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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토)

새해 첫날 1500명 봉사... 무안은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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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새해 첫날인 1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는 ‘제주항공 참사’ 유족을 돕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자원봉사자 1500여 명이 모였다. 유족에게 따뜻한 쌍화탕과 커피를 건네고 국과 밥을 지어 배달했다.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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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잠이 안 와서 새벽에 달려왔습니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요.”

1일 오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이요환(43)씨는 김밥과 컵라면을 안고는 대합실 곳곳을 뛰어다녔다. 그는 이날 아침 경기 화성에서 차를 몰고 왔다고 했다.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한 무안공항에는 새해 첫날 전국 곳곳에서 자원봉사자가 몰렸다. 이날 하루 동안 무안공항을 찾은 자원봉사자는 1500여 명. 전남도 관계자는 “전날 1100여 명이 온 데 이어 오늘은 1500여 명이 공항을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고 했다.

전남 지역의 자원봉사 단체는 이날 떡국 3500인분을 끓였다.

정한교(63)씨는 260㎞ 떨어진 대구에서 곰탕 3000그릇을 차에 싣고 왔다고 했다. 정씨는 짜장면을 만들어 독거노인 등에게 나눠주는 봉사단을 이끌고 있다. 이번에는 곰탕을 끓여 왔다. 정씨는 “참사 소식을 듣고 솥에 물부터 끓였다”며 “몸과 마음이 지친 유족들에겐 짜장면보다 뜨거운 곰탕이 최고”라고 했다.

요리 명인 안유성씨는 전복죽 1000인분을 만들어 유족에게 건넸다. 지난달 30일에는 손수 싼 김밥 200줄을 갖고 왔다. 그는 “가슴이 먹먹해서 또 나왔다”며 “유족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치유가 된다면 계속 봉사하겠다”고 했다.

유족들에게 순두부국을 나눠주던 자원봉사자 정주아(65)씨는 “유족분들이 한 번에 많이 드시질 못한다”며 “한입 먹고 울고, 한입 먹고 또 우는데 마음이 너무 아파 공항을 떠날 수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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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찾은 유족들 '통곡의 차례상' - 1일 전남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현장을 찾은 유족들이 항공기 잔해 앞에 상을 차리고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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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돋이 행사 대신 무안공항을 찾아 봉사한 가족들도 보였다. 광주광역시에서 온 강창우(53)씨네 가족 4명은 대합실 곳곳을 청소하고 있었다. 강씨는 “매년 새해 첫날마다 해돋이를 보러 갔는데 올해는 무안에 왔다”며 “아이들도 흔쾌히 동의해 온 가족이 봉사하고 있다. 오길 참 잘했다”고 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사고 첫날인 29일 공항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유족을 위해 대합실에 텐트 200여 개를 설치했다. 4인 가족이 들어가 쉴 수 있는 크기다. 치약, 생수, 담요 등 생필품도 박스째 준비해 왔다.

구세군은 공항 뒷마당에 ‘밥차’를 차렸다. 끼니 때마다 큰 솥에 330인분씩 밥을 지어 텐트마다 배달한다. 정용혁 구세군 긴급구호팀장은 “따뜻한 밥과 국물을 드리고 싶어서 차렸다”며 “유족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익명으로 생수나 컵라면 등을 보낸 사람도 많았다. 전남도 관계자는 “오늘만 해도 생수, 컵라면 등 10박스가 공항에 배달됐다”며 “‘얼굴 없는 천사’가 무안공항에도 찾아온 것 같다”고 했다.

공항 2층 카페에는 ‘봉사자, 유가족분들께 아메리카노와 카페 라테를 드립니다’는 안내문이 내걸렸다. 카페 사장 A씨는 “손님 한 분이 아메리카노 100잔과 라테 100잔을 미리 결제했다”며 “지난달 30일부터 ‘선결제’ 하고 싶다는 손님이 릴레이하듯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1층 식당은 아예 무료로 운영 중이다. 식당 사장 임용범(41)씨는 “선결제를 받은 건 하루 뿐이지만, 유족들에게 돈을 받기 미안해서 꼬막비빔밥, 김치찌개, 추어탕, 나주곰탕 등을 무료로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공항 곳곳에는 QR 코드가 붙었다.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비누, 칫솔 등을 어디서 받을 수 있는지 알려준다. 유족들이 손쉽게 생필품을 갖다 쓸 수 있도록 전남자원봉사센터가 아이디어를 냈다.

무안공항 관계자는 “손님이 없어 텅 비었던 공항이 새해 첫날부터 전국에서 몰려온 자원봉사자들로 따뜻해졌다”며 “그래도 우리나라가 아직은 살 만하구나 싶다”고 했다.

공항 주변 톱머리해수욕장의 펜션들도 ‘유가족 무상 숙소 제공’ 현수막을 걸고 동참했다.

[무안=김정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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