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30일 공사가 진행 중인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일대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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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트럼프 2기의 고립주의가 현실화될 경우, 반도체와 지역안보가 결합된 복합 사안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예상된다. 미 싱크탱크인 후버 연구소는 반도체 밸류체인의 지정학적 역학 구도를 미국-중국-대만 세 국가가 이루는 이른바 칩-트라이앵글(Silicon triangle)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후버 연구소는 미국의 대만, 중국 반도체 제조 의존도가 과하다는 것과 대만의 지정학적 안정성이 핵심 변수가 된다는 것, 그리고 중국에 대한 수출 규제가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후버 연구소뿐만 아니라 또다른 싱크탱크인 랜드 연구소 역시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대만의 기술안보적 환경 변동이 전세계 반도체 밸류체인에 미치는 영향을 ‘정치 게임’(Policy game)으로 분석하며, 대만에 의존하는 첨단 반도체 생산이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될 경우 한국과 미국이 받을 영향이 지대하다고 분석했다. 이는 트럼프 2기 정부에서 동아시아 지역에 쏠린 첨단 반도체 제조의 과도한 의존도를 안보적 차원에서 완화해야 한다는 정책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미국이 흔드는 동아시아 반도체 역학
트럼프 정부가 과도한 의존도를 완화시킬 수 있는 수단은 기본적으로 첨단 반도체 제조의 국내 복귀 정책을 지속하는 것이다. 미 반도체산업협회 전망에 따르면, 2032년까지 미국의 선단 공정 기반 로직반도체 제조 비중은 국내 복귀 정책에 힘입어 2022년 1% 미만에서 2032년 25% 이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또한 10나노 이상 ‘미들텍’ 혹은 레거시(전통적인 범용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제조) 공정 기반 반도체 제조 비중 역시 2022년 9%에서 2023년 11%로 확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디램(DRAM) 역시 2022년 2%에서 2032년 5%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렇게 늘어나는 미국 내 반도체 생산 비중은 동아시아 지역, 특히 대만과 한국에서의 생산 비중 축소를 의미한다. 대만의 선단 공정 로직반도체 제조 비중은 2022년 75%에서 2032년 55%로 대폭 감소되며, 레거시 공정 기반 반도체 제조 비중 역시 2022년 35%에서 2032년 25%로 축소가 예상된다.
또한 중국 파운드리 팹의 확장도 전세계 반도체 제조 역학 구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중국의 반도체 공정 장비 자급화와 내재화 정책에 따라, 2022년 중국의 레거시 파운드리 공정 기반 반도체 생산 비중은 30% 내외였지만, 2032년에는 40%까지 확장된다. 이와 더불어 10나노 이하급 선단 공정에서도 중국의 비중은 2022년 1%에서 2032년 3%까지 성장이 예상된다.
2022∼2032년 10년간 이뤄질 급격한 전세계 첨단 반도체 생산 비중 변동은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 안보 관점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는 미국과 중국에서의 반도체 생산 비중 확대, 대만에 쏠린 첨단 반도체 생산 비중 축소가 동반되는 경향과 맞물린다. 예를 들어 현재는 첨단 반도체 생산에서 대만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에 대만발 반도체 공급망 불안정성을 제어하기 위해서라도 미국과 동맹국은 대만 주변의 안보를 위한 선제 조처를 취할 수 있다. 대만에 대한 첨단 무기 수출 확대나 서태평양의 미 해군 전단 배치 확대 등이다.
미국 안보 전략가들 사이에서도 대만 문제에 대한 전략적 입장 의견이 나뉜다. 그러나 대만에 의존하는 첨단 반도체, 특히 인공지능(AI)과 연계되는 반도체 확보라는 명분은 미국 입장에서는 전략적 모호성보다 전략적 명확성이 더 이득이 된다는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 전략적 명확성은 대만뿐만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 같은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자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주요국의 이익을 보호하고 미국 주도의 반도체 경제안보 협력 시스템의 기반 형성에 중요하다.
