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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토)

‘노벨경제학상’ 아제모을루 “포퓰리스트 막으려면 민주주의 작동 도와야” [석학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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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기획-불법 계엄 뒤 한국 경제]
“민주주의 필터 기능 약화하는 분열
기성 정치권 불신이 포퓰리즘 자양분
노동 대체 말고 보완 위한 AI 활용을”
한국일보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지난달 7일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과학한림원에서 열린 경제학·화학·물리학상 수상자 공동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스톡홀름=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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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도널드 트럼프. 한국(2022년 3월)과 미국(2024년 11월) 국민은 두 사람을 자국 대통령으로 뽑았다. 잘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국민에 의한 통치’(rule by the people)의 목표는 결국 ‘국민을 위한 통치’(rule for the people)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는 이런 성취를 ‘공유된 번영’(shared prosperity)이라고 불렀다.

3년도 안 돼 한국은 쓴맛을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의 시대착오는 국내외 많은 이를 아연하게 만들었다. 그는 지난달 초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비롯한 민주주의 제도를 무너뜨리려다 파면당할 위기에 놓였다. 12·3 불법 계엄 선포의 후과다. 그를 선택했던 한국도 위기다. 서서히 무너지던 한국 경제는 급기야 고꾸라지는 형국이다. 원화 가치가 급락했고, 다음 수순은 인플레이션(물가 급등)일 것이다.

트럼프 당선자 취임(20일)이 임박한 미국에서도 우려가 크다. 그가 약속한 고율 관세 정책이 물가 상승을 부추기리라는 게 전문가들 이구동성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그 역시 제도 해체를 예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지난달 22일 한국일보 서면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향후 4년간 민주주의 제도의 핵심 규범들을 침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 파괴자가 배태된 토양은 무엇일까. 분열과 불신이라는 게 아제모을루 교수 진단이다. 그는 양극화를 누그러뜨리지 않으면 윤 대통령처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지도자가 한국에 다시 출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 번영 지속의 관건도 진영 간 대화를 통한 민주 제도 복원이라는 게 그의 제언이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제도가 국가 번영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한 공로로 사이먼 존슨 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 제임스 로빈슨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과 교수와 함께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국가가 경제적 성공을 일구려면 더 많은 사람을 경제 활동에 참여시키고 위험 감수와 혁신을 촉진하는, 가령 재산권 보장이나 공정한 선거 같은 ‘포용적’(inclusive) 제도가 필요하다는 게 연구 결과의 핵심이다. 제도 차이에 따른 국가 간 번영 격차의 사례로 남북한이 거론되기도 했다.

계엄이 가중한 위기

한국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12·3 불법 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2차 출석 요구에 불응한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윤 대통령 탄핵 찬반 양측이 각각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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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한국에서 계엄 사태가 터졌다. 어떻게 봤나.

“양극화 시대에 기존 필터가 민주주의의 본질을 위협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제거하는 데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놀랍지는 않다. 윤 대통령이 벌인 일은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실제 일어날 것 같아 걱정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시민사회, 언론, 국회의원 등이 쿠데타(친위 쿠데타 성격의 계엄령)에 저항했고 성공했다.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정치인과 언론이 더 해야 할 일이 있다. 양극화를 줄이고 사회의 각각 다른 부문들, 각색의 정치 진영들 사이에 대화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정치권에서 세력 기반이 없었지만 단기간에 대중적 인기에 영합했고 제도화한 선거의 다수결 투표에서 승리해 정당성을 확보했다. 재능 있는 포퓰리스트였던 셈이다. 그러나 그는 등장만큼 빠른 속도로 몰락했다. 이번 계엄 사태에서 한국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일까.

