위기의 대한민국은 ‘소수의 선한 사람(a few good men)’을 소환하고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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