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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금)

생존 위해 광고에 실린 유대인 아이[책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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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친절한 분을 찾습니다
줄리언 보저 | 김재성 옮김
뮤진트리 | 420쪽 | 2만3000원

‘중학교를 졸업하고 영어 지식을 갖춘 14세 남자아이’ ‘품행 방정하고 가사 일체를 거들 수 있는 유대 상인의 외동딸’ ‘튼튼하고 겸손한 빈 소년’.

1938년 영국 일간 ‘가디언’의 전신인 ‘맨체스터 가디언’에는 자기 자녀를 영국에 보내려는 이들이 낸 광고가 여럿 실렸다.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뒤 오스트리아 거주 유대인들에 대한 탄압이 본격화되자, 자식이라도 다른 나라로 탈출시키려는 유대인 부모들이 영국 신문에 광고를 낸 것이다.

저자 줄리언 보저의 아버지 로베르트 보거(보비)도 이 광고에 소개된 어린이였다. 보비는 ‘훌륭한 빈 가문 출신의 총명한 11세 남자아이’로 소개됐다. 가디언 세계 문제 편집자로 일하는 저자는 아버지의 자살 뒤 뒷정리를 하다 흐릿하게만 알았던 아버지의 과거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된다.

보비는 신문광고를 본 영국 웨일스에 사는 ‘친절한 분’, 낸스와 레주 방글리 부부의 도움을 받아 영국에 왔다. 어머니와 함께 왔지만 비자 문제로 같이 살 수는 없었다. 아내와 아들을 보내는 데 돈을 다 쓴 아버지는 한참 뒤에야 합류했다. 공부를 잘했던 보비는 영국 사회에 필사적으로 적응했다.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마음의 평화만큼은 끝내 찾지 못했다. 아버지가 ‘삶과 직업에서의 실패와 좌절’ 때문에 무너졌다고 생각했던 저자는, 당신이 살아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45년 전의 나치 경험이 결국 아버지를 무너뜨렸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는 당시 아버지와 함께 광고에 실린 아이들에 대해서도 추적한다. 상당수는 행방을 찾을 수 없거나 이미 세상을 뜬 뒤였지만, 저자는 어렵게 연락이 닿은 그 자녀들로부터 그들의 부모도 보비와 비슷하게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렸다는 증언을 받는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취재하면서 역사는 ‘여러 세기가 거쳐간 다음 체에 남는 것’이라던 힐러리 만텔의 말이 더없이 수긍되었다.” 저자명은 영국식 발음을 따라 ‘보저’로, 저자의 아버지 이름은 독일식 발음대로 ‘보거’로 표기됐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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