“포퓰리스트는 시대의 징후다. 그들의 눈에는 기성 정당들이 약속했던 것들, 즉 국민을 위한 목소리, 신뢰할 만한 양질의 공공 서비스, 공유된 번영 등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반영된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노라고 공약하며 집권한 포퓰리스트가 더 나은 해결책을 제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국에 주어진 교훈도 다른 나라들과 같다. 민주주의가 국민을 위해 더 잘 작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포퓰리즘이 독재와 만나면 경제가 망가진다. 1900년부터 2020년까지 포퓰리스트 대통령이 국가 경제에 미친 여파를 살폈더니 포퓰리즘 수용 뒤 15년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0%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2022년 유럽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센터(CEPR)를 통해 공개된 적이 있다. 포퓰리스트들은 국민을 섬긴다는 명분으로 권력욕을 포장해 제도에 손을 댔다고 연구자들은 지적했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급성장한 것은 시기상 권위주의 정권하에서였다.

“권위주의 정권은 여러 비효율을 낳는다. 가장 심각한 것은 불충분한 보건·교육 분야 투자와 더불어 정권과 유착한 기업에 제공되는 특혜다. 민주주의 국가라고 비효율적인 정책과 규제의 함정을 늘 피하는 게 아니고, 권위주의 정권도 경우에 따라 경제 성장을 이끌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민주 국가에서는 정권이 책임을 져야 한다(more accountable)는 사실이다. 선거라는 절차가 있고 시민사회가 동원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이런 책무성은 비효율과 함께 고비용 계획의 범위를 제한한다. 박정희 정권은 산업화와 성장을 우선시했다. 그러나 동시에 재벌을 편들었다. 권위주의 정권의 한계다. 경제 성장이 민주화 이후 더 빠르고 건강해진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한국의 당면 과제

한국일보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지난달 8일 스웨덴 스톡홀름 스톡홀름대 강당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스톡홀름=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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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모을루 교수는 정부와 사회의 힘이 균형을 이룰 때 번영이 가능하다고 설명하며 이런 상태를 ‘좁은 회랑’(The Narrow Corridor)이라고 명명했다. 그가 2019년 로빈슨 교수와 함께 펴낸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한국이 좁은 회랑에 진입한 시기는 1987년 직선제 개헌 즈음이었던 것 같다. 이후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발판도 마련됐다. 하지만 몇 년 전 한국이 위기에 빠졌다는 분석이 제기됐고, 바야흐로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도 다른 많은 민주 국가들과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듯하다. 경쟁과 효율성을 저해하는 과도한 규제다. 수출에 주력하는 대기업보다 국내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들에 가해지는 영향이 더 두드러지는 게 사실이지만 유럽, 미국, 일본, 중국의 최고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대기업도 다음 단계가 쉽지 않다. 설상가상 낮은 출생률 탓에 급속히 진행 중인 고령화에도 발목이 잡히고 있다.”

-그 와중에 계엄 악재가 불거졌다. 정치의 후진성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모습이다.

“한국 정치 수준을 내가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한국의 정치인과 시민사회가 민주주의를 더 건강하고 유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기에는 정치를 정화하고, 시민들이 정치 사안에 자신들의 목소리가 반영된다는 효능감을 되찾게 만드는 일이 포함돼야 한다.”

-당면 과제는 무엇인가.

“지금은 한국의 제도가 근본적인 진통을 겪고 있는 시기다. 한편으로는 다른 나라처럼 양극화가 심화됐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재벌과 정치 사이의 오랜 정경유착 역사가 정치의 속성(민주주의)을 건드린 것은 물론 이제 아예 정치 부패를 현실로 인식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업 부문 혁신과 효율성, 인력 부문 교육과 혁신성을 장려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트럼프의 귀환

한국일보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지난달 6일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상박물관에서 수상자 방명록인 박물관 레스토랑 의자에 서명한 뒤 의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스톡홀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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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집권했다.

“트럼프가 민주주의적 규범을 약화하고, 정책 결정을 불확실하게 만들고, 양극화를 심화하고, 법원·법무부 같은 기관들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리라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트럼프는 향후 4년간 투자와 혁신의 토대가 되는 민주 제도의 핵심 규범들을 잠식할 것이다. 그는 미국 민주주의, 나아가 전 세계 제도에 대한 진정한 위협이다.”