트럼프는 대만의 ‘실리콘방패’를 인정할까
그러나 전략적 모호성과 명확성 사이의 균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바뀔 것에 주목해야 한다. 2030년대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내재화가 더 진척될 경우, 미국의 대만 첨단 반도체 생산 의존도는 완화된다. 또한 티에스엠시(TSMC)의 대안이 될 수 있는 한국(삼성전자), 일본(래피더스), 그리고 미국 팹(인텔, 삼성전자, 티에스엠시)에 인공지능 반도체는 물론 자율주행차, 통신, 국방 등에 쓰이는 고부가가치 반도체 물량을 우선적으로 배정할 수도 있다. 이는 양안 위급 사태 때 미국으로 하여금 전략적 명확성을 취할 동기를 약하게 만들 수 있다.
대만도 첨단 반도체 공급망에서 누리는 독점적 지위의 약화가 지정학적 중요성 축소로 이어져, 결국 국가 안보 위기로 연결될 가능성에 주목한다. 대만 정부는 전통적으로 첨단 반도체 핵심 공정은 해외로 분산시키지 않는 ‘실리콘방패’ 전략을 취해왔다. 이는 대만 반도체 제조 의존도 완화라는 트럼프 정부의 대외 정책과 충돌한다. 트럼프 2기 정부는 미국 내 티에스엠시의 파운드리 팹에 대한 투자 확대와 더불어 기술적 독립성 확보를 위해 장비와 부품, 설계 업체들과 이루는 공급망 자체를 미국 내에서 재구축하도록 대만 정부에 더 강하게 요구할 수 있다. 이러한 요구가 통하지 않을 경우 트럼프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대만의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군사 자산 배치나 공유 제한 조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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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중국도 반도체 내재화 정책을 더욱 강화해 공정 장비, 메모리반도체, 설계 프로그램, 부품 등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투자를 확대할 것이다. 중국이 추진하는 반도체 산업 투자는 대부분 범용 반도체와 레거시 로직반도체 양산 기반 확충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투자는 반도체 초과 공급을 야기하고 이로 인해 대만, 한국, 미국의 파운드리 업체의 원가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또 중국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이 성장하면서 반도체 시장에 치킨게임을 유발하고, 3∼5위권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의 점유율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미국이 계획하는 대중 반도체 기술 및 무역 제재 정책이 선단 공정 반도체에서 중국에 추가 비용을 부과하는 효과뿐만 아니라, 미국 반도체 업체들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중국의 반도체 내재화율이 올라갈 경우, 중국은 양안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 또 미국이 전략적 모호성으로 기운다면 중국이 무력행사를 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한국 공적 파운드리 운영 추진을
한국 반도체 산업이 취해야 할 중장기 전략은 명확하다. 우선적으로 반도체 제조업에서의 현재 경쟁력을 기반으로 반도체 생태계의 다양성을 강화하면서 메모리반도체 일변도 중심의 무게를 분산하는 것이다. 특히 전공정보다 후공정에서의 수율 경쟁력이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첨단 패키징 공정 기술개발 투자 및 전세계 시장 점유율 확대를 통해 주문형 고성능 반도체 제조의 경쟁력을 다각도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 반도체와 더불어 고성능 시스템반도체 제조의 경쟁력을 결정할 수 있는 주요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에 산업계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의 충분한 연구개발 투자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국제정치적 관점에서는 미국이 최근 강화한 반도체 및 관련 기술 수출 규제에 대한 다자간 수출 통제 기구의 성격을 분석하고, 국내 반도체 업체들에 끼칠 영향을 분석해야 한다. 첨단 반도체의 로드맵과 표준 제정에 선제적으로 참여해 한국 반도체 산업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포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기술 개발의 방향 설정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기업) 생태계 정착을 위해 정부의 공적 자금이 일부 투입된 공적 레거시 파운드리의 설치 운영 방안 역시 중장기적으로 탐색 및 추진될 수 있어야 한다.
트럼프 2기 동안 반도체 산업 변동은 주로 인공지능 반도체가 주도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미국의 인공지능 관련 팹리스 업체들과의 생태계 구성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차세대 인공지능 반도체 기술 주도권에 동참하는 것이다. 기술적 경쟁력 확보와 생태계 변화에 대응하며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은 트럼프 2기뿐만 아니라, 앞으로 한국 반도체가 계속 가야 할 전략이 되어야 한다.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화학공학부, 반도체융합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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