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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토)

케네디 이후의 60년 전통을 깨려는 트럼프의 이상한 심리 [뉴스에 안 나오는 美 대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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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트럼프와 해리스의 ‘건곤일척’ 대결의 흐름을 미국 내부의 고유한 시각과 키워드로 점검한다.

<19> 미국 대통령의 자아 정체성
한국일보

왼쪽 사진부터 재클린 케네디가 색상을 선택한 미국 대통령 전용기(미국 국방부 자료),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재클린 케네디(빨간 원)가 대통령 전용기에서 내려 영접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케네디 도서관 제공),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 전용기 색상을 자신의 개인 전용기에 맞춰 바꾸려는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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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만든 대통령의 자아 발현
오바마, 트럼프도 기록관 준비중
닉슨 도서관은 한국의 참고 대상

필자가 25년간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겪었던 가장 인상적 만찬 중 하나는 2003년 우연히 옆 테이블 두 남성과 이뤄진 합석이었다. 두 분 중 한 분은 베트남전에도 참전한 예비역 해군 군인 로버트 앤더슨이었다. 당시 식사는 백악관 근처에서 이뤄졌는데, 앤더슨은 그날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났다고 말했다. 화가로도 활동 중이던 앤더슨은 “예일대 뉴욕 동문회가 의뢰한 부시 대통령 초상화를 (대통령의 동의를 얻기 위해) 백악관에서 미리 공개하는 행사를 가졌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날 저녁 식당에 함께 온 이는 예일대 뉴욕 동문회장이었다. 부시 대통령과 그의 아버지 조지 H. 부시 대통령 모두 예일대 출신인데, 앤더슨은 아들 부시하고 동창이었다. 대화는 매우 흥미로웠지만, 20대 중반이던 필자로서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고 9.11테러 2년도 안 된 시점에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초상화를 점검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독특한 자아 정체성을 드러내는 건 새로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자아를 드러내면 뉴스가 되는데, 그 자아가 겸손이라면 역사를 이룬다. 대통령이 겸손을 드러내는 건 드문데, 최초이자 가장 위대한 겸손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마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것이다. 당시 미국 헌법에는 종신 대통령직을 막을 규정이 없었지만, 미련 없이 물러났다. 그의 후임자들도 중임 관례를 따랐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1933~1945)만 4번의 임기를 지냈다. 루스벨트 사망 후에야 대통령 임기를 2기로 제한하는 헌법 수정이 있었다.

미국 대통령의 자아와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공간이 대통령 도서관이다. 허버트 후버(1929~1933) 이후, 연방기록보관소에서 관리하는 16개 대통령 도서관이 설립됐다. 해당 대통령의 관련 문서, 기록 및 기타 역사적 자료를 보관하려는 목적이다. 한국 언론인이기도 한 필자의 친구는 16곳을 모두 방문한 뒤 “대통령 가족 입김이 크기 때문인지 약점이 덜 부각된 측면도 있었고, 생존 대통령의 도서관은 재임 중 논란이 된 약점을 다루는 데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워터게이트 사건을 사실 위주로 보여준 닉슨 기록관은 유달리 하야와 탄핵이 많은 한국에서 향후 대통령 박물관을 만드는 데 참고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퇴임 후 8년이 지나도록 시카고에 대통령 도서관과 박물관을 개관하지 않고 있다. 2026년 봄 예정이지만, 오바마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껄끄러운 관계를 고려할 때,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 말까지 지연될 수도 있다. 트럼프도 지난 4년 대통령 도서관과 박물관에 신경 쓰지 않았다. ABC뉴스와의 명예훼손 소송을 해결하며, ABC에서 받을 1,500만 달러를 미래 대통령 도서관에 기부키로 했다는 점이 알려진 뒤에야 트럼프도 대통령 도서관을 계획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물론 트럼프와 조 바이든 모두 고령이어서(트럼프는 2기 종료 시 82세, 바이든은 현재 82세) 대규모 프로젝트를 생전에 마무리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트럼프가 대통령 전용기 색상을 바꾸려는 것도 ‘자아 정체성’ 발휘로 해석할 수 있다. 트럼프는 새로 주문한 대통령 전용기 색상을 자신의 개인 전용기와 같은 짙은 빨강, 흰색, 파란색으로 꾸미려 하고 있다. 이는 재클린 케네디가 선택한 이후, 60년 넘게 이어진 흰색과 청록색 조합의 ‘하늘의 백악관’ 컬러를 바꾸려는 시도다. 재임 중 새로운 도색 작업이 이뤄질 수도 있지만,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에 따르면 해당 기체는 두 번째 임기 중 인도되지 않을 전망이다. 당초의 2024년 납품에서 5년가량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수도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는 것만큼 큰 영예는 없다. 이는 조지 워싱턴이 얻은 영예이며, 미국은 지도자 이름을 딴 수도를 가진 전 세계 세 나라 중 하나다. 사실 워싱턴은 미국 수도 이름을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공유한다. 흔히 ‘워싱턴’으로 불리는 도시의 공식 이름은 '워싱턴, 디스트릭트 오브 컬럼비아'(Washington, District of Columbia)이다. 1800년 11월 미 의회가 수도 이름을 워싱턴으로 정했을 때, 워싱턴(1732~1799)은 이미 고인이었다. 영국 봉건 군주의 폭정에 저항해 독립한 식민지가 그 나라의 첫 번째 대통령 이름을 수도에 붙인 역사의 아이러니를 워싱턴도 직접 목격하지 못했던 것이다.

폴 공 미국 루거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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