아제모을루 교수가 무엇보다 염려하는 것은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미국’이 지금껏 맡아 온 국가 간 공조의 구심 역할을 포기할 가능성이다. 그는 “앞으로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기후변화, 인공지능(AI) 같은 전 지구적 문제에 세계가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가 더 큰 이슈”라며 “이런 문제들은 초국가적 제도 기관(supra-national institutions)과 세계적 규모의 조직(global corporation)을 요구하는데, 트럼프 정부 아래서는 이 모든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가 간 빈부 격차도 더 커질까. 트럼프는 지구적 불평등 이슈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트럼프의 정책보다 실리콘밸리(거대 기술 기업)의 지배력 강화와 AI가 부국과 빈국 간 격차 확대의 핵심 요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 가능성도 우려된다.”

-트럼프의 귀환에 한국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내 생각에 유럽과 한국 모두 안보와 국방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 트럼프가 국제적 불안정을 야기하고, 미국의 동맹국 방위 보장이 트럼프 집권기에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의 외교 채널을 계속 열어 두고 있는 게 중요하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정한 움직임이 있더라도 말이다.”

다만 아제모을루 교수는 “미국의 ‘프렌드쇼어링’(동맹·우방국 위주 공급망 재편) 정책은 한국 같은 나라에 더 많은 무역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세계화하고(globalized) 극도로 연결된(hyper connected) 세계는 여전할 것”이라면서다.

기술, 노동, 불평등

한국일보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지난달 10일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열린 노벨상 연회에 참석해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스톡홀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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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출간한 저서 ‘권력과 진보’(Power and Progress)에서 당신은 AI를 포함한 기술적 발전이 노동자를 소외시키며 소수 기업·투자자의 이익 독점을 초래해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동에 대한 최대 위협은 지속적인 자동화라는 게 내 생각이다. AI는 노동자를 배제하고 더 많은 작업을 자동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노동분배율(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감소하고 번영 공유는 더 요원해진다. 나는 줄곧 사전 대비 차원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미국 당국이 실리콘밸리 거대 기업만이 아니라 자국 및 자국 노동자에게 어떤 유형의 AI가 좋을지에 대해 열린 대화를 나누고, 그런 뒤 AI를 사회적으로 더 유익하게 활용할 방법을 모색해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유도하는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 미국뿐 아닐 것이다. AI가 노동자를 위한 새 업무와 역량을 창출할 수 있도록 광범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 민주당의 2024 대선 패배 원인으로 노동 계급 지지 상실을 꼽는 이가 많다. 버니 샌더스 미국 연방 상원의원과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 스탠퍼드대 교수가 그렇게 말했고, 당신 역시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 다른 나라 진보 세력도 사정이 비슷하다. 우경화는 피할 수 없는 길일까.

“미국 민주당에서 내가 찾은 문제점은 다른 사회민주주의 또는 중도좌파 계열 정당에도 적용된다. 요컨대 이들 정당은 고학력 엘리트에 의해 장악돼 왔고, 그들의 의제는 경제적·문화적으로 노동 계급의 우선순위 의제와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중도좌파는 기술 기업 및 고학력 엘리트와 거리를 두고 노동 계급과의 다리를 재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는 언어 및 의제 우선순위의 변화, 임금 인상 강화 및 노동자 일자리 확보를 위한 정책 등이 포함된다.”
한국일보

지난달 8일 스웨덴 스톡홀름 스톡홀름대 강당에서 강연하고 있는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스톡홀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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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론 아제모을루 교수는

제도가 경제 발전에 미친 인과적 영향을 규명해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경제학자다.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재직 중이다. 함께 상을 받은 사이먼 존슨 MIT 교수, 제임스 로빈슨 미국 시카고대 교수와 각각 ‘권력과 진보’(2023),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2012)를 공저했다. 2005년 ‘예비 노벨경제학상’으로 불리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았다. 1967년 튀르키예에서 태어났고, 1992년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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