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국회 본회의장.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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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연일 개헌논의에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특히 새로 출범한 ‘권영세 비대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투톱 체제는 개헌을 당의 최우선 이슈로 띄우겠다는 입장입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의장이 중심이 돼서 헌법 개정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여권 대선주자들도 개헌 필요성을 제기하며 조기 대선 채비에 나섰습니다. 대선 출마를 고민 중이라고 밝힌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정치 시스템 개편이 시대적 과제가 됐다”고 개헌 필요성을 강조하며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대신 의회 해산 권한을 주고, 이에 상응해 국회에는 내각 불신임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밝혔습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26일 에스비에스(SBS) 라디오에 출연해 “87년 체제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며 “이럴 때야말로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불리는 이 헌법을 바꾸고, 가장 기본이 되는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반드시 필수적”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그래야만 우리가 이 악마 같은 악순환 고리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현행 소선거구제 대신 사표를 줄이고, 다당구도를 낳는 중대선거구제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22일 엠비엔(MBN)에 출연해 “조기 대선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개헌 논의는 굉장히 진지하게 지금 해 볼 필요가 있다. 1987년 체제가 완전히 무너졌다”며 “(대통령) 4년 중임으로 개헌해서 5년 단임제의 폐해를 시정하되 (대통령이) 폭정으로 가지 못하도록 감시·견제하는 장치를 헌법 안에 많이 도입하자”고 했습니다. 유 전 의원은 1명만 뽑아 다수의 사표가 발생하는 현행 소선거구제 대신 선거구마다 2명 이상 뽑는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는 입장입니다.
야당에서는 반길 수 없는 분위기입니다. 개헌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칫 개헌 논의가 계엄·탄핵 국면에서 집중해야 할 논의들을 분산하고, 윤 대통령 탄핵 동력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은 헌법재판관 임명과 내란 특검법은 거부하는 등 윤 대통령의 기본적인 탄핵·수사 절차조차 협조하지 않고 시간을 끌면서, 그다음 순서인 개헌을 거론하는 게 맞느냐는 것입니다.
비상계엄 전부터 정국 해법으로 개헌을 요구해온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6일 시비에스(CBS) 라디오에서 “비상계엄 전의 대한민국과 비상계엄 후의 대한민국은 구분돼야 한다”며 “윤석열 대통령을 긴급 체포하고, 탄핵 심판을 빨리하는 게 급선무인데 갑자기 개헌론이 와서 확 와서 움직인다. 지금 개헌을 꺼내는 건 일종의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조국혁신당도 창당 초기부터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해왔지만, 국민의힘에서 말하는 개헌과는 다른 내용이며, 지금 상황에서 개헌을 추진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5년 단임이든 4년 중임이든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권력을 분산하는 방향으로 개헌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도 “지금 개헌 얘기가 나오는 건 시간 끌기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사실 그동안 개헌 논의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이 개헌을 시도했습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김종필 총재는 3당 합당을 하며 내각제 개헌 합의 각서를 썼습니다. 1997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도 내각제 개헌을 약속했습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은 4년 연임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습니다.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국회에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개헌하면 늦지 않다”고 했습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을 덮기 위해 개헌을 제의했습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안을 실제로 발의해 국회에서 표결에 부쳤지만 투표 불성립 처리된 뒤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습니다.
이처럼 역대 대통령의 개헌 시도가 모두 실패한 건 정치적 국면 전환이나 정계개편을 추진하며 개헌을 끼워 넣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히 상대 정당이나 진영이 호응하지 않으면서 논의는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12·3 내란 사태 이후 민심은 ‘개헌’에 있지 않습니다. 국민 다수가 바라는 건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과 형사처벌이 신속하게 이뤄져 계엄 정국을 빠르게 종식하고, 헌정 질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국민의 염원보다 정치적 이해가 걸린 제도 개선 논의가 앞설 수는 없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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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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